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 나의 루틴!
쉼이 필요하거나 머릿속이 꽉 차있을 때 산책을 주로 한다.
걷다 보면 심장의 움직임이 빨라져 머릿속에 산소공급이 원활하게 되어 지끈거리던 머리가 어느 정도 맑아지기에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몇 정거장을 걸으면 적송으로 가득한 소나무공원이 반겨준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어,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고 시간대 별로, 요일별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달라져 같은 장소이지만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겨울철의 소나무공원은 꽃은 볼 수 없지만 푸르른 솔을 볼 수 있어 눈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눈이라도 내리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솜을 올려놓은 듯 춥지만 마음은 따숩게 해주는 풍경을 자아낸다. 같은 장소지만 갈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니, 즐겨 찾는 장소다.
머리가 맑아지면 도서관에 들러 책제목을 산책하듯 훑어보고 마땅한 책이 보이면 책 속을 산책한다. 그러고 나서 문구점 산책을 즐긴다.
문구점은 뭐랄까~ 학생으로 돌아간듯한 과거여행과 같다.
새 학기가 되면 새책과 새 공책, 새 필기도구를 가지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희망 가득한 출발을 예비하듯 기쁜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공책 하나하나 필기구 하나하나 정성껏 골라 학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고사리손으로 공책에 이름을 꾹꾹 써 내려가면 호랑이 같은 아빠가 옆에 오셔서 멋진 필체로 대신 써주셨다. 예전엔 책을 물려받아 쓰던 시절이어서 달력으로 책표지를 포장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다해주셨다. 책표지를 명필로 채워주셔서 공부할 맛 나게 해 주셨다. 아빠의 필체는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필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필체가 좋으셔서 현판을 도맡아 쓰실 만큼 명필이셨다고 한다. 늘 그렇듯 얄미운 오빠는 날 놀리고 약 올리는데 탁월해서 글씨 못쓴다고 그렇게 놀려댔다. 오빠는 아빠만큼은 아니어도 그런대로 글씨체가 봐줄 만하다.
'내 필체는 누굴 닮아서 들쭉날쭉인 것인지...'
펜글씨교본으로 연습을 많이 해보았지만 아빠 필체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필체자격증 시험을 본 결과 3급은 된다. 흡족하진 않지만 노력은 해봤다.
오빠가 하도 놀려대서 눈 크게 뜨고 항변했다.
"난 그래도 펜글씨 3급이야!"라고 했더니 며칠이 지나서 만년필을 선물해 줬다.
오빠가 아니라 웬수다. 약 올리고 놀리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나 싶을 만큼...
고작 1년밖에 차이 안 나는 게 오빠라고 행세하는 것 보면 참 어이가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그만 게 본인이 오빠도 아닌 오라버니라고 주입을 시키며 본인의 호도 스스로 짓는 성인군자흉내를 내는 한 살 위 오빠를 둔 여동생으로 산다는 건 뭐랄까?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는 그런 느낌!
희망 가득한 출발을 예비하는 나만의 루틴인 문구점에서
바가지를 쓸뻔했다. 눈뜨고 코베인듯한 기분이 든다.
산책 후 기분 좋게 노트와 필기구를 골라 계산하려는데, 반말과 함께 물건값의 두 배를 결제하란다.
'반말들을 나이는 아닌데..., 바가지 씌울 만큼 어리숙하게 보인 건가! 실수라기엔 너무한데...'
'이 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 문구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희망차게 시작할 나의 루틴에 찬물을 끼얹은 이곳을...'
'안 그래도 모든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는데, 문구마저..'
'희망 문구점이 마치 오빠처럼 찬물을 끼얹는 곳이 되다니..'
점잖게 영수증을 요구하고 적립해 달라고 하니,
바로 말을 높이며 가격이 원래의 가격으로 바뀌는 이 상황을 무엇으로 이해해야 할까?
기계가 다 계산해 주는데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바가지를 씌우는 이 아저씨, 태세전환도 빠르다.
'많이 해본 솜씨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