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장엘 가도 생선이 매련이 없어 못 사겠어.”
몇 년 전 어느 날, 시장을 가도 마트를 가도 생선을 살 수가 없다고 엄마가 말을 했다.
난 그 후로 장을 보러 가면 생선 매대를 지나 칠 수 없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생선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발길이 저절로 갔다.
씨알이 굵고 싱싱한 생선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버지 생선 안 떨어졌어?”
“아이고, 뭘 또 물어봐. 너가 지난번에 사 보낸 거 아직 있어. 암 것도 사지 마.”
생선을 사지 말라는 엄마의 말뜻을 나는 이내 알아들었다.
“알겠어, 엄마 이번엔 안 살게.”
엄마는 자식들이 생선 사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가 예전처럼 생선을 드시질 못 하기도 하지만 엄마도 요즘 생선 요리를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평생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생선 요리를 했던 엄마가 이제는 기운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눈이 어두워지고 치아가 좋지 않은 아버지 생각에 그저 먹먹함이 든다.
생선 반찬이 없는 밥상을 타박했던 젊은 날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수많은 음식 중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김치도 나물반찬도 아닌 생선과 고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빛 좋은 고기와 신선한 생선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앞선다.
아버지 밥상에는 고깃국 아니면 생선 한 토막이 꼭 올라왔다. 아버지는 생선과 고기가 없으면 먹을 것이 없다고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아버지 밥상을 차리기 위해 엄마는 5일장이 서는 날 장에 가서 제철에 나오는 생선을 무조건 샀다.
살던 곳은 바다가 없는 내륙이었기에 장에서 파는 생선 가짓수는 많지 않았다.
엄마는 얼음 좌판 위에 누워 있는 생선을 꼼꼼히 훑어 빛깔이 맑은 지, 눈알이 선명한 지, 알배기 인지를 가늠해 그중 가장 실하고 물 좋은 생선을 샀다.
골라 사온 생선은 들기름에 굽고, 고춧가루 범벅으로 지지고, 간장으로 조려 밥상 위에 올렸다.
남편과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린 밥상은 단조롭지만 넉넉했다. 들기름에 소금만 뿌려 구운 생선은 간결했고 제철 채소를 듬뿍 넣어 끓인 생선찌개와 탕은 풍성했다.
봄에는 풋마늘이나 생고사리를 넣어 지진 담백한 조기찌개, 여름에는 마늘과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붕어찜,
가을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구이와 조림, 씨알이 큰 갈치구이와 조림,
겨울에는 알과 내장이 꽉 찬 청어구이, 얼큰하게 끓인 생태찌개, 동탯국, 담백한 대구지리를 끓였다.
아버지는 남달리 밥상 예절에 철저하고 바르셨다.
밥 먹을 때는 큰 소리로 떠들지 마라, 젓가락질 똑바로 해라, 밥 한 톨이라도 흘리거나 남기지 마라!
이렇듯 아버지는 생선도 아주 깨끗이 드셨다.
생선이 한 마리든 한 토막이든 살이 가장 많은 가운데 부분은 항상 내 몫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먼저 먹기 전에 생선살을 가시 한 점 없이 깨끗이 발라 내 밥그릇 위에 올려 주었다.
갈치는 가운데 토막의 옆구리 살을 떼어내고 가장 살 많은 부분을 주었다.
그러면 나는 갈치 갈비라고 부르며 양손으로 가시를 잡고 야무지게 뜯어먹었다.
또한 고등어의 기름기가 가장 많은 푸른 살, 청어와 동태의 내장, 오독오독 톡톡 터지는 생선 알도 당연히 내 차지였다.
기름지고 고소한 부드러운 내장은 어린 입맛에도 여운이 오래갈 정도로 맛이 좋았다.
“정말 맛있어. 나 더 줘. 난 이 푸른 게 가장 맛있어.”
나는 아버지가 발라 준 생선살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맛있어? 꼭 꼭 씹어 많이 먹어.”
아버지는 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난 본격적으로 젓가락질을 하며 더욱 입을 크게 벌려 먹었다.
아버지는 가운데 살을 나에게 다 발라주고 그제야 생선 대가리와 옆구리 살을 드셨다.
생선 대가리가 가장 맛있고 그중에서도 눈알이 으뜸이라며 눈알을 쏘옥 빼먹었다.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늘 정갈하고 깔끔하게 살 한 점 없이 드셨다.
“윽, 그게 뭐가 맛있어?”
나는 생선 눈알을 먹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먹어봐야 알지? 한 번 먹어볼 텨?”
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밥상 위, 아버지 생선 접시에는 앙상한 가시들이 수북했다. 다 먹고 난 생선가시 모양새는 완벽하고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버지에게는 하얀 쌀밥 반 공기(아버지는 밥 반 공기 이상을 드시지 않았다), 짭쪼름한 고등어살 한 점, 여기에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구이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무결한 한 끼의 밥상이었다.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고 맑고 푸른 하늘이 유독 높아 보이는 계절이 돌아왔다.
시원하고 선득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 주말, 무얼 먹을까 생각하며 냉장고를 열었다.
냉동실 한 켠에 선물로 받은 굴비와 한 마리씩 깔끔하게 진공 포장된 고등어가 보였다.
굴비를 보니 아버지 좀 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값이 나간다는 이유로 굴비는 잘 사지 않았던 엄마는 굴비를 아주 귀한 생선으로 생각했다. 나는 굴비는 그대로 두고 고등어 두 마리를 꺼냈다.
엄마의 생선 요리 중 자주 해 먹던 음식이 고등어조림이었다.
나는 생강과 마늘을 넉넉히 올려 조린 고등어 요리를 가장 좋아했다.
생강과 마늘, 청양고추를 채치고 간장, 설탕, 후추, 다진 파를 넣어 양념을 만든다.
들기름으로 살짝 구운 고등어에 양념을 부어준 다음 찌듯 조리한다.
엄마는 요즘 유행에 따라 진간장 대신 굴소스를 넣기도 한다. 찌기 전 조선간장 조금과 물을 조금 더 넣어 조려주고 마지막에 통참깨를 솔솔 뿌려주면 완성이다.
그 옛날 엄마의 부엌에서 감돌던 내음이 집안에 감돈다.
은은하고 매콤한 생강 향과 간장의 단내가 흐드득 공기 중에 흩어진다.
고등어 맛! 들기름 맛! 생강 맛! 마늘 맛! 간장 맛!
이 맛이다. 그리운 맛이다.
예전의 엄마가 그랬듯 나도 가족을 위해 생선요리를 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그 있잖아. 고등어에 생강 올려서 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