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편문학 깊이 읽기 9-오래도록 남겨지는일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사고는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어린 자식이 침몰하는 배와 함께 가라앉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국민들은 피토하는 심정으로 그들과 함께 울었다. 부모들은 ‘왜 배가 침몰했는지, 국가는 왜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생계를 접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지만 세상의 반응은 차가웠다. ‘지겹다, 이제 그만하라’와 같은 말들은 더욱 큰 상처가 되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두 번 죽였다. 최은영은 소설 「미카엘라」를 통해 세월호 사건으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는 애도의 윤리에 대해 말한다.
생계를 책임진 ‘여자’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하나 밖에 없는 딸 ‘미카엘라’를 애지중지 키웠다. 그 소중한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졸업을 하고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여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작스레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여자’에게도 깊은 상처가 되었다. ‘그 애들’은 ‘여자’에게 미카엘라와 다름없는 자식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여자’는 “자주 눈물을 훔쳤다. 마음은 불에 덴 것처럼 따갑고 욱신거렸다.”
그러나 미카엘라에게 세월호 사건은 빠르게 잊혀져갔다. “언제나 처럼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 마음의 통증도 무뎌졌기 때문이다.” 미카엘라에게는 세월호 사건을 애도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세상은 참으로 빨리도 그 일을 잊어버리고 없던 일로 덮어두자 했다.” 미카엘라의 나이 서른하나. 그녀가 깨달은 세상은 견고했다. “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20대를 통해 깨쳤다.” 그래서 미카엘라는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승패가 뻔한 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고, 자신을 기꺼이 소외시키고 변형시켜서라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부딪혀 싸우기보다는 편입되고 싶었다.” 그러므로 미카엘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이 최소한 자신 ‘하나’는 살릴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주어지는 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부여된 혜택일 뿐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여자’는 어느 날 한국에 온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그러나 바쁜 딸에게 부담을 줄까 염려되어 ‘여자’는 미사 후 광화문 근처 찜질방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찜질방에서 우연히 만난 낯모르는 노인은 자신이 아끼는 동무의 손녀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되었다는 사연을 ‘여자’에게 들려준다. 노인은 자신의 상처에 진심으로 울어주던 그 동무가 혼이 빠진 상태로 광화문을 헤매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그를 찾기 위해 광화문까지 오게 되었다고 흐느낀다. “노인이 말을 다 끝냈을 때, ‘여자’도 같이 울고 있었다.” ‘여자’는 그 길로 노인을 부축해서 함께 그 동무를 찾으러 광화문으로 간다.
미카엘라 또한 연락이 닿지 않는 엄마를 TV에서 우연히 보고 ‘여자’를 찾아 광화문으로 온다. 그곳에서 미카엘라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찾아 나선 다른 가족들을 본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엄마를 발견한 미카엘라는 큰 소리로 “엄마!”라고 부른다. 그러나 뒤를 돌아 본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미카엘라는 힘껏 “엄마!”라고 불러보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엄마는 아니었다. 소설은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인이 찾는 다는 동무의 손녀의 세례명이 미카엘라이고, ‘여자’의 딸 세례명도 미카엘라라고 말해준다. 광화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있었고, 그녀들의 수많은 딸들인 미카엘라가 있는 셈이었다. 광화문은 이렇게 ‘나’와 ‘당신’의 슬픔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 공간이었다. 누구나 미카엘라의 엄마였고, 모두가 미카엘라였다. 누구나 슬펐고, 그들은 그 슬픔에 함께 동참했다. 이것이 타인의 슬픔을 나와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이 세상에 대해 작가 최은영이 보여주는 애도의 윤리이다. ‘구분 짓지 않는 슬픔’이 나와 당신을 진실로 위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친 마음을 마음껏 짓밟고도 태연한 이 세상에서 그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최은영, 「미카엘라」)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오래도록 ‘남겨진 다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지는 일’은 가혹하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애도의 윤리는 바로 이 ‘남겨지는 일’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도 외면해 버리는 삭막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우리가 끝내 지켜내야 하는 것은 손쉽게 잊고, 후딱 지워버리는 능숙함이 아니라 힘겹게 기억하고 아프게 애도하는 일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타인의 아픔에 대한 냉담한 ‘무관심’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아프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