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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다유 Sep 25. 2024

첫 번째 낭독치유의 경험

녹음실에서 낭독치유를 경험하다

Richard Dick Sargent 작품


국민학교 5학년 교실, 국어수업 종료 10분 전,

"유 00, 교과서 00페이지 읽어라"

선생님은 수업 종료를 앞두고 꼭 나를 지목해 교과서를 읽게 하셨다

그때는 왜 나한테 교과서를 읽으라고 했을까,,, 별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 빠르지만 틀리지 않게 읽어내는 교과서 읽기가 선생님의 오늘 수업 분량을 마무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구연동화 대회가 열렸고 선생님은 반 대표로 나를 지목했다

지목 이유는 이러했다

"책을 또박또박 잘 읽고, 발음이 좋으니 한번 참여해 보렴"

떨리는 마음으로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은 동화 구연을 손짓, 몸짓을 해가면서 열심히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상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상장이 보관되어 있지 않으니 참여에 의의를 두었을 가능성이 크겠다

왜 갑자기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먼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가 생각나는 걸까




2017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친구와 동업으로 전통체험학습장을 시작했는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더 이상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  2년 만에 손을 털고 나왔다

그때 경제적 손실 보다 더 큰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세상이 모두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다.

사업을 할 때는 하루라도 실컷 자고 싶었는데..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들이 켜놓은 노트북이 눈에 띄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눈에 띈 게 낭독봉사자 모집 글이었다

마침 집에서 가깝기도 해서 신청을 했다

복지관에서 제시한 예시글을 녹음해서 보내야 하는데, 다행히 통과가 되었다.

어쩌면 국민학교 국어시간에 책을 또박또박 잘 읽었던 경험이 내 잠재의식에 남아 있어 처음으로 녹음을 했음에도 통과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나에게, 낭독이 다가왔다


나는 왜 낭독봉사를 하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봉사를 한다고 하면 대단하다, 멋지다, 나도 언젠가는 하고 싶다 등 여러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 낭독봉사는 이기적인 봉사였다

왜냐하면 그 시작이 불손하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 후 우울증과 불면증의 밤을 보내며 나는 세상에서 고립된 듯 힘들었다

그때 눈에 띈 낭독봉사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즉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얼마나 더 힘들까?

결국 나는 내 힘듦 상황을 내가 생각하는 더 힘듦 상황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기적인 봉사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어느 날 나는 통곡을 하고 말았다


두 번째 책을 낭독하기 위해 오늘도 녹음 스튜디오 안에 앉아 있었다

마이크를 수음이 잘 되는 방향으로 고정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오늘 낭독할 책을 펼쳤다

서서히 책을 낭독을 하면서 슬금슬금 마음이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살면서 극적인 순간이 참 많았다.

예컨대 접수하자마자 장애인 콜택시가 배차됐을 때는 복권에 당첨된 듯 기뻤고,

휠체어석이 마련돼 있는 소극장을 발견했을 때는 심봤다를 외치고 싶을 만큼 들떴다.

----중략---

짜릿한 순간들, 웃픈 사연들, 가슴 아픈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삶이 된 것 같다.

감히 말하건대, 단 하루도 무미건조한 날은 없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는 일들, 맞닥뜨리게 되는 극적인 순간들을 즐기고 싶다.


때로는 역전 골을 넣은 스트라이커처럼, 또 가끔은 굿바이 홈런을 맞은 투수처럼 웃고 울겠지만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기쁜 일, 슬픈 일, 미스터리한 일.

온갖 일들을 경기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삶이라는 드라마틱한 경기를 최선을 다해 즐기고 싶다.


왜냐고?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인생의 프로니까.

나를 대신해 살아 줄 선수 따위는 없으니까.

이윽고 택시가 베르사유 궁전을 향해 출발했다.


드라마틱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낯선 여행, 떠날 자유 중-




나는 더 이상 녹음을 할 수 없었다

얼얼한 충격파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남편과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조차 못하는 중증 지체장애인 아내가

삶이라는 드라마틱한 경기를 최선을 다해 즐기고 싶다고?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인생의 프로라고?

그게 가능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두 사람이 이뤄낸 유럽 자유여행

그들이 느꼈을 자유는 "너희들이 어떻게 여행을 가니? 그것도 유럽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들에게

 '나도 하는데, 너는 뭐 하는 거니?'

죽비로 등짝을 맞은 듯 화들짝 나를 깨워 주었다


그동안 나는 원망의 시간으로 하루를 보냈다. 내가 가진 것보다는 없어진 것에만 힘들어했다.

조금씩 눈물이 차올랐다. 처음엔 한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이 꺽꺽 소리가 나오며 폭포처럼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고 나는 한동안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방음 시설이 되어 있는 작은 녹음실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때 흘렸던 눈물은 가슴속 응어리도 함께 풀어주는 효과를 맛보았다

바로 낭독 치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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