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길이는 다 다르다!
누룽지를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은 잘 안 난다. 어지간히 다 큰 어른이 될 때까지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있으면 먹기는 했다. 하지만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그런 음식 중에 하나였다.
밥 먹기 싫을 때, 냉장고에 반찬이 있어도 나를 위한 밥상 차리기 귀찮을 때, 집안에 먹을 것이 없을 때, 아니면 정말로 몸이 아파 먹기 힘들 때면 죽이 아닌 뜨끈한 누룽지가 생각났다.
푹 끓인 뜨뜻한 누룽지 한 입에 몸과 마음이 더 할 나위 없이 편안해 지며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오랜 만에 오빠네 가족과 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그때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엄마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 보낸 누룽지 잘 먹고 있냐는 소리가 들렸다.
잘 먹고 있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또 해서 보낼 테니 맛있게 먹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누룽지도 보내셔?”
“응, 오빠가 누룽지 먹고 싶다니까 어머니가 계속 만들어서 보내시잖아. 오빠가 먹고 싶다면 바로 만들어 보내셔. 여튼 어머님의 오빠 사랑은 끔찍하셔.”
언니가 웃으며 말을 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있던 옹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날,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가장 한 전화를 했다.
“엄마, 오빠한테 누룽지도 보내셔?”
다짜고짜 엄마에게 따지듯 말을 했다.
“응? …… 그려. 니 오빠가 아침을 잘 못 먹겠다고 하잖어.”
엄마는 당황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갸가 술도 많이 먹고 소화가 잘 안 된다고 그러잖어. 그래서 몇 번 해 준 겨.”
“헐, 엄마는 꼭 그러더라. 뭐만 있으면 오빠만 주고. 나도 누룽지 좋아해. 나는 돈 주고 누룽지 사먹는데. 왜 매번….”
“응? 그런 걸 왜 사 먹는 겨?”
엄마는 말을 자르며 누룽지 사먹는 것에 놀라며 물었다.
전기밥솥을 사용해 누룽지를 만들 수 없어 그런다고 말했다.
사실 난 냄비 밥도 해 먹고 솥 밥도 해 먹는다. 이럴 때 밥을 좀 눌려 해 먹을 수도 있지만 귀찮아서 해 먹지 않는다는 소리는 하지 않고 억지소리를 했다.
“아니, 그런데 너는 누룽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랴. 잘 먹지도 않으면서.”
“나 좋아한다니깐. 나도 좋아해. 나도 해 줘.”
좋아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어린아이처럼 떼를 부렸다.
“그려? 그랬어? 너도 누룽지 좋아했어? 넌 안 좋아하는 줄 알았지. 별일이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난리를 펴. 알았어. 알았어. 너도 해 줄게.”
“응, 꼭 해 줘. 나도 엄마가 해 준 누룽지 먹고 싶어.”
“근데 좀 기다려야 해. 만들려면 시간이 걸려. 금방은 안 되니깐 만들어지면 바로 보낼 깨.”
엄마 말에 솟아 있던 작은 옹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일 년 내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만들어서도 먹고, 사먹을 수도 있는, 소박하다면 소박하고, 흔하다면 흔한, 엄마 말대로 별거 아닌 누룽지를 탐하는 내 마음을 엄마는 알까?
누룽지는 핑계일지 모른다.
엄마의 그 마음 길이를 그냥 확인 받고 싶었는지도.
갑작스런 나의 요구에 엄마는 황당했을까? 당황했을까? 아니면 어이없었을까?
며칠이 지나고 누룽지가 들어 있는 택배를 받았다.
위생 봉투 여러 겹에 싸져 있는 바싹 잘 말린 누룽지는 검정콩도 섞여 있고, 보리쌀도 섞여 있고, 메밥으로만 된 것도 있었다.
매 끼니 밥을 하며 누룽지를 눌렀을 엄마 생각에 켯속이 복잡해졌지만 모른 척 했다.
누룽지 한 줌 집어 편수냄비에 넣고 끓였다.
냄비에서 바글바글 소리가 나며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감돌았다. 푹 퍼진 누룽지를 좋아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누룽지를 익혔다.
누룽지가 익는 동안 냉장고에서 무짠지를 꺼냈다.
겨우내 된장에 푹 박혀 있던 무짠지를 물로 한 번 씻어내고 최대한 얇게 채 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촉촉하게 무쳐냈다.
뭉근하게 끓여 부드럽게 씹히는 순한 누룽지와 무짠지의 강렬한 짠 맛이 바로 혀 위에서 반응이 온다.
동시에 오도독오도독 씹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덤덤하고 소박한 누룽지 맛이 엄마에게 잠시 머물던 헐거운 서운함을 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