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사람은 어떤 어려운 책보다 더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보다 사람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사실은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사람을 읽기 위해서다. 사람을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을 잘 읽으려고 책을 읽는 것이다. -소설가 이승우,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은 법대를 다니는 가난한 청년이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찍어 죽이는 잔인한 사건이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노파를 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고약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쁜 영향만을 끼치는 이(蝨)같은 존재인 노파는 죽어도 괜찮다는 나름의 논리를 세우고 결국 실행으로 옮긴다. 독자라면 라스콜리니코프가 내세운 ‘살해 이유’에 대해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라는 이유가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도 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라스콜리니코프는 소설에서 노파를 살해했고, 전당포를 찾은 노파의 동생 리자베타까지 죽이고 전당포를 빠져나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죄와벌』을 읽는 독자들은 라스콜리니코프를 무조건적으로 ‘악인’으로 봐라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명백히 그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잔인하게 한 사람을 죽였고, 아무 죄 없는 동생까지 죽인 살인범이지만 독자들은 한 결 같이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동정어린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심지어 라스콜리니코프의 심정에 공감한다면서, “오죽하면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겠는가”라며 그를 이해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만약 현실에서 이런 범죄가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사건을 뉴스로 접한다면 사람들은 극악무도한 ‘사이코 패스’에 의한 범죄가 일어났다며, 범죄자에게 증오의 시선을 보내며 당장 우리 사회에서 격리시켜 감옥에 쳐 넣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분이 일어났을 것이다. ‘살인자’는 소설에서는 동정 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고 현실에서는 둘도 없는 악인이 된다. 물론 소설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도 있겠지만,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범죄’라는 점에 주목하여 볼 때 사람들이 이렇게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간단하게 짚어보자, 『죄와벌』을 읽은 독자들은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 심리를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충실히 따라왔다. 그 과정에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삐뚤어진 심리가 형성된 이유를 짐작하면서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인간을 이해하면서, 그 인간이 벌인 행동과 결과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앞뒤 맥락과 그 사람의 내면을 샅샅이 탐색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현실의 사람들은 사건의 결과만을 접하고 한 인간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렇게 소설 읽기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을 바꾸어 놓는 일이기도 하다. 진정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소설 읽기를 통한 ‘인간에 대한 끈질긴 탐색’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나은 세계로 만들 것이라 믿는다.
-더행, [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