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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Oct 30. 2022

늦가을의 맛, 늙은 호박 국!

애호박이 늙으면 늙은 호박이 된다고 생각했다.  애호박은 젊은 호박인가?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김장이 끝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요즘은 생소한 늙은 호박 국이다.

늙은 호박 국 이야기를 하면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호박 국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내가 태어난 지역은 작은 군소재지 읍내였다.

어린 시절, 이웃집들은 조그마한 마당이 있어 집에서 여러 먹거리들을 심어 먹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마당이 없어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기쁨은 누리지 못했다.

먹거리를 채취하는 즐거움은 알지 못해도 계절의 상징이 되는 채소들은 이웃의 나눔으로 먹을 수 있었다.


늙은 호박은 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 이웃집 아줌마가 텃밭에서 땄다며 하나씩 주었던 기억이 있다(옆 마을에 살던 할머니도 종종 가져왔다).

그러면 엄마는 그 호박을 마루 어느 구석에 툭 내려 넣고 방치했다.


늙은 호박은 한 동안 마루 구석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방치된 호박을 김장이 끝나면 엄마와 함께 손질을 했다.

늙은 호박은 크고 단단하여 자를 때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조각을 내면 나는 그 옆에서 껍질을 조심조심 벗겨내고 호박씨를 숟가락으로 벅벅 긁어냈다.

씨를 파낸 호박은 한 입에 먹기 좋게 자르고, 긁어놓은 호박씨는 신문지를 펼쳐 그 위에 널었다.

겹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널어놓은 호박씨는 방 안에서 가장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했다. 아랫목에서 바짝 마른 호박씨는 겨울 간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늙은 호박국은 들기름을 둘러 잘 볶는 것이 중요하다.

센 불에서 한 입 크기로 자른 호박과 다진 마늘을 넣고 들기름에 달달 볶아낸다.

들기름을 입은 호박의 색이 더욱 진해지고, 지글지글 소리가 나면 물을 넉넉히 넣어 푹 끓이면 된다.

날큰하게 끓은 호박 국에 마지막으로 천일염으로 간을 하면 끝이다.


아버지는 이런 호박 국을 싫어했다.

저녁밥상에 올라오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마와 나의 노고는 한순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냉대로 호박국은 밥상에서 늘 푸대접을 받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와 엄마는 늦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였기에 좋아했다.

호박 국에 따끈한 흰쌀밥을 푹푹 말아 숟가락 한가득 퍼 올려 갓 담은 김장 김치 하나를 올려 먹으면

호박의 달큰함과 매콤한 김치가 기가 막히게 조화로웠다.

늙은 호박은 단 호박처럼 달지 않아 입안에서 개운함과 시원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가끔 엄마는 호박 국에 청양고추를 넣어 끓여 주었다.



그때는 그 맛이 많이 매워 국을 먹으며 짜증을 내곤 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청양고추를 넣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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