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는 정규직, 나는 다시 계약직

운명의 장난

by 야초툰

심판의 날 아침은 날씨마저 아름다웠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미세먼지도 초미세먼지조차 하나도 없는 맑은 공기에, 심지어 출근길에 화려하게 핀 분홍색 벚꽃들이 나를 향해 인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판의 날과 맞지 않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 낱같은 희망도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마음과 상관없다는 듯, 출근하자마자 나를 부르는 J 부장의 목소리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수연 씨, 내 방으로.”

마치 사형수에게 오늘이 생의 마지막임을 알리는 교도관의 목소리. 설레던 나의 심장을 싸늘하게 식게 했고, 내가 그의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예의상 던지는 인사말도 없이 회색 무테안경을 올리며, 나를 비웃는 듯한 비음 섞인 특유의 목소리로 심판을 시작했다.

“수연 씨는 입사한 지 1년이 되었지?”

“네...”

“그래서 나는 수연 씨를 계약직으로 연장해서 일 년의 기회를 더 줄지 말지, 아니면 정직원으로 전환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말이야..”

“네...”

“어떨 것 같아? 정직원이 될 것 같아?”

“.....”

그는 마치 내가 내 입으로 제발 계약직이라도 연장해 달라고 말하길 원하는 것처럼 지그시 쳐다보았고,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 한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며 너는 머지않아 그 대답을 네 입으로 하게 될 거라는 듯 입술을 한쪽으로 올리며 웃어 보였다.


“본인은 입사하고 실수를 몇 번이나 했지?”

“그게... 예약 날짜 잘못 1건 받은 거랑 룸서비스 잘못 찍은 거 6번 해서 7번 정도요.”

“정도? 정확히 알아야지 본인은 입사하고 10번의 실수를 했어 이걸 읽어 봐.”


나는 그에게 들고 있던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의 손에는 그동안 내가 실수할 때마다 적어서 제출한 반성문(STATEMENT)이 들려 있었다. 형광등에 비치는 스테이트라는 글자에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읽지 않아도 떠오르는 말.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울컥했다. 나는 동기인 나라에 비해, 풀밭에 풀어놓은 망아지였다고. 그래서 직접 부딪히며 깨달아야 했다고. 그런 내가 실수가 많은 게 당연하지 않냐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도 그에게는 변명일 뿐이었다. 나를 조금도 쳐다보지 않고 J 부장은 나에게 예고된 판결을 내렸다.


“수연 씨, 자기가 한 실수도 기억을 못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 발전이 없다는 거거든. 본인과 같이 입사한 동기는 실수를 몇 개나 했을 것 같아? 지난 일 년 동안 1개! 1개를 했다네... 그럼, 여기서 정직원은 누가 되고 그나마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계약직 연장은 누가 되는 게 맞겠나? 수연 씨가 부장이라면 말이야! “

“제가... 계약직 연장... 맞겠네요.”

“맞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결과가 숫자가 모든 걸 설명하니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 네..”


자신이 계약직 해지를 할 수 있는데,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도 얼마나 나를 배려한 결정인 줄 아냐며. 입을 히쭉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가 쓰고 있는 회색 안경이 동의를 하듯, 시소처럼 움직었다.

꿀 벙어리가 된 채로 나는 J 부장 사무실을 나왔다. 나는 왜 내가 동기보다는 일복이 많아서 실수가 잦았다고 하거나 아니면 저는 스페어라서 선배들에게 많이 배우지 못해서 그랬다고 한마디 정도는 외치지 못했을까? 후회해 봤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어제 내가 화장실에서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걸, 다시 재확인한 것뿐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이제 막 출근한 사람에게 비수 꽂는 말들을 늘어놓는 부장의 인격이라면 어떠한 감정적 호소도 씨알도 안 먹힐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계약직 1년을 더 추가하게 되었다. 어제부터 들끓던 나의 마음속에 복수라는 두 글자가 다시 한번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 동기는 예정되어 있었던 정직원이 타이틀을 얻게 되었을 뿐이야. 그런데 스페어였던 나는 잘리지 않고 계약직 연장이 되었어. 어쩌면 오늘부터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내가 만들 수 있는 없었던 시간이야.’

그 순간부터 나는 없었던 시간을 가득 메울 복수의 시간을 꿈꾸기 시작했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나 반전이 있어야 재밌는 게 아니겠냐며 나를 과소평가한 J 부장의 사무실을 노려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평가했어?
스페어는 잘리거나 계약직일 뿐이라고?
당신이 구멍 낸 스페어가 어디까지 올라가나. 내가 증명해 보이겠어.’


그때부터 말 못 했던 짐승이 마음속으로 울부짖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부서 이메일을 보더라도 남들보다 더 꼼꼼히 봤고, 추가 근무는 일상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냥 그때부터 나는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부장이 말했던 숫자로 모든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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