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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Apr 15. 2021

첫 부부싸움은 마트에서 시작되었다

오늘은 어떤 마트로 가?

첫 부부싸움은 마트에서 시작되었다 첫 부부싸움은 마트에서 시작되었다

2017년 7월 4일. 미국 도착 후 우리 부부의 첫 부부싸움이 있었던 날.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며 어디에서건 불꽃이 터지고, 환호하는 목소리들로 가득했지만 우리의 단칸방은 참 썰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싸움의 발단은 마트, 쇼핑이었다.


미국에 가기 전 아이 있는 집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 집 현관은 매일같이 도착하는 택배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신혼부부 정답게 팔짱 끼고 카트 밀며 쇼핑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매우 드문 연례행사 같은 것 - 궁금하지 않겠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그마저도 팔짱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동네 마트는 각자 시간 되는 사람이 필요할 때 들리는 곳. 남편은 부러 쇼핑하러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해 옷도 누군가 사다 줄 때까지 버티거나,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만을 이용하는, 그야말로 배달의 민족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했다. 원하는 물건을 고민 없이 살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쇼핑은 늘 몸은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는 지치는 일, 가끔은 무의식적인 비교로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었다. 주부가 되고, 아이가 생기며 "마트"만은 내가 싫어하는 "쇼핑"의 범주에서 약간은 벗어났다. 마트는 아이의 놀이터였고, 가계를 꾸려가는 기본이 되는 장소가 되었다. 아! 결혼 전에도 여행지에서 마트를 가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쇼핑이었다. 감히 추천하자면 여행의 하루쯤은 현지 마트를 방문해 보자. 잠시나마 여행자가 아닌 살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훨씬 의미 있고 저렴한 기념 선물을 발견하는 행운도 자주 찾아온다. 






7월 4일, 미국에 도착한 지 5일째였던 우리는 세 번째 마트를 방문했다. 첫 방문은 뉴저지의 임시 숙소에 자리를 잡은 날 근처 한인마트. 당장 먹을거리가 없어 마트 푸드코트에서 정체불명의 퓨전 한식으로 한 끼를 때우고, 쌀과 김치 반찬들을 사 왔다. 두 번째는 북부 뉴저지의 한인마트. 독립기념일 휴일 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내친김에 휴대폰 개통까지 하려고 찾은 곳. 역시 한식이라기에는 애매한, 그렇지만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 음식 맛은 훨씬 좋았던 마트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했다. 한인마트는 놀라우리만큼 한국의 마트와 흡사했다. 이번에도 먹을거리 위주의 쇼핑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산품 코너는 상대적으로 협소했고, 미국에 오기 전 봤던 글들에서도 공산품은 미국 마트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고들 했으니까. 


문제의 세 번째 방문은 월마트였다. 코스트코를 가려했지만, 독립기념일 휴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코스트코 옆 월마트에 들렀다. 휴지, 세제, 세면도구, 이불과 베개 등 코스트코에서 대량으로 구매하기에 적합했던 품목들. 코스트코 회원 가입 방법이니, 추천 물건이니 하는 것들은 미리 찾아봤었지만 준비 없이 방문한 월마트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공간 구성부터 물건 진열 방식도 달랐고, 물건들은 모두 생소했다. 필요한 물건들이 위치한 진열대를 찾는 것부터 수많은 제품들 중 아이가 사용해도 괜찮은 품질의 제품을 골라내는 건 예상보다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시차 때문에 아이는 졸려 칭얼댔고, 아이를 달래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한 톤 높고 밝은 목소리로 아이의 관심을 마트 구경으로 돌리고 있었다. 물론 동시에 눈으로는 열심히 물건들을 훑고 있던 중, 펑! 남편이 폭발했다.


자주,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터지는 남편이지만 이 날은 정말이지 억울했다. 남편에게 그날의 나는 피곤한 가족들 이끌고 쇼핑하느라 철 없이 혼자 신 난 사람이었던 거다. 우리 가족은 이제 막 새로운 곳에 도착했고,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을 사야만 한다. 물건을 구매하며 품질과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미국 마트는 나도 처음이고, 모든 정보는 영어로 적혀있다. 화학성분들의 영문명은 2년이 지나도 여전히 암호처럼만 느껴질 만큼 낯설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지만, 나도 기본적으로 쇼핑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어디 마트로 가?" 몇 개월 후 우리는 둘 모두 한국에서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미국에서의 마트, 쇼핑에 적응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다음 날, 빠르면 당일에도 문 앞에 물건이 도착하고 정 급하면 잠옷 차림으로 동네 편의점이라도 갈 수 있었던 한국에서의 습관을 버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유를 하거나 빵, 육류, 유제품, 술 등을 살 때는 코스트코를 갔다. 아이용 음식이나 제품을 살 때는 Whole foods 홀푸즈. 한국 음식과 재료들이 필요할 때는 한인마트 H mart. 갓 만든 딤섬이 먹고 싶거나 다양한 아시안 음식이 필요할 때는 중국 마트 99 ranch market. 가벼운 생필품이나 해산물이 필요할 때는 shoprite. 아이와 함께 가기에 좋은 target. 파티 준비나 가성비 놀거리를 살 때는 달러 샵. 그 외에도 옷, 가구, 약이나 화장품, 장난감 등등 필요한 품목에 따라 마트는 얼마나 다양한지. 쇼핑 품목에 따라 물건의 질이 좋거나, 가격이 월등하게 저렴하거나 하는 차이가 있어 하루에 몇 곳의 마트를 들러 장을 보는 일도 많았다. 


물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남편은 곧 아마존 프라임 마니아가 되었지만, 첫 해 독립기념일과 같은 불상사는 더 이상은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남편과의 쇼핑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라, 어렵사리 미국 운전면허를 획득한 후 나는 혼자 마트에 다녀오기를 자주 자청했다. 


마트가 머니까 한 번에 쇼핑해서 사 오는 물건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쌀이나 2L짜리 우유들 같은 무거운 것들도 배달 대신 직접 들고 와야 한다. 카트에서 계산대로, 다시 카트로, 차에 옮겨 싣고 주차장에서 다시 집까지 아이용 웨건에 물건들을 옮겨 담아 끌면서 대체 미국 사람들은 카트 3개씩 가득 채운 저 물건들을 어떻게 다 옮기나 궁금할 정도였다. 


아이와 함께일 때는 더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미국은 왜 마트용 카트 크기도 큰 건지, 15킬로가 넘는 아이를 고작 160cm의 내가 들어 올려 카트에 태울 때마다 차력쇼가 떠올랐다. 이런 이유들로 남편은 자주 마트 쇼핑에 함께였다. 나와 함께이거나 나 혼자 가면 잘 사주지 않는 주전부리들을 획득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마트에 가기도 했다. 덕분에 신혼 때도 하지 못한 다정하게 장보며 저녁 메뉴 정하기를 미국에서 원 없이 했다. 물론 여전히 팔짱 끼기는 없었지만 말이다.  






홀푸즈의 오와 열이 잘 잡힌 물건 진열을 좋아했다.



정체 모를 퓨전 한식과 뼈 없는 닭발

붕어빵과 군고구마, 뻥튀기까지 판매하는 한인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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