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흑역사
우리 호텔에선 매년 중요한 날이 있었다. 호텔 총지배인 및 임원들 모두가 긴장을 하고 각 부서의 매니저들이 모두 신경을 곤두서는 그런 날 말이다. 바로 호텔의 소유주 회장님 가족의 여름휴가 날이었다.
한국의 호텔들은 외국계 브랜드 호텔이라고 해도 한국 본사가 따로 있었는데, 그들의 의사로 호텔 브랜드가 바뀌기도 하고 총지배인들도 교체되기 때문에 소유주 회사(보통 본사라고 한다.)의 회장님이 오는 날은 모든 부서가 비상상태가 된다. 그런데 그 회장님 가족의 투숙이라니 이건 초초 비상사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회장님은 호텔에 자주 오시긴 하지만 여름휴가 기간은 보통 호텔에 한 달 이상 투숙하기 때문에 그날부터 호텔의 모든 부서 직원들은 비상근무를 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 호텔의 회장님은 투숙할 때마다 객실 온도에 민감하셨기 때문에 회장님의 가족이 방문할 때에는 시설부 전원은 거의 밤샘 근무를 하곤 했다.
그리고 그 부서 옆에 위치한 우리 부서도 역시 회장님이나 그의 가족들이 어디에서나 전화를 눌러 0번을 누를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에게 회장님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이름과 불러야 할 호칭까지 알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회장님과 그의 가족은 체크인할 때부터 바로 회장님 담당 당직 지배인이 같이 다니면서 요청하신 사항을 바로 해결하기 때문에 전화 또한 당직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핫라인 핸드폰을 따로 드린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이었기에 우리는 혹시 나를 대비하기 위해 주임급 이상이 항시 대기해야 했고, 또 각 부서에 공유할 엑셀 파일을 만들어 회장님 가족의 리포트를 만들어 회장님 가족의 동선 및 자주 요청 주시는 사항에 대해 모든 부서가 숙지할 수 있도록 적어서 공유 드라이브에 올리곤 했다.
그날도 역시 회장님 가족의 여름휴가 첫날이었고, 기가 막히게도 내가 주임으로 승진하고 근무하는 첫째 날이었다. 승진의 기쁨과 함께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 회장님과 그의 가족들은 호텔에 적어도 두 달 이상 머물 예정이라는 소식 말이다. 그리고 연달아 날아온 비상근무 요청 메일 제목은 *두 달 동안은 비상근무인 관계로 주임급 이상의 휴가 신청은 받지 않습니다. 였다. 왜 하필 내가 승진한 첫째 날부터 비상근무인 것인가? 나에게 쓸 수 있는 휴가가 12일이나 있었는데, 왜 갑자기 휴가 신청을 받지 않는 것인가? 나는 마치 똥이 마려웠던 강아지가 똥을 참다가 변비가 걸려버린 듯이 끙끙 되다가 김 과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 과장 나 진짜 승진해서 축하의 의미로 다음 달에 제주도 가족 여행 가려고 했는데 진짠데 어떻게 안될까?”
“야 너 클럽 라운지로 보내줄까? 회장님 가족들 면전에서 응대하는 직원이 더 필요하다던데”
“아.. 미안... 열심히 일 할게요 아자아자 파이팅~”
물론 그들이 이상한 요청 사항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의 휴가는 직원들의 야근이었다. 그들이 호텔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지어 직원들은 직원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고 계단으로 다녀야 했다. 그놈의 혹시나, 만약에 사항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비상계단을 통해 오후조로 출근해 회장님 전화 기록 엑셀 파일을 열었다.
오전 조 내용 없음
희망사항으로 오후 조 내용 없을 예정을 적고 나오려는데, 당직 지배인이 같이 보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바로 당직 지배인한테 전화해서 이제부터 내가 써야 하니 내 엑셀 파일에 썩 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당당한 내 목소리와 사뭇 다른 당직지배인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허... 주임 너.. 오후조니?”
“네 그렇게 됐네요 왜요?”
“네가 오후조라니까 더 떨려온다. 너 얼리 아웃하면 안 되겠니? 온갖 이상한 일이 몰려올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
“뭐래? 설마 내가 있다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겠어요? 이 지배인 안 되겠네 겁이 이렇게 많아서야.. 원..”
“부탁이야 빨리 퇴근해 줘”
그의 가느다란 떨리는 목소리가 나의 마음의 물결을 일으켰다. 내가 있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 싶었지만, 오늘이 나의 승진의 첫날이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면 나 역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도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퇴근까지 8시간이 남아 있었다. 불안이 현실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그 기도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퇴근 5분 전까지는 다행히 1202호에서 울린 전화는 없었고 때 마침 시간은 10:55 PM 5분 뒤면 퇴근 시간이었다.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리리리링-
“안녕하십니까? 허주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객실 예약 전화였다. 퇴근 전 예약전화라니 보통 객실 예약 전화는 5분 이상 소요되었다. 다행히 전화가 없었던 시간이어서, 나는 옆에 있던 신입 직원에게 나 예약 전화받을 테니까 다른 응대 전화를 받아달라고 통화 중 메시지를 남기고 객실 상담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신입직원의 전화가 울렸다.
띠룽릴릴리리리링~
벨소리조차 다른 회장님 객실에서 울린 전화벨이었다. 그 벨소리를 듣자마자 나의 등에는 식음땀이 흐리기 시작했고, 신입직원의 목소리를 듣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네네네”
신입이 회장님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아직 객실예약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유선 해드폰 줄을 최대한 길게 늘여 신입자리에 찍힌 객실 번호를 확인했다. 눈을 비비고 봐도 객실 번호는 1202호 오너 스위트라고 적확히 표시되어 있었다. 그 번호를 본 순간 나의 머리는 혼돈의 숲을 헤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손님과 예약 통화 중이었기 때문에 신입을 도와줄 수도 그녀의 통화를 들을 수도 없었다. 당황해서 뒤를 돌아봤지만 야근조 근무자는 저녁 식사를 먹으러 가서 주변에는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손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나는 통화 중이었던 손님에게 “손님 예약 가능한지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하고 통화하던 전화를 대기상태로 돌리고 신입에게 달려가 남은 몇 마디를 들어보려고 수화기에 귀를 바짝 댔다.
“아.. 네 회장님.. 네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전화를 끊은 신입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는 신입의 얼굴을 보고 불안함 마음이 엄습해서 다급하게 물었다.
“왜? 왜? 뭐라고 하셔?”
“아... 주임님을 찾는데요?”
“나? 나를 찾으신다고?”
“네.. 주임님 바꿔달라고 하셔서 전화드린다고 했어요.”
그럴 리가 없었다. 회장님이 나를 아실 리가 없었다. 일개 주임 따위를 찾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혹시 회장님의 전화를 응대한 직원이 입사한 지 3개월 차인 신입직원이었기 때문에 회장님이 이 직원의 응대가 마음에 안 들었나 하는 불안함이 슬슬 몰려왔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신입에게 물었다.
“분명 예약실 주임이라고 하셨다고?”
“네! 주임이라고 분명하셨어요.”
불안함 마음에 마음이 복잡해져서 손톱을 연신 뜯고 있었는데, 신입직원이 결정적인 대사를 뱉었다.
“그런데 엄청 화나셨어요.. 주임님 빨리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뭐?”
신입의 그 한마디 엄청 화나셨다는 말에 나는 갑자기 혼돈의 숲을 뛰어다니던 머리가 새하애 졌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판단하에 바로 자리로 달려가서 전화 대기 상태로 바꿔 놓은 전화를 풀고 손님에게 예약 시스템 문제가 생겨 다시 전화드리겠다며 연락처를 받자마자 바로 회장님의 객실에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쿵쾅쿵쾅 전화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내 귀를 타고 뇌를 멈추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아 심장아 터지면 안 된다 그도 사람이다.'라고 나 자신을 세뇌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는데, 걸쭉한 기침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눈을 질끈 감고 전화 거는 내내 연습한 대사를 말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를 찾으셨다고...”
“머라고? 네가 누군데?”
“제가 예약실 주임!입니다!”
“주임?!! 주임 말고 쥐엠 바꿔달라고!”
쥐엠이라는 단어에 순간 하늘이 노래졌지만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마치 뇌가 폭파된 로봇처럼 대답했다.
“아?!.. 네!!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쥐엠(총지배인)의 직통번호를 누르고, 총지배인이 전화받는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전화를 끊을 수가 있었다. 도대체 지금 나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나는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회장님은 GM (총지배인)을 연결해 달라는 전화를 했지만 3개월 차 신입이 쥐엠이라는 단어를 잘못 들어 주임으로 들었고, 또 그걸 내가 통화가 녹음된 전화 기록을 확인도 안 하고 바로 회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제가 주임입니다라고 했구나 상황이 정리가 되니 수치심과 창피함이 내 얼굴을 타고 올라왔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니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끓어 올라왔다.
만약 그날이 내 주임 업무의 첫날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혹시나 신입이 회장님이 화가 났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차분히 신입과 회장님의 통화내용을 다시 들어봤으리라 그리고 총지배인에게 전달했겠지 마지막으로 내가 예약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내가 받고 바로 총지배인에게 연결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 잡게 되었고 3번의 우연이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드디어 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사표를 쓸 때인가 싶었지만, 나에게 아득한 정신을 흔들어 깨우고 당직 지배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당직 지배인은 내 이야기를 듣고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들은 가장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데 웃긴 이야기라며...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엑셀 파일을 열어 적었다.
Case 23:00 PM
회장님이 객실 1202호에서 전화해서 쥐엠 바꿔달라고 했는데 신입 직원이 주임으로 잘못 듣고 마침 근무 중이었던 예약실 주임이 객실에 전화함. 언짢아진 회장님이 당장 쥐엠을 바꾸라고 소리치셔서 바로 연결해 드림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김 과장이 전화를 했다.
“야... 진짜.. 냐? 실화냐? 내가 본 내용이?”
“어... 미안해...”
“아.. 알았다. 수고했다. 그런데.. 말이야 회장님은 당직지배인 직통 전화기가 있었는데 왜 0번을 눌러서 전화하셨데?”
“사우나 실에서 사우나하시다가 온도가 안 올라가서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전화기로 그냥 0번 누르셨대.”
“아... 회장님 객실에 전화 바로 하기 전에 신입 전화통화한 것 좀 들어보지 그랬어”
“그러게... 회장님이 화나셨다고 해서 정신을 놓았나 봐 미안해”
“....... 아 알았다.”
우리는 서로 거울 앞에서 마주 보는 사람처럼 말을 그렇게 잃은 채 몇 분 멍하니 있다가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그날 밤 나는 본사에 불려 가서 혼나는 악몽을 꾸었다.
“쥐엠이 되고 싶었어요?!! 어떻게 그런 전화를 감히 회장님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장님은 객실 온도 조절이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나서 시설부 직원들에게 모든 분노의 표출하셨고, 손님들은 얼마나 불편하겠냐며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낱 주임이 한 전화 따위는 새까맣게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시설부 직원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를 위해서는 다행인 결말이었다.
바로 다음날 본사 직원들이 직접 호텔에 와서 그 객실 온도에 대한 문제 및 조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돌자 직원들은 나를 본격적으로 놀리기 시작했다.
“야 본사에서 쥐엠 아닌 주임 잡으러 왔다!! 감히 쥐엠 행사를 해?”
“야 그냥 주임 승진 액땜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너는 역대급이다! 어떻게 회장님에게 저는 예약실 주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냐?”
예약실의 미친개에게 울부짐을 들었던 직원들은 하나 둘 내 자리에 오거나 전화를 걸어 놀리기 시작했다. 마치 예약전화가 몰려오듯이 내 자리의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려댔다. 그런 놀림을 받고 성질을 내고 있는 나를 빤히 보고 있던 신입 직원은 울먹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주임님 그런데 그때는 진짜 그렇게 들렸어요!”
“아... 그래..”
당연한 듯 그 신입 대신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반성문을 써야 했다. 말로 들을 때보다 직접 종이에다 쓰다 보니 창피함이 더 물밀 듯이 몰려왔다.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주임으로서 남의 말만 듣고 행동하지 않고 늘 의심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사실에 근거해서 확인 후에 행동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제가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
그 뒤로는 회장님도 회장님 가족도 한 번도 우리 부서에 전화를 건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직지배인이 나와 근무를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호텔에서 이런 일이에 나올 일들을 매일 아무렇지 않게 써내려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