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가장이 보는 글
같은 경상도라 하더라도 경주 사투리는 차별화될 성싶게 어려운 편이다.
신혼 초, 대구 출신인 아내가 경주 본가에서 시어른과 함께 식사할 때였다.
"야아~야, 단디 쵸 무래이."
단단한 뼈나 가시가 있는 생선 같은 음식물을 먹을 때 주의를 기울이라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아내는 깜짝 놀랐다. 처먹으라는 말로 들렸으니 놀랄 만도 했겠다. '뼈도 못 추린다' 할 때 쓰는 '추리다'의 활용어 '추려'를 줄여 '춰'가 되었고, 다시 경주식 발음으로 '초'나 '쵸'가 된 걸 아내는 알리가 없었으니까.
어쩌겠나. 작금의 경주말-경주마 말고-이 신라시대에는 서울말이었다는데.
어머니는 게를 좋아하셨는데 게는 또 '기'라고 하셨다.
"야들아, 기 무러 온나."
개떡 같은 말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나와 달리 아내는 여전히 경주 사투리에 어색했고, 아이가 셋으로 늘어난 요새는 세 아이도 할머니가 구사하는 언어의 절반 정도는 못 알아듣는다.
나는 중간에 있는 통역자로, 2개 국어를 동시에 하는 듯싶다.
어느 날 연예인이 나와 요리를 선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던 막내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기버터가 뭐야?"
기버터?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지라 모르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아이에게 뭐라도 설명해줘야 할 것 같았다. 당장 떠오르는 건 기제사나 '이미 기(旣)' 자가 들어가는 어휘에서 풍기는 느낌이었다.
그때, 둘째인 딸내미가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말하던 기로 만든 버터 아냐?"
막내 아이가 어리둥절해하면서 되물었다.
"기라니, 바다 게?"
"바다 게로 어떻게 버터를 만들지?"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게를 산 채로 통에 넣고 압축기로 기름을 짜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막내 아이가 다시 말했다.
"아우슈비츠처럼?"
동물 학대 같은 단어도 떠오르고 잔인한 장면이 상상되었으나, 막내한테서 요새 한창 꽂힌 세계사 공부를 제법 한 티가 났다. 설거지하는 줄 알았던 아내는 무심코 이야기를 듣다가 스마트폰을 들고 살며시 내게 다가와 검색 결과를 보여줬다.
GHEE. '남아시아의 액상 버터. 주로 인도요리에 쓰인다.'
기(버터)를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니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두 번째 그 '기'는 공연히 우리나라에 와서 고생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