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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행 Oct 04. 2020

왜 소설을 읽는가 9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는 문학

Vincent Magni (brn 1963- French) created this Geisha artwork with 4,000 books

◉문학은 인간의 실존을 탐구


문학은 인간의 실존을 탐구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실존이란 ‘인간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말합니다. 인간은 현실을 살아가지만 우리 인간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고, 어디까지 느낄 수 있으며,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시험 무대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소설가는 현실에서 잘 볼 수 없는 인간의 한 유형을 창조해 냅니다. 소설에서 기이하다고 느껴지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설은 이상한 인물들의 천지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왜 이런 기이한 인물들을 창조해내는 걸까요? 이 세계에 이런 인물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물들은 동일성이나 획일성으로 수렴된 인물들이 아닌, 다양성을 가진 이질적인 존재들 입니다.


소설가는  새로운 인간의 한 유형을 임신하고 출산하여 소설의 장에서 살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혹은 살아남는지 탐구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타진해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잘 못된 것은 무엇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알게 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문학사에서 기이하기로 치자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입니다. 멜빌은 바틀비라는 기이한 인물이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살아갈 때, 어떤 어려움을 겪다가 죽는지를 따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이 세계의 문제가 드러날 것입니다. 


배경은 미국의 월가입니다. 월가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죠.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동자인 바틀비는 고용인의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틀비의 언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틀비는 “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편을 선호(선택)prefer-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전자의 언어는 거부의 언어입니다. 거부의 언어는 위반의 언어입니다. 위반의 언어는 노동자로 하여금 죄책감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후자의 언어, 바틀비의 언어는 여러 가지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호(선택)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거부와 위반의 언어가 아니라, 주체성을 가진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하 생략


개정판 <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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