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영어영문학 학사를 손에 쥐었다.

by 풍요로움

한 때 영어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번아웃 된 적이 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 살면서 영어에 욕심을 내본 적은 처음이다. 영어를 읽고 싶어도 읽는 것을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 아무도 없어, 영어 까막눈으로 상당히 오랜 세월을 보냈다. 단어도 못 읽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알아듣지도 못하는 문법은 왜 그리 복잡하던지...


중학교 때 처음 영어 알파벳을 접했는데 겨우 알파벳을 땐 아기에게 단어를 암기하란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교과내용 문장을 한번 읽고 해석해 주시고는 나머지 시간은 단어를 암기하라고 하셨다. 단어를 읽을 줄도 모르는데 말이다. 시키는 데로 잘하는 타입이라 영어시간 내내 아는 알파벳을 끼워 맞추며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았다.


야속한 선생님은 단어시험을 보셨다. 알아듣지 못해, 단어를 읽고 싶어도, 읽고 외울 수 없어서, 영어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한이 되었다.


영어 잘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 잘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영어테이프를 들으라고 말해주었다.


'참 고맙고 똑똑한 친구!'


영어 잘하고 싶어서, 엄마에게 영어테이프 사달라고 했었다. 엄마는 가타부타 답변이 없었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 6년의 시절은 흘러갔고 영어 못하는 사람으로 마음 아파하며 그렇게 사회에 진출했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 비슷한 말만 나와도 울렁증이 생겨 겁을 먹는 것이다. 대화에서 업무적 지시에서 영어가 나오면 모든 사고 체계가 마비되면서 머리가 하얘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영어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던 영어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물었더니 대학마다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배우란다. 최종적으로 조언을 준 것은 신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이었다. 적절한 조언이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니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책으로 영어를 읽어내는 것인데 단어를 많이 몰랐던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고 종로에 있는 영어전문 학원을 가봐도 초급반은 문법반이 전부였다. 두 달간 문법만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유, 초등부 아이들에게 문법으로의 접근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 무한 반복으로 알려줄 '영어 엄마'가 필요한데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고 영어 프로그램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카세트를 살 형편은 아니었기에 고민하던 중, 동료 영어 선생님이 가보라던 신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은 그야말로 단비와도 같았다.


랩 방식으로 운영했는데, 영어를 지속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면 원어민 한 명에게 교재의 단어와 문장을 읽게 해 촬영하고 그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학생들이 충분히 익히면, 선생님이 확인해 주는 방식이었다.

원어민 선생님의 촬영 비디오를 무한 반복했다.


'이 단어가 이렇게 발음되는 거였어!'


아기가 언어를 처음 접하는 방식으로 단어 하나를 100번 이상 듣고 따라 하며 단어를 넓혀갔고 문장으로 이어갔다. 물 만난 고기처럼 재미있게 배우고 익히면서 몇 개월이 지나 랩 방식의 영어교육을 하는 곳에 입사해서 아이들을 관리했다.


부모님들의 반응도 좋았다. 자녀들의 영어 발음이 원어민 발음인 데다가 영어 실력도 일취월장했기 때문이다. 영어권으로 유학 가지 않아도 기초는 배우고 다질 수 있으니 붐이 일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서 배운 영어단어로 게임도 하고 영어노래와 율동을 가르치고 영어웅변도 가르쳐서 공연을 올렸다.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영어발표회를 했더니 부모님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어리기만 했던 자녀들의 입에서 원어민 발음으로 영어와 노래, 연극 공연도 할 수 있는 실력이 되니, 얼마나 기특해하시던지 정말 뿌듯했다.


유,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커서 고학년이 되었는데, 실력이 날로 늘어가는 아이들에게 다른 영어 교수법이 필요했다. 기초를 다졌으니 문법도 배우고 회화도 활용할 방법이 필요했다. 내가 운영하는 학원이었다면 그 방법을 모색해 갔을 텐데 운영하는 원장님이 더 키워갈 의지가 없었기에 과감히 퇴사하고 영문학을 전공해서 그다음을 모색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큰 꿈을 품고 영어공부에 돌입했다. 영문학과에 입학해, 처음 1년은 너무 행복했다. 직장 스트레스도 없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원하는 만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았다. 2년, 3년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틈틈이 하면서 영어공부에 매진했다.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내용이 너무 어려워지더니 영미희곡에서 멘붕이 왔다. 희곡 용어 사용하지도 않는 단어들인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래도 해내야 돼!' 마음 다잡고 하나부터 열까지 단어를 찾아가며 내용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공부해야 할 책들은 산더미 같은데 영미희곡 하나로 절절매고 있으니, 한번 본다고 내용이 다 숙지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영미희곡과 씨름을 하며 고비를 하나하나 넘었다. '고어'와의 씨름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졸업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반이상을 왔는데 졸업 못하면 사람 노릇도 못하고 꿈과도 멀어지는 것 같아 악몽에 시달렸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꿈도 여러 차례 꾸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문학 학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포기하지 않도록 엄마와 오빠가 지대한 도움을 주어서 무사히 학사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빠는 가끔씩 손에 돈을 쥐어주시면서 무언의 응원을 해주셨다. 너무도 힘겹게 영어 학사 졸업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정을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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