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실에서 낭독치유의 경험을 하고 난 후 낭독봉사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삶의 소통창구가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 누군가는 눈으로 읽지 못해 귀로 들어야 하는 시각장애인, 우리 말이 서툰 이주민, 사고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낭독봉사자가 제작한 녹음오디오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낭독봉사자를 '소리로 세상과 여는 이들'이라고 하나보다.
낭독봉사자는,
눈으로 책을 낭독하고 그 소리를 세상과 이어주며,
시각장애인은 자신의 귀를 통해 소통하며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일주일 중 하루는 낭독봉사의 날로 정했다. 그렇게 낭독봉사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6개월 소요되었던 첫 책의 녹음도서 기간은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진행하면서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더불어 가끔씩 나를 휘감던 불안감과 불면증은 조금씩 나아지고 웃음소리도 예전처럼 카랑카랑 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복지관 문이 닫혔다. 잠시의 문단속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장장 2년을 넘길 줄이야...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국의 장애인 복지관을 비롯 요양원, 사회복지시설 전반에 외부인 출입 금지령이 떨어졌다. 조금씩 낭독의 재미를 알기 시작한 나에게 코로나는 아이에게 달콤한 사과를 주었다 뺏어 버리는 꼴이었다. 매일 산책을 핑계로 복지관 문 앞을 서성거렸다. 오늘도 외부인 출입금지, 공지사항엔 당분간 낭독봉사는 없을 거란 최후통첩 같은 내용이 게시되었다. 코로나는 그나마 조금씩 강사로 활동하던 나에게 경제활동 마저 뺏어 버렸고 나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나는 낭독과 치유의 경험을 통해 내면의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고 원래의 명랑함을 되찾고 있었기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만 보인다고 하는 말이 뇌리에 들어왔다. 그래서 먼저 하고 싶은 일, 낭독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자 안에서 찾아야 했다. 온라인 세상에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썰렁하게 몇 개의 글만 게시되었던 블로그를 심폐소생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나 보다. 온라인 줌 강의가 발 빠르게 퍼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온라인 속에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문득 '시각장애인도 정성스럽게 쓴 블로그 글을 들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포스팅 글을 녹음해서 첨부파일로 올려두었더니 한참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던 블로그 이웃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좋은 목소리가 나오나요
이렇게 좋은 글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올려보세요"
다시 온라인 줌 강의로 영상제작, 유튜브 제작, 다양한 동영상 앱과 툴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튜브 채널과 오디오채널을 만들면서 조금씩 구독자수가 늘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상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재창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더불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2017년에 출간한 <나는 집에서 일하고 4000만 원 번다>가 뜨기 시작하더니 온라인 강의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온라인 세상에 집 짓기를 위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지닌 단톡방에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목소리가 잘 전달되어 좋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