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때마다 밥을 차리는 것이 지루하고 고된 노동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나 자신이 스스로 가족들에게 먹일 밥과 반찬을 한다는 행위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냉장고를 여닫고, 싱크대에서 재료를 다듬고, 불 앞에 서서 지지고 볶기를 한참 한 후, 한 끼 먹거리를 차려낸다. 하루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을 일 년 365일 반복된 행위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내 집 내 부엌에서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하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TV에서 바닷가 사람들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며 김국 요리가 나온 적이 있다. 마른 김이 아닌 물김(건조시키지 않고 바다에서 바로 채취한 것)을 끓여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김국을 건강식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픽’하고 웃었다.
자동적으로 아버지가 생각났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아버지는 꼭 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면 엄마는 화를 내며 밥상을 차렸다.
그때 아버지 밥상에 올라오는 것이 김국이었다.
김국 밥상을 받은 아버지는 몹시 못마땅해하며 큰소리를 냈다. 이유는 이랬다. 성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늦은 밤 김국을 사이에 두고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 밤, 아버지가 먹지 않은 김국은 다음날 내 차지가 되었는데 시간이 지난 김국은 바로 끓였을 때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아 푹 풀어지고 색은 불그죽죽하여 겉모양만 보면 “웩”소리가 나왔다.
그 후로도 엄마는 화를 내며 김국을 끓였고 아버지 또한 그때마다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김국은 우리 집 밥상에서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늦은 시간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음식이 김국이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흔하게 배달을 시켜 먹을 수도 레트로 음식이 발달된 시절이 아니었던 그때, 엄마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에게 있어 김국은 무성의가 아니라 시간의 음식이었다.
또한, 아버지가 생각하는 ‘성의 없다’는 엄마가 끓인 김국이 아니라 국을 끓이는 엄마의 마음을 말한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됐다.
가부장의 전형인 아버지와 엄마의 서투른 감정 표현이 빚어낸 음식, 음식을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며 그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방송을 본 다음 날, 김국이 먹고 싶어졌다. 바닷가 지역이 아니라 물김은 구할 수 없어도 마른 김은 집에 늘 넉넉히 있어, 냉동실에서 김을 꺼냈다.
석쇠에 김을 올려 후드득 재빠르게 굽고, 살짝 구운 김을 손으로 비벼서 듬성듬성 부수어 놓고, 물이 팔팔 끓으면 부빈 김을 넣고, 다진 마늘 넣고, 집 간장 넣고, 포르르 끓여 쫑쫑 썬 쪽파(다진 대파, 부추도 좋다)를 넣으면 된다.
여기에 칼칼함을 더하고 싶으면 다진 청양고추를 넣어도 된다.
집 간장을 넣은 국은 김 특유의 비릿한 맛이 없고 구수하고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김국으로 차려 낸 저녁 밥상은 남는 반찬 하나 없이 싹싹 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