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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아내는 공주님처럼 모셔라

간장게장, 평생 간다

by 카리스마회사선배

신 4개월, 밤늦게 홈쇼핑에서 간장게장이 나왔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터라. 바로 군침이 돌고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리는 걸 보니 술자리가 한창인가 보았다.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니, 무슨 밤늦게 간장게장을 사 오라고 하냐며 화를 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쁜 놈. 자기 자식을 가진 와이프한테 이렇게밖에 못하나. 이런 남자를 선택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걸어서 10분이면 유명한 간장게장 골목이 있던 터라 더 서글프고 서운했다.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식탁에 간장게장이 놓여 있지 않은가? 어차피 사 올 거면서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과를 받았는지 어쨌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럽고 서운했던 마음만은 생생하다. 과거 얘기를 웬만해서는 되풀이하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그 마음은 어제인 듯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친구는 남편 따라 해외에서 살았다.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아기가 생겼고, 만삭 즈음에 진통과 함께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려는 순간, 남편이 "잠깐!!' 다급하게 소리쳤다. 집으로 뛰어들어간 남편이 가져온 건 김장비닐!! 천으로 된 차 시트가 양수로 젖을까 봐 비닐을 짝 깔더란다. 그 남편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와이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산다.


임신은 여자에서 너무나 큰 몸과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단순히 배만 불러오는 게 아니라, 호르몬 변화로 감정기복도 심해지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고, 쉽게 피곤해진다. 서로 사랑한 게 다인데, 남편은 총각 때와 아무 변화가 없고, 여자는 모든 게 낯설고 겁이 난다. 살이 찌고, 배가 나오고, 얼굴형도 달라진다. 갑자기 몸무게가 늘다 보니 여기저기 살이 터진다. 한 마디로 임신한 여성은 몸과 마음 모두에서 큰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걸 모르는 남편들은 실언과 실수로 평생 여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함께 만든 생명이고, 함께 키워갈 생명이다. 아이를 낳는 건 절대 아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남편도 같은 팀이다. 한쪽이 힘들면 다른 한쪽이 더 노력해서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물론 남편도 힘들다. 계속 짜증을 부리고, 먹고 싶다는 음식들이 구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일정기간 잠자리를 못 갖게 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크다. 그래도 엄마 아빠만 믿고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는 작디작은 생명체와 그 생명체를 품고 있는 아내를 생각한다면, 고통을 같이 나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아내가 편해야 아기도 편하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뱃속 아기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엄마가 행복하고 안정될수록 아기의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좋아 하지도 않던 비빔밥을 열 달 내내 먹더니 아기를 낳자마자 비빔밥은 쳐다보기도 싫은 것, 뇌가 생길 즈음에 경영계획 수립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예민한 아이가 태어난 것, 심야에 간장게장을 못 먹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이 모든 현상을 어찌 과학적인 단어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은 아기가 먹고 싶어 하는 거라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러니, 먹고 싶다는 거 다 사줘라. 지구 전체를 뒤져서라도 사줘라.


임신한 아내는 공주님처럼 모셔라. 노예처럼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존중과 배려가 담긴 마음가짐으로 옆에서 살뜰히 보살펴 줘야 한다. 무지개 송어나 산천어처럼 맑은 산골짜기 물에서 사는 송어류는 산란 후 체력이 급격히 소모되어 죽거나, 거의 죽은 듯한 상태로 떠오르며 뒤집히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산란 후 체력 고갈' 또는 '산란사'라고도 한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일은 동물이든 인간이든 온 힘을 다해, 목숨을 거는 일이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발에 쥐가 나 발가락이 뒤틀린다. 거울을 보면 날씬한 나는 사라지고, 배불뚝이 아줌마가 들어있 다. 여자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올인하는 것이 바로 임신과 출산인 것이다. 그러니, 공주님 대우가 마땅하다.


남편은 이 같은 임신한 아내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당신과 아기가 정말 소중하고, 내가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하자.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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