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라 하면 거창한 것을 생각하지만 나의 도전은 무척 평범한 것들이다. 어쩌면 도전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필요해서 실행했던 것들이 도전이라는 단어에 부합되어있었다.
첫 도전은 의무교육인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 무사히 진출하는 것이었다. 이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 나에게는 무척 어렵고 힘겨웠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IMF로 인해 건재할 거라 믿었던 대기업들의 도산과 국가 재정이 심각한 상태로 외환위기를 맞이했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금 모으기와 같은 돈 될만한 것은 십시일반으로 모아야 할 정도였다. 긴축재정은 물론 이건이와 국제통화기금의 감시와 그들의 요구사항에 맞추어 기업이 고용하기 편한 형태로 바뀌어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한 번 입사하면 정년까지는 문제없이 보장되던 것이 명예퇴직을 권하고 정규직같이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사회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절박함이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기에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연락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인 그 상황을 견뎌내기가 참 힘들었었다. 사회에 첫발을 딛는 것이 내겐 참으로 어려운 도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8개월의 초조한 세월을 보내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문방구에서 알바를 하다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산업에 관련된 자격증 시험을 주최하고 발부하는 곳인데 일이 단순 업무여서 사수 언니가 가르쳐주는 데로만 일하면 되었다. 노처녀라 그런가 아님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까다롭고 불친절했다. 첫 사회 시집살이가 좀 심한 편이었다. 다행히 사수 언니가 하라는 데로만 하면 별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갓 20살이었던 나의 첫 도전은 그렇게 어렵사리 실현되어 갔고 일을 하다 보니 꿈이라는 것이 생겼다.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본 '선생님', 선생님이 돼보고 싶었다. 그 당시엔 어떻게 해야 교사가 되는지 방법조차 모르던 시절이라, 직장 생활하면서 배울 수 있는 보육교사 과정을 택했다. 단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 보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도 모른 채 꿈을 키웠다. 주경야독으로 1년 동안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하면서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땄다. 친구들과 좀 더 함께하고 싶고 좀 더 다른 과목도 배우고 싶어서 1년 더 평생교육원을 다녔다. 나와 같이 의욕이 있고 주경야독하는 친구들과 함께 낮엔 각자의 근무지에서 일하고 밤엔 교육원에 모여 영유아 발달 및 지도, 영유아 발달 심리, 영유아 미술지도, 놀이지도, 언어지도, 아동음악, 아동 수과학지도, 영유아 교수방법론, 교재교구 개발, 영유아 부모교육 등을 배웠고 수업에 필요한 교재교구도 만들면서 보육과 교육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나갔다. 꿈이 있었기에 힘들긴 했지만 그 시간이 즐겁고 재미있었다. 더군다나 함께하는 친구들도 있고 두 번째 도전이었던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꿈에도 그리던 교사, 어린이집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부푼 희망과 꿈이 실현되었던 기쁨도 잠시였다. 기쁨은 얼마 못 가서 산산이 부서졌다. 어린이집 교사로서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는 기본이었고 주 6일을 근무하다 보니 몸이 버티지 못했다. 요즘처럼 교사 한 명당 아이들이 몇 명, 이 정도가 아니라 처음 맡은 아이들은 4~5세 합반 30명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애가 애들을 보육하고 교육을 담당하니 너무 버겁고 힘들었고 감당하기 어려웠다. 감기를 1년 내내 달고 살았다. 그렇게 혹독한 업무에 시달리는데도 월급은 50만 원이 전부였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8시간 근무하고 받는 급여보다 훨씬 적은 월급으로 12시간 이상의 근무는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몸이 힘드니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 돌보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데 잡무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두 번째 꿈을 이루긴 했지만 오래도록 그 꿈을 지켜내진 못했다. 어린이집 교사로의 삶을 접고 학원에서 방과 후 아동교사로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오전에는 유치부 교사로 오후에는 방과 후 아동교사로 사는 삶이 어린이집 교사보다 훨씬 금전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보람되고 즐거웠다. 매일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좀 더 쉽게 즐겁게 더 좋은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에 집중할 수 있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주경야독의 루틴으로 좋은 교육은 앎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아동미술, 한우리 독서지도, 피아노, 영어 등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주일을 모두 자기 계발과 아이들 교육에 접목시켜 하루하루 신나게 살았다. 정말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기는 힘들 것 같다. 정말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 열정과 도전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서 우여곡절 끝에 졸업해 영어강사가 되었다. 영어 강사라는 도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어학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우리나라 사교육은 유행도 많이 타기 때문에 늘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어실력이 엄청 좋은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교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질 좋고 더 나은 것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고 있다.
나의 도전은 20대 풋풋했던 때부터 40대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좌절도 맛보았고 별의 별일도 다 겪었지만 '도전'이라는 말은 꽤 설렘을 주는 단어이다.
그저 어리숙하고 겁 많던 20살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가, 일할 곳이 없어 이력서를 들고 여기저기 전전긍긍해야 했다. 사회적 상황마저 국가재정이 부도난 상황이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낮은 자존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회에 발붙여보려 도전해왔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도전의 삶이 보육교사를 지나 방과 후 아동교사 그리고 영어강사로 이젠 작가를 꿈꾸고 있다.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도전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적어도 일주일에 1,2편의 글을 작성해서 영상을 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글을 잘 쓰던 잘 쓰지 못하던 어쨌든 써내야 한다.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는 이렇듯 살기 위한 작은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어찌 되었든 이젠 영어강사 겸 작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주제를 고민하고 글을 써 내려간다.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안 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