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소설) 다자녀 가장의 삶에 관하여
오전 10시 비번을 나왔다.
맛있는 국수를 맛 보이려 아내와 (방학 중인) 막내를 회사 앞으로 나오게 하였다.
국수는 과연 맛있었다.
국수가 얼마나 맛있어야 20년 차 주부를 만족시킬 것인가.
(남이 만들어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는 주부는 일단 빼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맛있다'를 수 백 번 반복하니 '언니' 사장은 아이용 국수를 맛보기용으로 내주고, (절대 소문내서는 안 된다며) 아내한테 육수를 두 통이나 선물했다.
국수를 먹고 기분 좋게 돌아오던 길이었다.
구(區)를 가르는 터널 안에서 갑자기 내 차 앞으로 둥그렇게-알루미늄 휠 같이-생긴 물체가 굴러왔다.
앞뒤 옆, 거의 1~2미터 간격으로 많은 차량이 운행 중이라 피할 겨를도 없었다.
카가가각!
앞 범퍼에서 난 소리일까?
둥그런 게 내 차와 충돌 후 어디로 튕겨져 나갔는지까지는 모른다.
룸 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 얽히고설키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아 보였다.
비교적 긴 신호를 주고받는 교차로 한가운데 섰을 때, 차에서 내려 보니 과연 앞 범퍼가 긁혀 있었다.
조금 더 고개 숙여 차 밑을 보는데 물인지 오일인지 모를 액체가 보닛 깊숙한 위치에서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이런 된장.
근처에서 H자동차 수리 전용 '파란 손'을 본 적이 있기에 주변 대로 상가를 몇 바퀴 돌아 겨우 찾고서는 반가운 마음에 기사 양반에게 차 아래를 보여줬다.
"에어컨 물입니다."
평소에 차 안 온도가 36도를 넘어도 혼자서는 잘 안 트는데 그날은 아내와 아이가 타고 있어 에어컨을 풀가동한 터였다.
'그냥 가라'는 기사의 말에 고맙다고 넙죽 절하며 차에 타는 순간,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고 (나서) 제일 밝은 표정이더라, 방금."
비난은 아닌 것 같아 무언가 답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다 문득 전날 읽은 소설 속 구절이 생각났다.
"네가 거울로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 본 시간이 더 길다."
그러면서 '오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멋진 말이었다고 생각하는 찰나, "또 어디서 들은 연애 기술을 여기서 들먹이노?"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혀 멋지지 않았다나 보다(소설 속에서는 아주 많이 정말 멋져 보였는데).
에어컨 물인지 차 부품에서 새는 오일인지도 분간 못하던 남편은 아내 몰래 에어컨 단수를 3단에서 1단으로 슬며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