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화가
“여러분 이쪽으로 오세요
이 그림은 잠자는 집시라는 그림인데..”
검은색 정장 차림의 도슨트가 한 그림 앞에 서서 열심히 그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그녀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작은 키 때문에 안 보이는 그림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려고 사람들 사이에 빈틈을 찾으려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쓰러졌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다들 그 자리에서 몸이 싸늘하게 굳어 버렸지만
도슨트는 흔히 있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그녀를 일으켜 토닥이며 깨워서 밖에서 쉬고 오시라고 말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전시회에서 처음 보는 장면에 도슨트를 따라다니는 인파들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고 나는 사람이 정말 놀라면 벌쩍 뛰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굳는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이 분위기를 감지한 도슨트는 침착하게 분위기 전환을 하려고 마이크를 잡고
"(조금 큰 목소리로) 여러분 놀라셨죠? 가끔 이 그림을 보면 쓰러지시는 분들이 있어요.
사자의 눈을 보면 알 수 무언가를 느끼시나 봐요.
여러분도 이 그림을 천천히 들여다보세요
(능숙하게 사람들에게 속삭이며) 사자가 여러분에게 말을 걸 수도 있어요."
사자의 눈?
나는 도슨트의 말처럼 그 그림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그림에 집시처럼 보이는 여자가 보였는데 그 집시는 방금 노래를 부르다 내려놓은 기타와 술병을 옆에 두고 꼭 막대기를 쥐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옷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형형색색 내가 좋아하는 핑크 하늘 연두색 줄무늬 모양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딱 내 취향의 옷이라서 ‘나도 저런 옷 있으면 한번 입고 싶네 ‘ 막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에 뒤에서 그녀가 아닌 나를 노려보고 있는 짙은 갈색 사자가 보였다.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듯한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진 모습으로 집시가 아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사자.
그 도슨트가 말한 눈은 노오란색 빛을 띠면서 그 안에 보이는 점 하나가 나를 맹렬히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자는 나에게 다가와
“너 언제까지 그 장대만 쥐고 있을 거야? 너 뛸 거야? 안 뛸 거야?”
마치 나를 책망하는 목소리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집시를 봤을 때 편안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집시가 아닌 내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붓만 잡은 채 그 꿈을 모른 척하고 있는 나를 사자는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섬뜩한 기운이 내 목 뒤를 타고 내려왔다.
아 이래서 아까 그 여자가 쓰러졌구나 싶었다.
어떻게 이 화가는 나를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인가?
어떻게 그림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가?
라는 생각으로 다시 도슨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앙리 루소라는 화가는 원래 파리 세관에서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49세부터 그림을 독학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나와 같은 사람!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릴 수 없었던 사람이라서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그림들에 조금씩 더 빠져 들게 되었다. 나중에 도슨트는 너무 피곤하면 식욕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꿈을 잃어버리고 누워있는 집시 같은 사람에게 ’어흥 얼른 일어나! 너 그렇게 살 거야?‘ 라며 사자 혼쭐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본 그림들 중 ‘뱀을 부리는 주술사’라는 제목의 그림은 너무 이국적이어서 이 사람은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어진 도슨트의 설명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 그림은 해외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화가의 상상만으로 그려진 그림이에요.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파리의 식물관에 살다시피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가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그렸다니 그림을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 가능한 일인가?
상상이라 하기엔 그 그림은 내게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고, 그 주술사가 피리로 뱀을 부르고 있었는데
그 그림은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가 뱀과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저 주술사의 모습은 머리카락이 길게 자란 볼드모트를 떠오르게 했다. 볼드모트가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저런 모습이었겠지?
그렇게 그에게는 그렇게 49세에 시작한 그림이 인생의 반환점이었지만,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만 그린 그의 작품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린애가 그린 것 같이 느껴져 많은 악평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엔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한 남자가 있어~ 그를 너무 사랑한 ‘ 피카소가 그의 가치를 알아봤다고 한다. 피카소라니! 이 그림들에 반한 나도 그럼 피카소의 감각을 갖은 건가?라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큭큭큭 웃으면서도 앙리 루소의 그림들이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고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림을 배우지 않은 나도 그림을 그리다 보면 피카소 같은 사람이 알아봐 주지 않을 까라는 생각에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화가인 빈센트는 스물일곱 살에 불현듯 동생 테오에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했고, 100세 가까이 그림을 그린 모지스 할머니도 인생에선 너무 늦은 때란 없다.라고 말했듯이 나도 늦지 않았어’
라고 생각하며 나도 그렇게 남편에게 그림을 그리겠노라 선언한 것이었다.
그때 내 나이 31살 봄이었다.
호텔리어로서 삶을 살고 있었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