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부서에 갈래? 말래?

내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 Loading …….

by 야초툰

내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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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시간은 오전 10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도착한 나는 광활한 호텔 로비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떨리는 심장소리에 눈을 감고, 주머니에 축축한 손을 찔러 청심환 한 알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는 프런트에 직원들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왔다.


“어머, 쟤 면접 보러 왔나 봐~ 그 부서 아니야?”

“어! 딱 봐도. 지금 공석은 그 부서밖에 없으니까 아마 맞을 거야”

“불쌍하다. 만약 나라면 뽑혀도 그 부서는 절대 안 갈 텐데.”

“그러니까, 호텔 내부 공고를 냈는데도 아무도 지원 안 했잖아.”

“누가 가? 여자만 20명이나 있는 그 부서를 말이야.”

“내 말이.”


소파에 앉은 나를 보며 심심한데 씹어보는 안줏거리 삼아 정답게 나누는 그들의 대화 소리에도, 나는 그곳이 지옥이라도 좋으니 이 호텔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GRAND FOREVER FIVE STAR HOTEL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려진 호텔이다.


유명한 톱스타 연예인들도 결혼하기 위해 일 년 전부터 줄을 서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이 특급 호텔의 객실 수는 그랜드라는 말을 증명하듯 보통 특급 호텔의 객실 수의 2배인 1,200개의 객실이 항시 VIP들의 투숙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런 호텔에 내가 2차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어제 면접 보러 가기 전 엄마가 미리 챙겨준 청심환이 내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였던 청심환이 혀끝에서 설탕이 녹듯 사라졌을 때, 깔끔한 정장 차림의 안경 쓴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그래도 확인해 봐야겠다는 듯 정중하게 웃으며 물었다.


“오늘 면접자 수연 씨 맞으실까요?”

“네!”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순간 굳어서 나는 제대한 군인처럼 딱딱한 구령 같은 대답을 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이 익숙한 것처럼 남자는 자신을 인사부 담당자라고 소개하며 나를 면접장으로 안내했다.


“이력서 사진과 조금 달라 보여서. 그럼, 이쪽으로”


나는 멋쩍게 웃었다. ‘조금’ 다른게 아니라 ‘아주 많이’ 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색함에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같은 정장이라도 나와 다른 아우라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방금 다림질 한 듯, 잔 주름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 정장, 24K 금빛 명찰에 박힌 그의 이름,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동작들. 손님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시간동안 나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여기가 꿈 인가? 현실인가? 헤메이고 있는 나에게 그가 말을 걸어왔다.


“저희 호텔 방문은 처음이신가요? 언뜻 보기엔 시설들이 노후화되었지만, 그만큼 호텔 오픈과 함께한 직원들이 많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직원이 얼마나 이 호텔을 애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니까요. 만약 수연 씨가 저희 호텔에 근무하게 된다면, 수연 씨도 그들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아…. 네.”


꼭 20년 넘은 호텔에서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호텔직원이 많다는 말이 매력적인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만큼 바꿀 수 없는 관습이 많다는 거니까. 하지만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눌렀다. 만약 내가 면접에 합격한다면, 그는 내 인사평가를 담당할 인사 담당자. 처음부터 빨간 도장을 찍힐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 곧 면접장이라고 적힌 문에 다다랐다. 그는 끝으로 면접 시간이 총 4시간이고, 인사부 부서장 면접이 끝나면 해당 부서장을 만나고 다음은 총지배인 면접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보통 다른 호텔들은 면접 절차를 이틀에 나누어서 치르는데, 하루 만에 끝나는 패스트트랙 같은 일정이라는 자랑을 덧붙였다.


‘유명한 호텔이니까, 지원자가 많아서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면접장 문을 여는데, 인사부 부장으로 보이는 여자와 반대편 의자에는 다른 한 명의 지원자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서둘러 남은 빈 자리에 앉았는데, 인사부 부장은 본인과의 면접은 어차피 겉치레와 같은 것이라며 남은 부서장 면접을 잘 봐야 한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사부장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수연 씨는 프런트를 지원했는데…. 예약부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의 경력이 프런트 쪽이어서 예약부서는 생각을 안 해봤었는데…요.”

“그래도 저희 호텔은 부서 이동이 잘 되는 편이라서, 예약부서에서 전체적인 호텔 정보를 파악하고, 프런트로 부서 이동하는 분들도 많아요.”

“아…. 그렇다면야. 예약부서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렇죠?”


인사부장의 눈썹이 위로 두 번 움직였다. 마치 뿌연 물 속에 헤엄치던 물고기를 한 곳에 몰아 넣는 낚시꾼처럼, 능숙하게 그녀는 나를 원하는 대답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내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여성 지원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주연 씨는 식음료부를 지원 했는데, 이 정도 경력에 영어 실력이면 예약부서는 어떠세요?”

“저는 식음료 매니저가 되는 게 꿈이기 때문에, 예약부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주연이라는 지원자 눈은 대답과 함께 반짝였다. 소신 있는 눈빛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흔들리는 눈빛을 숨기기 위해 여기저기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이미 결과는 그 질문에서 결정이 된 것 같았다. 한숨이 튀어나왔다. 나머지 면접 절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인사부장이 올라갔던 눈썹을 다시 내리며 대답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일단 알겠습니다.”


인사부장은 오른쪽 가슴에 꽂혀 있던 펜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들어 일방적으로 나를 향하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부서장님과 면접을 잘 봤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친절인가? 그때는 몰랐다. 사소한 질문 하나가 한 명은 합격 다른 한 명은 불합격을 나누게 되었다는 것을. 주연과 나는 마지막 면접인 총지배인과의 면접을 웃으면서 같이 봤지만,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합격 문자를 받은 건 한 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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