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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Oct 30. 2022

고약한 무즙, 순하고 따스한 정구지죽, 달콤새콤야쿠르트

아빠 손은 약손이다!

 얼마 전, 아이가 결국 오미크론 진단을 받았다(3년을 잘 버티고 견디었는데). 그 후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방문을 닫고 눈앞에서 재빠르게 사라졌다.


나와 아이 사이를 방문이라는 굳건한 담벼락이 가로막았다. 굳게 닫힌 문 사이로 나는 아이와 대화를 위해 전화를 했고 톡을 했고 소리를 질렀다.


‘밥 먹어’ ‘간식 갔다 놨어’하며 먹을 것을 가져다줬다.

방문이 빠끔히 열리며 하얀 두 손이 밥이 놓인 쟁반을 간식이 담긴 과일접시를 아이스크림을 음료를 약을 가져갔다.


방 옆, 욕실을 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소독약을 뿌리며 들락날락했다.

소독약이 떨어지며 만들어낸 하얀 자국이 닥작닥작 묻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없는 쓴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론 내가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범하지 않고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에 문득 무서워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목에 좋다는 생강 도라지차를 끓였다. 아이에게 차가 담긴 보온병을 문 앞에 들이밀고 나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다.


무슨 소중한 약이라도 되듯 말이다.


어릴 때 배앓이를 종종 하던 나에게는 세 가지 처방식이 있었다.

가장 먼저 엄마가 따끈하게 덥힌 무즙을 한 컵 마시게 하였다. 조청을 듬뿍 넣어 진한 갈색을 띠던 무즙은 냄새가 고약하였다.

쓴맛, 신맛, 쿰쿰한 것도 아닌 말로 표현하기가 힘듦이 이었다. 냄새의 고약함 뒤에 달큰씁쓸한 것이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먹기 싫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에 주눅이 든 나는 기어이 한 컵을 다 마셨다.

“엉엉! 나한테 왜 이런 걸 줘! 엉엉! 먹기 싫다는 데 왜 주냐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 억지소리를 했다.

“그럼 아프지를 말아야지. 나라고 너한테 주고 싶것써?”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방문을 쾅 닫고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프다는 자식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는 철없는 딸이 얼마나 얄미웠을까 싶다.


엄마는 나의 억지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처방식을 준비했다.

정구지(부추)죽이었다.

‘죽 먹어’소리에 비적비적 일어나 상 앞에 앉았다. 상 위에는 간 없이 멥쌀과 찹쌀을 반반 섞어 정구지를 듬성듬성 썰어 뭉근하게 끓인 정구지죽 한 사발, 왜간장 한 종지, 야쿠르트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죽을 먹을 때에는 조선간장이 아닌 왜간장을 주었다. 나는 재래식 간장보다 짠맛이 덜하고 달달한 왜간장이 좋았다. 뭉근하게 끓인 죽은 간이 되질 않아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이런 죽에 간장을 똑똑 끼얹어 먹으면 맛이 달짝지근해졌다.

순하고 따스한 죽 한입에 입안이 따뜻해지고 죽 두 입에 배가 뜨끈해졌다.

한 입 한 입 먹다 보면 희한하게 다 나은 듯 해 죽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나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달콤하고 새콤한 야쿠르트까지 깔끔하게 먹었다. 잘 먹는 나의 모습을 보던 엄마는 꾀병이 아닌 가 의심했을까? 아니면 흐뭇했을까?


죽 한 사발 깨끗이 비우고 잠든 나는 아버지의 따뜻한 손에 잠을 깼다.

 아버지는 아프다고 누워있으면 차가운 두 손에 ‘호호’ 온기를 불어넣어 따뜻하게 한 후 내 배를 쓱쓱 문질러 주었다. 다소 무뚝뚝한 아버지가 노래를 할 리 없지만 내 귀에는 아버지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배야 어서 나아라, 아프지 마라, 아가 배는 똥배, 아빠 손은 약손”


 



“띠링”

- 생강 도라지차 말고 꿀차를 주세요. 꿀차가 더 효과가 좋대요!

아이의 톡이 들어온다.

아이 밥 수발에 지친 나는 ‘아이고, 주는 대로 먹지’ 궁시렁거리며 물을 끓였다.

커다란 보온병에 꿀을 담뿍 담고 진하게 꿀 차를 탔다. 차가 식을까 얼른 뚜껑을 닫고 아이에게 톡을 했다.

- 문 앞에 놨어. 가져가.

문이 열리고 보온병을 낚아채는 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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