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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다유 Sep 18. 2024

나의 첫 오디오북

자유론에서 헤매다

우울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선택한 낭독봉사 수료식날.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 마음을 잘 아는지 지난 10주간의 교육을 무사히 잘 마무리한 교육생을 위해 복지관에서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정성껏 차린 다과가 준비되었고 그동안 애쓴 우리를 위해 격려의 인사와 더불어 봉사교육을 이수했다는 의미의 수료장 전달식과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해 가르침을 주었던 그녀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치더니 감개무량한 듯 특별한 소회를 전했다.


"문득 처음 만났던 여러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기대와 호기심, 그리고 어색함과 수줍음이 공존하던 여러분의 표정에서 순수함을 보았습니다. 낭독봉사는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바쳐야 합니다. 그 고운 마음을 알기에 지금까지 이곳에서 낭독봉사자를 위한 교육을 쭉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진정한 봉사의 시작입니다. 즐거운 낭독의 세계를 경험해 보세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책은 나의 첫 번째 녹음 오디오북이다. 대부분 낭독봉사자는 복지관에 비치된 도서를 선택해 담당자에게 확인을 받은 녹음작업에 들어간다. 다른 선택은 가끔 시각장애인이 직접 오디오북 녹음을 요청한 경우도 있다.


나의 번째 녹음 도서는 시각장애인이 오디오북으로 듣고 싶다고 요청한 책이었다. 어찌 나에게 녹음요청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번째 오디오북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오디오북은 대부분 낭독봉사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어렵지 않은 도서를 선택하기 마련인데 평소 보지 않던 난해한 책이 배정되었으니 부담감이 수밖에 없었다.


그 부담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첫 문장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고전낭독에서 어려운 부분은 지금과 다른 형태의 문장구조가 한몫을 차지한다. 우선 만연체의 긴 문장은 가뜩이나 호흡이 짧은 나에게는 어디서 포즈를 넣어야 할지 강약조절과 음가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이한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둘보고, 나아가 다양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 문제를 이모저모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어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 자유론 중


짧은 문장과 쉬운 단어에 익숙했던 내 지적능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낭독은 문장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해석하며 입으로 작가의 감성을 담아 표현해 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책의 중후반 이후에는 작가의 의도가 내 몸에 체화되어 자연스러운 낭독으로 이어진다고 멘토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문제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니 표현이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내가 선택한 방법은 시간을 가지고 책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는 것이다. 먼저 작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스튜어트 밀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주입식 교육을 피하고 어떤 문제든 혼자 힘으로 생각하고 해결하도록 아들을 가르쳤다. 밀은 아버지에게서 그리스어를 배웠고 여덟 라틴어를 배웠으며 열세 때는 경제학을 공부했다.


책의 배경지식을 파악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밀은 아버지가 일하는 동인도회사에서 조수로 일을 배우면서 점차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 당시 공리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밀은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감수성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음악, 시, 미술 등으로 관심의 폭을 넓혔다. 이후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고민하며 쓴 대표작 <자유론>이 탄생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지식을 알게 되었다면 두 번째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재독과정이다. 처음엔 묵독으로 빠르게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두 번째는 소리 내어 읽는 음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낭독을 한다.


이번 오디오북 녹음을 준비하면서 고전, 특히 외국 고전은 번역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복지관에서 전달해 준 자유론과 집에 비치된 자유론의 문장구조가 다른 것을 깨달았다. 두 책을 비교해 보니 집에 고이 모셔두었던 책이 더 쉽고 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낭독봉사자는 마음대로 책을 바꿀 수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지정 도서에 집중했다. 이런 경험은 후에 새벽낭독에서 고전낭독을 위해 책을 선정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막상 녹음 스튜디오 마이크 앞에 앉으면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고 왜 그렇게 오독은 많은지 예약한 시간은 지나가는 데 오늘도 단 두 페이지 녹음만 진행하고 스튜디오를 나와야 했다.


나의 첫 번째 오디오북은 그렇게 장장 6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에게 참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자유론을 듣고 싶다고 신청했던 그 시각장애인이 끝까지 기다려준 덕분에 나는 첫 번째 오디오북을 올릴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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