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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로움 Aug 13. 2020

부모의 말이 자녀의 삶을 바꾼다.

탄생 설화를 만들 만큼 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하셨던 부모님!!!

어릴 땐  부모님이 함께하고 시간을 보내주시는 것이 그저 좋고 행복했다. 단칸방이든 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든 상관없었다. 엄마가 머리를 땋아주시고 목욕탕을 데리고 가서 일주일의 묵은 때를 벗기며 엄마랑 함께하는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어쩌다 시간이 날 땐 아빠도 뒷동산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로 조그마한 윷을 만들고 달력에 윷판을 그려 놓고 나서 게임 룰을 알려주시면서 오빠와 아빠가 편먹고 나와 엄마가 편먹고 윷놀이를 하던 그 시절이 참 좋았다. 어떻게든 자녀들과 먹고살기 위해 새벽에 어김없이 출근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부모님 호강시켜 드려야지 다짐한 적도 있었다. 그런 다짐들이 나에게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빠도 그랬나 보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더니 대학도 한 번에 척 붙고 졸업과 동시에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대기업 2군데를 턱 하니 붙어서는 어느 곳을 갈 것인지 고민하는 행복을 우리 가족에게 안겨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오빠를 놓고 참 많은 그림을 그리셨다. 법과에 가서 판검사가 되라고도 하시고 오빠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그만한 의미 부여를 해주는 것이다. 서울에 상경해서 오빠를 낳아 태를 묻어두었던 곳에 중학교가 지어지더니 그곳에 첫 신입생이 되었다고 좋아하시면서 오빠가 대단한 사람 인량 기운을 팍팍 넣어주시는 것이다. 신화도 그런 신화가 없다. 그런데 일리가 있는 것이 지어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집 근처에 중학교가 지어졌는데 그 첫해에 신입생이 되어 1등만 하는 것이다. 초, 중, 고를 늘 상위권에 맴돌더니 대학도 인 서울로 갔고 군대 마치고 복학해서 영어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더니 토익점수 800점대에 졸업도 하기 전에 대기업 두 곳에 합격해서 부모님의 한을 한 번에 풀어드린 것이다.


시골에서 상경해 힘든 서울살이를 아들이 어깨 펴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안 그래도 아들, 아들 우리 아들을 입에 달고 사셨는데 그런 아들 기안 죽게 탄생신화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갈 때마다 그에 적절한 설화를 만들어 주시더니 정말 그 아들이 한 번의 실패나 낙오 없이 부모님의 꿈을 다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런 오빠를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좋기도 했지만 왜 나에게는 그런 지지의 말씀도 없었을뿐더러 기죽이는 말만 하시는지 불만이 커져 갔다. 같은 집에 사는데 오빠는 늘 주인공이고 난 늘 엑스트라인 것일까? 대우도 달랐고 탄생 실화도 없었다. 늘 오빠의 신화를 듣고 살아야 했다. 실제로 해내는 오빠를 옆에서 지켜보며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의 공연을 보고 박수를 보내는 청중과 같은 삶을 살았다.


왜 신은 공평하지 않아서 모든 재능을 오빠에게만 준 걸까? 의문을 가지면서 기죽어 사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좋은 것과 좋은 말은 다 오빠의 차지였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온갖 잔소리와 궂은일은 나의 몫이 되었다.

나도 공부하느라 애쓰는데 집안의 잡다한 일은 왜 내 차지가 돼야 하는지? 체력이 오빠가 더 좋은데 오빠는 나가서 놀아도 아무 말씀이 없으신데 난 그러면 안 되는지 불만이 쌓여갔다. 늘 나에게 향한 오빠의 무시의 말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무엇을 의논하거나 물어볼 수도 없었다. 모든 말들은 무시의 말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모님은 별 상관을 안 했고 오빠 편을 드니 내가 설자리는 없었다.


유독 모든 실패와 좋지 않은 상황들은 모두 내게만 찾아오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나 오빠에게 오는 피드백이 좋지 않으니 늘 의기소침하고 소심하며 자존감 낮은 사람이 되어갔다. 고3 어느 날 대학에 가겠다는 의사표현을 했는데 그때 돌아오는 답은 '너는 공부를 못하잖아'였다. 중상위권인데 공부를 못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날마다 대학 갈 거냐고 물어보시면서 넌 공부를 못한다고 주입을 시키는 것이다. 폭력적 성향이 있던 아빠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별 뾰족한 방법이 없는 19살 고등학생은 그렇게 한이 되어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 꽤 오랜 세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이후로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나쁜 방법으로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에도 별 관심이 없어졌다.


그날 이후로 나조차도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정말 실패한 인생으로 우울한 인생으로 자신감 없는 인생으로 사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IMF로 갈 수 있는 회사도 많지 않았지만 현대 계열사 무역회사에 입사했는데도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바보로 여겼다. 지금 같으면 일이 어렵게 느껴져도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배우면서 해냈을 텐데, 아빠 말대로 공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조금만 어려워도 머리가 하얘지면서 겁을 먹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좋은 직장을 다닐 수가 없었다. 아빠의 잘못된 세뇌가 20,30대를 절망의 나락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 세뇌와 굴레를 벗는데 20,30대를 다 바쳐야 했다.


'난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마음의 힘을 갖게 된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아직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내가 얼마나 총명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인지, 의지가 강한 사람인지!!!'

아직도 스스로를 의심하며 믿지 못하지만 많은 어려운 상황에도 이만큼 살아낸 것 보면, 난 분명히 특별한 존재다.


나의 부모님 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실수를 한다. 삶을 살아가는데 이겨낼 파도가 많은 인생에 굳이 그런 말로 삶의 의욕까지 꺾는 잘못된 언어를 가진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빠와 나는 어차피 같은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났고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 그런데 삶의 질을 바꾸고 삶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각자의 성향도 있겠지만 결국, 말의 힘이다.


오빠에겐 탄생신화 학교 설화까지 만들어서 주입시킬 만큼 그의 존재 의미와 귀함을 끊임없이 말했다면 딸인 내게는 부족한 면을 지속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특별한 탄생설화도 들어본 기억이 없고 아무런 기대조차도 없었다. 이것이 둘의 삶을 완전히 다르게 살게 했고 가치관도 전혀 다르게 형성되게 한 것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밑바탕이 되어있는 전형적인 부모 밑에서 오빠에겐 그나마 좋은 터전이었지만 내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유아교육에 관심을 갖고 유아 심리며 아동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부모 영향이 크다. 부모를 원망하기 위함이 아니다. 적어도 울타리 안에 있는 자녀들에게 풍부한 유산은 줄 수 없어도 정신의 유산은 줄 수 있으니 이왕이면 눈에 들지 않고 성에 차지 않더라도 훈육이라는 틀을 가지고 자녀를 무시하고 잘못만을 지적하기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재능을 발견해주고 독려해준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나의 부모님이 오빠에게 한 것처럼 '너는 귀한 존재야! 너의 태를 묻은 곳에 네가 다닐 학교가 세워지다니 넌 대단한 아이야 대단한 존재야'라는 식의 의미부여를 해준다면, 거짓으로라도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면 아이는 어렵거나 힘든 상황에 놓여도 그것을 쉽게 뛰어넘는 자랑스럽고 건강한 사람으로, 인재로써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오빠가 정말 총명하고 뛰어나서라기 보다 부모님의 의미부여와 오빠에게 전달되는 믿음이 오빠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오빠는 실제로도 나와 다르게 자존감이 높다. 위기관리 능력도 좋고 한 번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꼭 이루어낸다. 대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잘 버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급도 시기에 맞게 차근차근하고 있다.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평범한 삶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다.


나에게도 탄생 설화나 학교 설화같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말들을 해 주셨다면,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주셨다면 지금과는 다른 성격이 형성되었을 텐데, 역경도 별것 아니게 뛰어넘는 사람이 되어있을 텐데,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늘 자신감과 용기 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자신을 볼 때면 가엾을 때가 많다.


이런 내게 내가 의미 부여를 한다. 내가 얼마나 귀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무엇이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고 늘 말해준다.

'난 베스트셀러 작가야!!! 정말 훌륭한 교사야!!! 적어도 말을 할 때 생각은 해보잖아 

참 많이 참고 남다른 삶을 살기 위해 애쓰잖아 그런 내가 참 좋다.

그래도 순화된 말로 이야기하려 하고 화내기를 더디 하고 상대의 장점을 발견해서 말해주려 하잖아~

난 참 멋진 사람이야,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 귀하고 귀한 사람이야!!!'라고


생각나는 모든 좋은 말들을 나에게 내가 직접 해준다. 하나의 의식처럼 그 좋은 말들이 세뇌되어 삶을 좀 더 풍성하게 하고 싶어서 

그래서 필명도 풍요로움으로 정했다.

모든 것을 풍요롭게 느끼며 살고 싶어서 그렇게 믿다 보면 실제 삶에도 풍요가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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