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사람

by 채진아

"진아야…. 아빠 불쌍해서 어떡하니."

엄마가 너무 서럽게 울었다. 전화로 어떤 사람의 슬픔을 마주할 때는 몸이 굳는다.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은데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달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가느다랗고 옅은 목소리 뿐이어서. ‘괜찮아’라는 말로 위로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아빠의 신장 수치가 급격히 올라 삼성 병원 응급실에 갔다. 만약 신장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으로 그것이 신부전으로 이어져 인공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아빠는 정밀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갑작스레 아프게 되면 나머지 가족들의 삶도 함께 마비된다. 온 정신이 아픈 그에게 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일을 해야 했고 아빠를 가까이에서 보살필 수 있는 건 엄마뿐이었다. 병실에 누워있는 아빠의 뒷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봤을 엄마. 다음날 검사한 결과를 기다리며 외로운 긴긴밤을 견뎌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행여 잘못되는 건 아닌지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그걸 기다려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엄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30년을 함께 살면서 하루라도 엄마가 ‘송아 아빠!’라며 부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주방에서 힘쓸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아빠의 이름을 불렀고 한 가지 일을 시키면 딱 한 가지 일을 하고 내빼는 아빠의 행동에 엄마의 잔소리는 길어졌다. 싸움은 항상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정성을 다해 아빠를 미워했다. 아빠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꼼꼼하지 못한 성격을 가진 일 처리에 엄마는 아빠를 타박했고 그걸 참고받아주던, 조목조목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는 아빠는 쌓아두었던 화로 인해 열불이 올라올 때면 가뜩이나 큰 목소리가 더 커지면서 결국 서로에게 언성이 높아지고야 마는 하루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가득 찬 그들의 하루와 언제고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아빠와 다시 살고 싶냐는 내 물음에 '아니'라고 답했던 엄마를 보며 같이 지내온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나는 정말로 엄마가 아빠를 지겨워하는 줄 만 알았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검사 결과가 나온 순간. 투석을 해야 한다고 했던 아빠의 신장 수치가 기적적으로 떨어져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 되었다. 그제야 엄마는 눈물을 멈추었다. 아빠가 퇴원하면서 어지럽던 우리의 일상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면서 엄마는 아빠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송아 아빠, 이리 좀 와봐요.’ 만약 아빠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엄마는 더 이상 그 이름을 부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걸 볼 때면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싸운 뒤 하루이틀이 지나면 때론 하루 반나절만으로도 엄마가 아빠에게 첫마디를 꺼내던, 아빠가 엄마에게 첫마디를 꺼내던 그 시작으로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싸우기 전의 사이로 돌아간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그저 아름다운 사랑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미운 사랑이 함께 공존해 있다는 걸.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둘만의 세월 속 켜켜이 쌓여온 시간이 틈을 메우고 있었다. 미워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랑. 그건 우리가 처음 느끼는 애틋함이 묻어나는 찰나의 사랑보다 숙성된 과일의 향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았다. 사랑이 끝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포기할 때,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을 때,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을 때, 그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엄마는 아픈 직후 아빠에게 아직 할 얘기가 많아 보였다.

돌아갈 자리에 만약 그 사람이 부재한다면 평생을 함께 한 사람이 한순간에 떠나가 버린다면 우리는 대체 무얼 해야 할까. 고생만 하다 저렇게 가버리는 거 아니냐고 불쌍하다고 그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람. 그건 누군가에게 진짜가 되어가는 사랑이었다. 연약한 존재를 사랑하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세상이라는 서툰 삶에 가장 가까이에 의지할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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