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낭독의 책들5-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를 지탱해 주었던 끈 하나가 툭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스승님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간다. 법정 스님이 그랬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박완서 작가님이... 그리고 이어령 선생님이 그랬다. 나는 그분들에게 알게 모르게 기대어 살았다. 그분들이 떠나가면서 빈자리를 남겨 두셨을 때에야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 누구에게 세상의 답을 찾아야 할까.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빛나는 대화라는 띠지 속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2023년 12월을 마무리하면서 새벽낭독으로 어떤 책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이어령 선생님이 생각났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이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거예요"로 이 책은 시작된다.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코 앞에 둔 이어령 선생과의 마지막 인터뷰는 김지수 문화전문 기자가 진행했다. 김지수 기자는 시대의 지성으로 일컫는 이어령 선생님과 인터뷰를 한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 그녀에게 선생님은,
"부디 내 얘기를 그대로 쓰지 말게. 자네가 독창적으로 써. 인터뷰가 뭔가 inter. 사이에서 보는 거야. 우리말로 대담이라고 번역하는데, 대담은 대립이라는 뜻이야. 대결하는 거지. 인터뷰는 대담이 아니라 상담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 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r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지수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나는 곧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을 참이야. 하지만 내 말은 듣는 귀가 필요하네. 왜냐하면 나는 은유와 비유로 말할 참이거든."
그러고 나서 그는 이 모든 상황에서 몸을 빼듯 큰 소리로 웃었다.-본문 1장 중에서
우리는 겨울의 새벽시간에 책을 낭독하면서 이어령 선생님의 재치가 빛나던 순간을 많이 느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선생님을 찾아온 꿀벌장수가 있었다. 김지수 작가는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셨는지 궁금했다.
"꿀벌 장수는 어떤 답을 듣고 갔나요?"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지. '자네가 가장 잘 아는 게 뭔가?'
'꿀벌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꿀벌을 잘 봐. 꿀벌처럼 말하면 좋은 문학이 돼.'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사는 부류.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에 먹이를 주어 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이 꿀벌이라네.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꿀벌에 문학의 메타포가 있어. 작가는 벌처럼 현실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야. 발 뻗는 순간 그게 꽃가루인 줄 아는 게 꿀벌이고 곧 작가라네." 멀리 찾지 말고 자신이 잘 하는 것부터 나를 중심으로 찾아 보는 법을 알려주신 선생님의 재치와 비유가 넘치는 이야기였다.
이어령 선생님은 딸을 먼저 보낸 아픔을 가지고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생님은 통곡의 아픔 속에서도 딸의 죽음을 통해 신의 존재를 비로소 믿게 되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있지. 내 딸이 그렇게 열심히 살다 갔어. 인간은 암 앞에서 결국 죽게 된다네.
이길 수 없어. 다만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겠다는 거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나가면 그게 암을 이기는 거 아니겠나. 세 사람 중 한 명은 걸려서 죽는다는 그 위력적인 암 앞에서 누군가는 저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모습을 남은 시간 동안 보여주려 하네."
작가는 스승이 치열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눈 똑똑히 뜨고 보라고 그가 내 마음의 고삐를 바투 쥐었다고 술회한다.
"자네는 나에게 진리를 원하고 정수를 원하지. 그러나 역사는 많이 알려진 것만 기억한다네. 진실보다 거짓이 생존할 때가 많아. 하이데거가 그랬지. 일상적 존재는 묻혀 있는 존재라고. 내가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 게 무엇일 것 같나"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히 맞게 되는 것이 죽음이다. 우리는 죽음을 저만치 멀리 하고 싶어 한다. 생과 사는 함께 가는 것인데, 우리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어쩌면 은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우리가 먼저 바꿔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먼저 자연스러운 인간 노화, 늙음에 대해서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 되지 않을까.
이어령 선생님은 채우면 끝나는 물독이 아니라 계속 퍼서 채워야 하는 두레박이 되라고 한다. 배움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삶의 매 순간 속에서도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 죽음의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나의 스승은 바로 눈앞에 앉아 있었다는 김지수 작가의 말처럼 선생님이 남긴 빛나는 언어들이 지금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