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라서 불편한 호텔
직원 할인가, 직원 무료 숙박 및 무료 숙박권은 내가 호텔리어의 직업으로서 진로를 결정하는데 많은 지분을 차지했었다. 특급호텔을 직원 할인가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특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특급호텔에서 일을 해보니 그 특권 같았던 할인요금은 매일 “열려라 참깨”를 외쳐가며 새로고침을 누르기 일 수였고 혹시나 날 위해 한방 정도는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담당 부서에 구걸의 메일을 보내기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심지어 일정이 취소된 직원이 있다면 조용히 그 직원 뒤에 가서 그 호텔 직원가를 나에게 양도하라며 “어차피 언니에게 주게 되어 있다며”무료 교환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직원가 할인 투숙이나 무료 숙박을 예약하기란 유명 연예인 티켓팅처럼 어려웠고 그런 할인가를 쓸 수 있는데 정상가로 호텔을 예약하기엔 객실료가 터무니없이 비싸게 느껴졌다. (정작 내가 40만 원짜리를 객실을 팔 때는 손님이 가격 때문에 고민하면 ‘이 객실 엄청 싼 건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할인가로 호텔에 투숙하게 되어도 직원들은 그 호텔에선 유령처럼 지낸다. 쉽사리 객실 내에 전화기 버튼을 누르지도 못했고, 룸서비스를 시키려고 하면 아 이 시간은 바쁠 시간인데...라고 생각하다가 배가 등가죽에 붙었구나 싶었을 때 옆사람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주문하게 시켰다.
심지어 그 음식이 30분 늦게 배달이 되어도 “아 그럴 수 있지 지금 시간이면 그럴 수 있어”로 자신을 이해시키는 일은 태반이었다.
내가 발리에 투숙할 때는 객실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는데 조용히 휴지로 잡고 전화도 못하고 그냥 외출한 적도 있었는데, 그 뒤에 돌아온 방에는 바퀴벌레를 잡았던 그곳에 하우스키핑 여사님이 그 휴지를 치우고 에프킬라를 두어서 한참을 웃기도 했었다. 그리고 베트남 호텔에서는 직원들이 밤마다 방에 돌아다니면서 초콜릿을 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 초콜릿 서비스를 몰랐기 때문에 초콜릿을 받고는 한참을 망설이다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거... 무료 맞지?” 그렇게 나는 호텔 경력 3년 차에 “호텔 것들을 믿지 못하는 호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호텔 직원들이 유령처럼 다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혹시 직원이 투숙할 때 문제가 발생하게 돼서 그 문제가 커지게라도 된다면 그 직원이 다니는 호텔의 인사부에 경고 메일을 보내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간혹 인사 평가에 안 좋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게 호텔의 문제든, 나의 문제든 상관없이 매우 찝찝한 일을 자체를 만들지 않고자 밤마다 호텔을 돌아다니는 오페라의 유령이 되어 조용히 호텔 바를 전전하곤 했고 거의 모든 직원들은 자신이 투숙 중임을 들킬까 조용히 발걸음도 내지 않고 다니곤 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실제로 존재한다오
그대의 호텔 바에 불이 켜지면 그들의 존재를 볼 수 있을 것이오”
-오페라의 유령-
그렇게 내가 입사할 때 꿈꾸던 것과 다르게 내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권이라고 생각한 그 복지는 호텔리어인데 호텔 투숙이 불편한 사람들을 양성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 불편함은 직급과 상관없이 발생되었다.
그걸 알게 된 건 프런트 강 과장이 얼굴이 벌게져서 우리 부서에 내려왔을 때였다. 본인이 얼마 전 직원 할인가로 호텔 투숙하러 갔는데 그 직원들이 체크인하는 자신을 멀뚱히 세워두고 귓속말을 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아.. 직원 할인가네... 그냥 저 X 객실 구석으로 쳐 넣어!”
프런트 과장은 불 같이 화를 내며 “앞으로 그 호텔에서 오는 직원들은 다 구석행이니까 메모 남겨둬”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나갔기 때문에 과장이라도 다 같은 직원가란 걸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그런 객실 예약조차도 체크인하기 전까지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는데, 만약 그 호텔이 내가 예약한 날 만실이 된다면, 예약 취소 일 순위가 직원 할인가였기 때문이다.
“미안 내일 오는데 니 예약 좀 취소해 줄래? 우리 만실이야”
그래도 나에게는 할인은 받았지만, 불편했던 투숙이 공짜로 투숙하지만 당당하게 바뀌는 날도 있었다.
‘암행어사의 날’
매년 예약 부서에는 한 번씩 직접 손님이 되어 호텔 서비스도 평가하고 직접 시설도 이용해 보는 내부 암행어사 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내부 암행어사 날에 유명한 암행어사가 있었는데 친분과 상관없이 칼 같이 점수를 주는 예약실 미친개! 바로 나였다. 그런 미친개 때문에 매년 이 날에 타 부서에 곤란했던 김 과장은 이번에는 그녀의 파트너로 마음이 약한 신입을 붙여 주었다. 당부의 말과 함께 말이다.
“제발 너 적당히 좀 해! 그리고 이번에 니 파트너 신경 좀 써 줘!! 민정이라는 앤 데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호텔 내에 친구 한 명도 없다'라고 한 불쌍한 애야 그러니까 모두에게 친절하게! 우리 호텔도 소개해주면서 잘해줘! 알았지? “
나는 대충 알았어라고 말을 얼버무리고 바로 객실 체크인을 하러 올라가서 프런트에 있던 신입을 울리고 말았다.
“나 주변 마트가 보이는 객실 줘요!”
프런트 신입직원은 생뚱맞게 마트가 보이는 객실을 묻는 손님을 만나지 못했었던 터라 당황해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째려보며 손님이 자주 묻는 질문인데 모른다며 혀를 차면서 평가지에 3점 재교육 필요라는 글자를 그녀가 보이게 적고 방으로 올라갔다. 객실 키를 받고 돌아서는 등뒤에서 훌쩍이는 신입의 목소리와 그녀를 다독이는 프런트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등을 돌리지 않았다.
"야 재가 걔야 예약실 미친개"
그리고 몇 분 뒤 내 파트너로 선택된 '친구가 없다던 그 신입 사원'은 불행히도 자기가 예약실 일 복 많은 미친개와 짝이 된 줄 모르고 김 과장이 적어준 객실 번호 1002호을 찾아서 제 발로 찾아 들어왔다.
마침 앞으로 호텔 평가를 하고 다니는 바쁜 일정 때문에 발톱을 미리 깎고 있던 나의 뒷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 방 1002호 맞나요?”
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어 너랑 나랑 팀이야!”
내 목소리에 그 직원은 나를 위아래 쳐다보면서 뒷걸음질 쳤지만 방문은 닫히고 말았다.
‘털컥’
나는 그녀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우리 엄청 바빠 피트니스부터 레스토랑까지 돌아다녀야 하니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준비해 10분 줄게 “
“아... 네...”
군기가 바짝 들은 민정이라던 신입은 자기가 예약실 미친개와 짝이 되었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약간의 장난 끼가 발동한 내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너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친구 없다고 적었다며?”
“아... 네... 아직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럼 내가 네 친구가 되어 줄게!”
그 친구는 갑자기 옷을 갈아입다가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친구가 없다는데 내가 친구가 되어줘야지 안 그래? 너랑 나랑 파트너잖아 하하하하하”
“..... 네..”
힘없이 축 쳐지는 신입의 모습에 그녀가 오늘 나의 파트너로서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신입 직원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당당하게 전화기에서 컨시어즈 버튼을 꾹 눌렀다.
띠리리리리~
“아 안녕하세요! 여기 1002혼데 슬리퍼 하나 올려주세요”
“.....”
“아 여기 1002혼데 슬리퍼 부탁드릴게요 승덕님!”
“... 야!! 허 주임 너 아마추어니? 슬리퍼는 웬만하면 직접 찾아가자!! 너 어디 있는지 알잖아? 하하하하”
컨시어즈 승덕 선배가 낄낄낄 웃으면서 알면서 왜 그러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런 오빠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동료와 함께 할 수 없겠네요. 제 평가서의 당신의 서비스 점수를 0점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당황한 승덕 오빠가 급하게 말투를 바꾸면서 대답했다.
“아이고 허주임~ 서비스 평가 중이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굽신굽신) 저희의 VIP 고객님~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오빠는 정말 전화가 끝나고 바로 올라온 것처럼 헐떡였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와 함께 점수를 잘 달라고 나를 툭툭 치며 슬리퍼를 내밀었다.
“(로봇 같은 말투로) 고객님!! 여기 슬리퍼 혹시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가요?”
“아.. 네 이름이 승덕님이라고 하셨죠?
오빠는 나를 째려보려다 말고 다시 억지로 웃으며 돌아갔다. 그런 모습에 나는 오빠가 돌아서자마자 평가서에 '4점 감점 요인엔 진심이 담기지 않은 미소'라고 적었다. 그리고 나는 민정이를 데리고, 처음 평가가 시작되는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나는 이미 외운 평가 항목을 그녀에게 설명하면서 민정이에게 평가지를 넘겼다.
“나는 이미 항목을 알아서 네가 봐! 거기 보면 피트니스 평가 항목 쓰여있지? 보통은 운동하는 곳에 크게는 1. 위생 상태 2. 직원의 호텔 내에 기본 정보 숙지 여부와 3. 직원의 친절도를 확인해야 해 “
신입은 식은땀을 흘리며, 내가 말하는 걸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피트니스센터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볼 거야!”
“아!! 피트니스 센터에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있어요?”
“아니 없어! 비밀번호가 없는 게 함정이야! 보통은 없는 걸 물어보니까 당황하거든!!"
신입 직원은 나의 잔인함 미소에 소름을 돋는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와 그녀는 피트니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앞에 3층 복도에 설치된 검은색 전화를 들고 0번을 누르는 여자가 보였다. 보통 복도에 설치된 전화는 손님들이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를 스쳐 지나갈 때 그녀가 하는 말을 유심히 듣게 되었다.
“이 호텔! 피트니스 센터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모르세요?”
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갑자기 멈춰 서서 뒤돌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여행가방과 옆구리에는 노트북이 끼어져 있었다. 검은색 머리에 안경을 쓴 그녀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전화를 넘어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알아차릴까 봐 황급히 고개를 다시 돌리고 생각했다.
“그녀는 미스터리 쇼퍼( Mistery Shopper)다!!"
*Mistery shopper : 본사에서 파견된 호텔 서비스 평가자로 상반기, 하반기 두 차례 불시에 호텔을 방문해서 평가한다. 호텔은 두 차례 받은 점수 중 높은 점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 점수가 브랜드 유지하기 위한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브랜드를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우리 호텔은 이미 상반기 받은 점수가 낮아서 이번 하반기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고 J 부장이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점수를 잘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었다. 그들은 워낙 예고도 없이 오기도 하고 조용히 이틀을 투숙하고 체크아웃할 때 본인이 미스터리 쇼퍼였다고 회의를 하자고 총지배인과 임원을 부르는 식이였기 때문에 다들 추측만 할 뿐 체크아웃할 때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얼마나 치밀했냐면 호텔 예약 평가는 전화로 호텔 예약을 하고 홈페이지 직접 들어가서 예약을 취소한 다음에 다시 여행사를 통해서 1박만 예약을 하곤 했다. 혹시 2박을 예약하면 호텔들이 알까 봐 늦은 밤에 프런트에 와서 1박을 연장하는 식이였다.
하지만 호텔에서도 매번 당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공통된 특징을 서로 공유했다.
-호텔 평가할 종이를 잔뜩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여행가방을 끌고 다닌다.
-보통 미국계 아시아인 손님이다.
-노트북을 항상 들고 다닌다.
-2박 일정으로 투숙한다.
-호텔 곳곳에서 많은 질문을 하고 다닌다.
이 손님이 2박 일정이라면?!! 100프로였다. 나는 아무래도 이 암행어사를 하는 실질적인 목표가 미스터리 쇼퍼를 준비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피트니스 센터로 미친 듯이 달려가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0번을 눌렀다.
마치 시그널의 명대사처럼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응답해요!! 메이데이!! 이제한 형사!"
드라마 <시그널 >
“여보세요.. 금방.. 3층 전화로 전화했지? 누가 받았어?”
“누구세요?”
김 과장이었다.
“나야 미친개!!! 금방 3층 전화 누가 받았어?”
“어?.. 잠깐만”
전화가 너머로 김 과장이 누군지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고 김 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신입이 받았네 피트니스 와이파이 물어봐서 대답을 못했데 참 무슨 피트니스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있어 네가 했냐? 독한 년!!”
“나... 아니야...”
“그럼... 누구?”
갑자기 전화기에 정적이 흘렀다. 나도 차마 입을 벙긋할 수 없었다. 내 옆으로 미스터리 쇼퍼로 추정되는 여자가 지나가더니 리셉션에 있는 직원에게 사우나 시설은 어떻게 이용하냐고 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트니스 리셉션 직원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손님 객실 번호를 말씀해 주시고 쓰시면 됩니다”
미스테리 쇼퍼로 추정되는 여자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지더니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래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데요?”
김 과장도 전화기 넘어 들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다행히 피트니스 직원은 운영시간을 잘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손님의 객실번호를 물어봤다. 그리고 사색이 되어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녀를 향해 무음으로 어쩌면 미스테리 쇼오퍼어 라고 입술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미스테리 쇼퍼로 추정되는 그녀가 자신의 객실번호를 말했다.
“1304호”
리셉션에 서있던 직원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었는지 갑자기 친절한 목소리로 미스테리 쇼퍼로 추정되는 여자를 사우나 이용 방법을 설명해 드리겠다며 피트니스 센터로 들어갔다. 나와 통화 중이었던 김 과장이 황급히 객실 번호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딱딱 딱딱'
“미스 욕?”
김 과장은 손님 이름을 나지막이 말하면서 절망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절망하고 말았다.
"안... 돼... 정말 망했다..."
여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불현듯 어제 있었던 일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10시 전화기가 울렸고 전화기에 찍힌 여자 이름이 MS YORK 이였다. 나는 한국식 발음으로 “욕”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읽다가 당황했고 차마 전화 통화하는 내내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괜스레 머쓱해서 효연 주임한테 말을 걸었다.
“야 손님 영어 이름이 미스 욕이야. 차마 이름을 부르지 못하겠네 그 손님은 자기 이름이 한국 발음으로 ”욕”이라는 뜻인걸 알까? 하하하하 “
“아! 나 그 손님 알아! 나도 못 부르겠더라고 어떻게 안녕하세요 욕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어떻게 말해~”
그와 동시에 우리 부서에는 통화 중에 손님 이름을 3번 불러야 하는 평가항목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 김 과장 우리 이번에 망했다!”
“야 평가지 신입한테 맡기고 빨리 내려와! 이 사람인 것 같아!!! 어젯밤에 1박 연장했어!”
아! 이번에는 J부장 1시간 이상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1304호 전화 통화 기록을 검색하고 전화를 받은 모든 직원이 손님의 이름을 차마 부르지 못하고 더듬대며 전화를 끊는 것을 듣고는 확실 해졌다.
보통 때라면 우리는 미스터리 쇼퍼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미스터리 쇼퍼의 가능성이 있는 손님에게 Possible mystery shopper (어쩌면 미스터리 쇼퍼)이라는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그래서 만약 그 메시지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손님 이름을 발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MS. YORK에게는 어떠한 메시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우리가 너무 바빴던 여름 성수기 기간에 방문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아무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호텔 평가가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호텔에서 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호텔 로비에서 여행가방을 끌면서 옆구리에 노트북을 끼고 프런트 직원에게 간단한 정보를 물어보시길 권한다. 아마 그때부터 직원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당신은 '어쩌면 미스터리 쇼퍼'라는 빨간 깃발을 달고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라도 다른 부서에서 준비할 수 있도록 김 과장과 모든 부서에 메일을 썼다.
메일 제목은 : 긴급!! 필독!! 100% 미스터리 쇼퍼!! 1304!!
과거는 바꾸진 못해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내가 메일을 쓸 때 다행히도 '호텔 내에 친구가 없었던 신입'은 혼자 열심히 평가 항목을 체크하고 다니고 있었고 다행히 김 과장은 예약실 미친개가 사무실에서 '미스터리 쇼퍼 통화기록 찾기 놀이'에 흠뻑 빠져서 모든 기록을 찾아대는 통에 신입이 매긴 점수 9점, 8점이 가득 찬 꿈의 보고서를 드디어 받게 되었다. 그리고 김 과장의 바람대로 내부 암행어사 보고서에는 예약실은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은 최고의 부서되어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흐뭇한 김 과장의 등 뒤로 싸늘한 표정의 J 부장이 잔뜩 먹구름 낀 얼굴로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의 손에는 오늘 아침 체크아웃을 한 미스터리 쇼퍼 보고서가 들려 있었고 그녀의 보고서에는 내부 감사 점수와 상반된 예약실 서비스 평가에는 2점, 3점이 가득한 최종 3.5점이라는 역대 최악의 점수가 적혀 있었다.
우리 부서와 반대로 이메일로 그 손님이 미스터리 쇼퍼라는 걸 알게 된 다른 부서의 점수는 9점, 10점이 가득 매겨져 있었고 총지배인은 모든 부서의 평균점수가 8점 이상이라는 역대급의 평가에 상반기 점수를 포기하고 하반기 평가를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고 결정했다는 말과 함께 그 보고서를 김 과장에게 던지고 홀연히 본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보고서를 펼쳐보니 미스터리 쇼퍼 점수는 8점이라는 역대급 평가를 했지만, 그 안을 펼쳐보면 마치 전체 호텔 서비스를 갉아먹고 있는 부서가 예약실이라고 꼭 집어 말하고 있었다. 그 보고서를 보자마자 나는 어제 이메일을 보낸 것을 후회했다. 차라리.. 아무도 몰랐으면 모든 부서가 점수를 받지 못했을 텐데 괜히 메일을 보내서 우리 부서를 죄인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현실은 너무 잔인해서 내가 영웅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 뒤통수를 탁 치며 ‘너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 죄인들을 쳐단 할 우리 부서 회의가 열렸다. 모두가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하고 있었다. 그 정적을 깨고 J 부장은 나를 쳐다보며 왜 직원들이 손님 이름을 3번 이상 부르지 못한 것 같은지 물었다. 나는 죄송합니다가 그가 원하는 답이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주임으로서 다른 답을 하고 싶었다.
“저도 손님 이름이 YORK이라서 발음하는 게 꺼려졌어요. 직원들도 그랬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갑자기 J 부장은 아침 미팅에 당한 설움을 풀어내듯 소리를 질렀다.
“주임으로서 모범을 보여야지! 주임이 그러니까 직원들도 따라 하지 그럼 ‘손님 이름이 욕이라 직원들이 이름을 부르지 못했어요’라고 나는 상부에 보고 해야 하나? 그럼 손님 이름이 DDONG 이면 똥이라고 못 부르겠네 어쨌든 불렀어야지 동이든 똥이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허 주임 그게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그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울컥했지만 저 인간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더 푹 숙였다. 다행히 김 과장이 그만하시라며 J 부장을 끌고 나가서 죄인 처단식은 중단되었다. 어쩌면 그도 아침에 누군가에게 당한 것을 화풀이하고 싶었으리라 무시하고 싶었지만 영웅이 아니라 역적이 된 이 상황이 황당하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
“직원들의 모범이 돼야 하는데 못돼서 퇴사해야겠네요. “
라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 말에 회의장에 참석한 모든 직원들은 갑자기 서로의 잘못이라고 탓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들도 미안함에 내게 내민 손 같았던 말이었지만 이미 퇴사를 생각한 나에게는 그냥 스쳐가는 위로 들일 뿐이었다.
오후 내내 내 얼굴이 너무 안 좋았었던 탓이었는지 J부장과 회의 후 돌아온 김 과장이 나를 불러 직원 식당으로 커피 한잔 하자고 나를 끌고 나갔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가서 직원 식당 한편 의자에 털썩하고 앉았다. 김 과장은 예약실 미친개 표정이 장난이 아니라며 우스개 농담을 던졌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과장이 위로의 말을 던졌다.
“많이 힘들지?”
라고 툭 던진 그녀의 말에 나는 갑자기 억울함의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억울하지? 그래도 너처럼 열심히 일하는 애는 없는데 말이야”
어쩌면 회사는 열심히 일하는 애가 아니라 대충 일해도 점수를 잘 받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 같다며 사실 어제 내가 미스터리 쇼퍼를 찾아서 보낸 메일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나는 김 과장이 그런 나를 혼낼 줄 알았다. 그러나 김 과장이 던진 말은 “그러니까!”였다.
자기도 J 부장에게 깨지고 왔다고 차라리 다른 부서 빵점 받았으면 이렇게 깨지지 않을 텐데라고 말하면서 본인도 억울하더라고 소파를 쾅쾅 쳤다. 솔직한 김 과장의 모습에 그동안 내가 품었던 어려운 문제를 던져 보기로 했다. 그녀라면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엔 이 호텔은 온통 물음표 투성이야!! 무슨 일을 해도 '왜? 이렇게 해?' 이런 쉬운 방법이 있는데 생각이 먼저 든다니까!! 어떤 때는 올라가서 물어보고 싶어! '왜? 요? 왜? 그렇게 해요?' 그래서 이런 물음표들 때문에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아. 오늘도 우리 부서가 찾았잖아! 그녀가 미스터리쇼퍼인 거 그런데 왜? 우리 부서가 역적이야? 죄인이야?”
나는 이 물음표에 답이 있을까? 그녀를 구원의 눈빛으로 쳐다봤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증오로 가득한 날들만 보냈는데 그리고 물음표를 갖는다는 건 네가 개선할 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거니까 그 물음표를 노트에 적어놔 그리고 나중에 네가 과장 차장이 되었을 때 그 물음표를 느낌표를 바꾸면 돼! “
“그게... 무슨... 난 화가 난다고!”
“그럼 언니랑 매일 명상을 하자! 그리고 주임인 네가 그런데 과장인 나는 얼마나 ‘개 같은 경우’가 많겠니? 나도 처음엔 맥주로 내 힘듦을 달랬어 하지만 그걸로는 안 되더라 아무리 외부적인 요인으로 해결하려고 해 봤자! 어차피 해결책은 네 안에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너도 나처럼 노트를 만들어! 나는 비록 증오로 가득한 데스노트지만 말이야~언니 거기에 나를 괴롭힌 사람 이름 다 처단하면 언니는 퇴사한다 하하하”
오히려 너를 이해한다는 말보다 자신은 데스노트를 적고 있다는 김 과장의 말이 와닿았다. 혹시 그 안에 내 이름이 있을지도 라는 의심도 들었다. 그래서 용기 내 다음 질문을 했다.
“이건 다른 질문인데…. 나 주임 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사실 너무 힘들고 지쳐…. 나도 잘해야 하고 직원들도 지켜봐야 하고 알려줘야 하고 어떻게 좋은 리더가 되는지... 잘 모르겠어”
그때 내가 평생 내 가슴속에 품게 된 말을 대답으로 듣게 되었다.
“야 좋은 리더 같은 소리 하네! 네가 힘들면 너를 먼저 생각해야지~ 네가 있는 다음에 남이 있는 거야 다 때려치우고 쉬어! 휴가도 신청하고 놀러도 다니고 해!”
의외의 대답이었다. 내가 예상한 답은 주임으로서 나약한 소리를 한다고 말할 것 같은 그녀가 나에게 나부터 챙기라고 말하다니 말이다. 내가 사원이고 김 과장이 대리였을 때 나는 매일 김 과장을 놀렸다. 매일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매일 구부정한 자세로 메일과 전화를 해대며 우리에게 대답해 주는 그녀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리님은 뒤에 눈이 달렸어? 어떻게 나는 매일 대리님의 뒤통수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아!”
“너도 주임만 되어봐라! 일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그래서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윗분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일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주임이 된 나에게 그녀는 더 이상 그런 과장이 되라고 하지 않는다. 힘들면 멈추고 너를 돌보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자리가 서로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본 선배들의 모습이 진짜 그 직책에 맞는 모습이라 생각하고 쉬지 않고 달려온 게 아닐까 싶어졌다. 그러다 김 과장은 깨달은 것이 아닐까? 그 모습만이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김 과장도 김 과장이 아닌 본인의 이름이 있듯이 쉬었을 때 발견한 진정한 자신 말이다. 오늘은 그녀의 직책이 아닌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졌다.
“진희 씨! 김 진희 씨도 매일 다른 부서에서 진희 씨만 찾으니까 많이 힘들지?”
“그래!ㅎㅎㅎ힘들고 너 때문에 더 힘들어! 왜 사무실에서 퇴사 예정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J부장 그런 거 한 두 번이냐? 나는 매일 그 인간이랑 밥도 먹고 회의도 하고 사우나는 못하지 아무튼 그래!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해! 어! 네가 힘들겠니 내가 힘들겠니? 그리고 미안한데…. 휴가는 오래는 안 돼... 하루 이틀 정도는 빼줄 수 있어”
그래도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녀는 다시 김 과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힘들 때면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이 떠오를 것 같았다.
“힘들면 멈추고 너부터 챙겨! 남이 무슨 상관이야 네가 먼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