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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다유 Sep 11. 2024

그녀를 만나다, 낭독을 만나다

소리전달자, 낭독봉사자

약간은 긴장감과 상기된 표정에서 기대감 마저 느껴진다. 열 명의 예비 낭독봉사자들은 시각장애인복지관 담당자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 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전문성우님과 함께 낭독봉사를 위한 10주간의 교육을 받으실 거예요. 끝까지 교육 잘 마무리하셔서 녹음스튜디오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강사소개가 이어졌다. 뒤에서 미소를 머금고 담당자와 예비낭독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앞으로 나왔다.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60년대 영화배우 윤정희가 느껴지는 고전미인이었다. 인사를 나눌 때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가 빛났다. 커다란 눈망울에는 장난기마저 감돌았다. kbs성우 출신인 그녀는 tv프로그램 내레이션을 비롯 영화 더빙 작업 등 여러 작품을 진행했다. 또 다른 성우들과 달리 연극배우 출신이기도 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에게는 더 큰 이력이 숨어 있었다. 바로 성우로 잘 나가던 때에 결혼과 동시에 강원도 태백 시골에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왜 잠적을 했을까? 그리고 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을까?




먼저 자기소개의 순서를 가졌다. 20대부터 60대까지 대학생, 성우지망생부터 가정주부 작가 등 다채로운 나이와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자기소개를 하는 우리를 지켜보았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한 사람씩 목소리 평가를 해 주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의 목소리엔 따뜻함이 있네요. 조금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은 있지만 내공이 느껴집니다. 상냥함과 배려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

헉,, 뭔가 뭉클한 것이 치받고 올라왔다. 몇 달을 마음 고생하며 잠 못 이뤘던 나에게 들려주는 선물 같은 칭찬이었다. 내 목소리가 따뜻하다니,,, 내 안에 상냥함과 배려심이 들어 있다니,,


곧이어 그녀는 " 우리의 얼굴이 다 다르고 지문이 다르듯이 목소리도 다릅니다. 낭독교육의 시작은 내 목소리를 들어 보는 훈련부터 진행합니다. 내 목소리의 느낌, 억양, 톤, 무엇보다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얼굴은 깨끗이 닦고 화장을 하며 아름답게 가꾸는데 정작 자신의 목소리에는 무심합니다. 매일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세요.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법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정말 이게 내 목소리 맞아?

녹음 후 목소리 들어보기 과제를 하면서 뜻밖의 난관에 부딪쳤다. 내 목소리를 도저히 좋아할 수 없다는 거. 무엇보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남편도 아들도 맞다고 하는데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들린단 말인가? 그런데 성우님은 어찌 이런 목소리가 따뜻하다고 칭찬했을까?

첫날의 녹음과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내 목소리에 적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녹음하고 들어보는 훈련을 반복했다. 처음엔 녹음과제에 집중하느라 텍스트를  또박또박 읽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점점 텍스트 속에 느낌이 다가왔다. 반복해서 읽다 보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낯설었던 내 목소리가 서서히 친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낭독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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