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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행 Sep 13. 2020

왜 소설을 읽는가 8

소설 읽기는 삶의 리허설 

<책벌레>

나는 소설로 두 번 산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늘의 별 만큼 많다. 우리가 그 별을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도 그 유형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세계는 이렇게 다양한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의미망들 속에서 작동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하늘의 별 만큼 다양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인생에 대해 명쾌한 해답은 있을 수 없고, 또 불가능하다. 우리는 보다 나은 해답을 찾기 위해 그저 하루하루를 고투하며 살아갈 뿐이다. 또 한편으로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은 살고 있는 그 순간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는 늘 지나고 난 뒤에야 그것의 의미를 인식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지나간 것을 돌릴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인생이 두 번이라면, 본 게임에 앞서 미리 한번 살아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배우가 본 공연을 앞두고 하는 리허설은 본 공연의 성패를 좌우한다. 미리 해보는 것은 본 공연에 대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고, 실수를 줄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읽기는 삶의 리허설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리허설이라는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연습 없이 인생이라는 무대로 바로 투입된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소설읽기라는 아주 훌륭한 도구가 있다. 그것은 책을 집어 드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이다.    

      

비평가 데리 이클턴은 “인간은 스스로에게 물음을 일으키지 않는 존재이다”라고 말했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자신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 낼 줄 모르는 존재이다. 이 말은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적당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데리 이클던은 “인간은 삶이 발원하는 거기가 어디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물음이 스스로에게서부터 일어나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물음을 일으키지 않고, 스스로 그 물음에 닿아 있는 곳을 찾아 나서지 않으며 그 물음이 다시 자기에게로 향해있음을 피하며 살아간다.”라고 했다. 


소설은 ‘삶의 리허설이다’라는 의미는 소설을 통해 내 삶에 과잉된 것은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이로써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준비의 시간이 있다면 삶이라는 본 무대는 그 만큼 더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안온하고 평탄한 삶을 살았던 인물보다는 실패를 밥 먹듯이 하고, 고통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다 좌절하며, 타인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한심하고 찌질한 인간들로 그득하다. 그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묘한 위안을 느낀다.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능력을 이미 뇌 속에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우리는 나보다 못한,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을 보면서 먼저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이 인생을 헤쳐 나가면서 보여주는 실패담을 지켜보면서 전의를 다진다. 자연스럽게 독자는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라거나 “나라면 이렇게 해보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그 반대의 역할도 한다. 소설읽기는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반추해보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소설 읽기는 어떤 세계를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게 만들어 놓고 미리 한번 살아보는 일이다. 바로 내가 지금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저기 즉, ‘이외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이것은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너머의 세계를 살짝 훔쳐보고 그로써 다른 세계가 하나 더 창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나의 세계는 하나 더 넓어지고 내가 세상을 태도와 인식은 분명 전과 같지는 않게 될 것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바로 이렇게 내 자리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다른 세계를 보는 일이다. 아울러 그 세계를 ‘봐버린다’면 내 삶의 인식과 관점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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