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포즈를 알아?
낭독은 사전적 의미로 글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다. 나 또한 낭독교육을 받기 전에는 단순하게 책을 소리 내어 잘 읽으면 되는 걸로 알았다. 그래서 처음엔 국어책 읽듯 오독이 나지 않도록 또박또박 책을 읽었다.
하지만 오디오북 낭독은 단지 소리만 잘 전달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낭독자는 저자의 이야기를 대신 전달해 주는 사람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이면적 내용을 파악해서 저자의 감성을 담아 오롯이 낭독자의 목소리로 전달해야 한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 오디오북은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을 대신해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 소설 속 배경을 표현한 글을 낭독한다면 청취자는 그 배경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참 어렵다. 낭독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교육을 받으면서 더 느끼게 된다
10주간의 교육과정 동안 우리는 내 목소리 찾는 법, 듣기 좋은 음역대 찾기부터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과 학교 다닐 때도 제대로 안 했던 국어(연음법칙, 구개음화, 장단음, 음가, 발음) 공부를 다시 해야 했다. 힘든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칠 만도 한데 어느 누구도 일탈자가 없었다. 그만큼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낭독의 멋진 세계로 이끌어 주신 성우 님 덕분이었다. 그녀는 교육생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눈을 감고 경청하면서 잘못 표현된 부분이 나오면 바로 고쳐 주었다. 마음만 앞섰던 나에게는 책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면서 누가 쫓아오지 않으니 여유를 가지라며 포즈의 중요성을 알려 주었다.
수료식이 다가왔다. 마지막 낭독회를 준비하면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첫 만남에서 우리에게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보며 자신의 목소리와 친해지라고 했던 그때가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매번 속도 조절이 힘들어 지적을 받았던 나부터 반복적으로 잘못 발음해 얼굴이 벌게졌던 직장인 00, 목소리가 너무 작아 울림통을 키우기 위해 발성연습에 집중했던 대학생 00, 매번 종결어미를 너무 높게 발음해 잘못하면 나만의 쪼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주의를 받았던 퇴직 선생님 00...
낭독을 배우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나만의 고유한 악기, 목소리를 재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만이 낼 수 있는 최상의 목소리는 단지 발음, 발성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길을 열어 두는 것, 깊은 호흡을 통해 내 몸을 정화시키는 것, 명상을 통한 내면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나에게, 낭독의 저자 서혜정 성우님의 유명한 어록이다. 누구나 각자 아름다운 보석을 품고 있다. 단지 아직 발견하지 못해 빛을 보지 않았을 뿐이다.
바이올린이 완벽한 형태를 가져야만 좋은 울림을 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이올린 제작자가 각 나무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나무의 결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마다의 나무가 가진 유일하고 독특한 예술작품인 고유한 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나무의 노래> 중-
열 명의 예비 낭독봉사자들은 이제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준비과정을 마쳤다. 이젠 한 걸음 더 나아가 녹음 스튜디오에서 오디오북을 만들 시간이다. 하지만 그 과정 또한 녹록지 않았으니,,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된 오디오북을 제작할 수 있을까
우당탕탕 예비 낭독봉사자의 첫 번째 오디오북은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저 멀리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