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차이

다자녀 가장이 보는 글(가족소설)

by 가리느까

아내와 나는 정확히 열한 살 차이가 난다.

사내 커플, 정확하게는 사장 부속실 여직원과 말단 사원 관계로 처음 만난 아내는 연애 시절 쉽사리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같은 회사에 출근하면서도 얼굴 마주칠 날이 별로 없었던지라 숙직 날이나 돼서야 겨우 "안녕히 계세요"라며 퇴근하던 아내와 그것도 대화라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아내의 집. 그러니까 지금의 처가는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은 세입자가 슈퍼를 운영했고, 2층에는 처이모, 처외삼촌, 처조카(남) 두 명이 살았으며, 3층에 장인 장모 처남이 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장인은 '나이 차가 많으면 딸이 늘그막에 고생한다'는 이유로 내 얼굴조차 마주하려 들지 않았고, 아내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내가 장인이 허락할 때까지 집 앞에서 무릎 꿇고 있어 보라며 그야말로 내 편이 아닌 미래의 남편(남의 편) 대하듯 무책임한 조언을 일삼았다.

어렵게 입성한 궐(처가)에는 난감한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처형도 손윗동서도 나보다 여덟아홉 살 아래고, 심지어 막내 처이모는 나와 겨우 서너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으니, 어쩐지 다들 나를 어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내 쪽에서는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눈치였으나, 아내의 친구들이나 친구들의 남편들도 모두 비슷한 또래로 모두 나를 '도둑놈' 취급하는 것 같아 어데 가서 진짜 도둑질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질 판이었다.

한데 그 모든 것은 아이가 생기기 이전의 문제였다. 아이가 셋이나 생겼으니 열한 살이라는 우리의 나이 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서로 '여보'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둘이 똑같이 '꿀물'이라고 불렀고, 언젠가부터 아내는 존댓말은 고사하고 반말에 심부름까지 시키기 예사였다.

3년, 4년 터울로 아이 셋을 낳은 꿀물(아내)은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맞벌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열한 살의 나이 차는 어느새 정년을 네다섯 해 남겨놓은 나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아내한테 부담이 되었으니, 그 옛날 장인이 말한 '늘그막에 고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년까지 일하고도 퇴직 후 곧바로 연금이 나오지 않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건강상의 이유뿐만이 아니더라도 60세 이후로 더 이상은 일할 생각이 없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아무 대꾸도 없이 눈만 동그래져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괜한 말을 해 놓고 어어, 이게 아닌데 했으나 이미 늦어버린 걸까. 아내가 더듬더듬 말했다.

"애 셋을 낳아 이만큼 키웠으니 이제 내 옷 돌리도!"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는 아내가 말한 옷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그 옷은 저 유명한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그 옷이다. 날개 달린 그 옷을 입고 이제 자기 고향(?)인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니 숨겨놓은 옷을 달라는 말이다. 원초적 '도둑놈'이었던 나는 각성하여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불안해하다 이윽고 경건한 마음으로 평소에 하는 척조차도 않던 욕실 청소를 했고, 은퇴하더라도 돈이 될 만한 일을 머릿속으로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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