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포비아를 극복하는 방법
엄마가 나를 불러 조용히 속삭인 적이 있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어~그래!!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엄마는 그래도 그중에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 있더라 그게 너야!”
라고 말하며 쓰레기가 가득한 악취가 나는 내 가방에서 한없이 쌓여있던 커피색 스타킹 뭉텅이들을 연신 꺼내며 한숨을 깊게 쉬신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너 회사 생활은 잘하지?... 니 책상은 안 봐도 비디오다... 아휴 말을 말자”라며 상상도 하기 싫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아마도 그 더 아픈 손가락이 회사 생활이나 잘할까? 심히 걱정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딸은 엄마가 말했던 그 열 손가락을 모두 쓰면서 승진을 했고 심지어 못할 것 같은 결혼을 사내연애라는 인주가 찍히게 되어 헤어지지 못한 그 남자와 날짜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시집갈 자신의 딸보다는 그녀를 감당해야 할 송 서방을 걱정이 되어 매번 하던 말이 있었다.
“미안한데.. 송 서방! 지금부터 환불은 안되네 약속하게나! 손가락 걸고! 그리고 절대 내 딸의 가방을 열어보지 말게나!”
마치 내 가방이 판도라의 상자인 것 마냥 주의를 주는 엄마 모습에 남편은 그 말이 장모님의 장난인 줄 알고 맞장구를 치며”네네 환불을 왜 해요! 제가!"라고 몇 번이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결혼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장모님이 그렇게 열지 말라는 가방을 어느 동화의 비련의 주인공처럼 결국 송 서방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열어보게 되었고 그 판도라의 상자 안 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커피색 스타킹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으며 그 속에 마치 나는 스타킹을 청소하기 위해 가방에 들어간 것 같이 위장하고 있는 칫솔을 있었고 그 옆에 반쯤 열려있는 립스틱이 잔뜩 칠해져 있는 택시 영수증 다발을 보고 소리치게 되었다.
“장모님 저 돌아갈래요!!!"
그렇게 회사에서도 나는 전화받을 때에는 손에 들고 있는 모든 것들을 '여기 툭 저기 툭' 놓기 일쑤였고 그래서 늘 내 책상 위는 예약 종이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으며 책상 위에 어제 먹은 과자 봉지와 펜이 뚜껑을 잃은 채 말라가고 있었다. 아마 이 모습들은 엄마의 상상 속에 몇 번이나 나왔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역시 엄마는 위대했다. 자신의 딸을 너무 잘 알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런 내 책상을 꼭 '물에 젖은 티슈'로 닦아주는 후배 주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주임이었다. 내 자리는 일복 내리는 저주의 자리라고 모든 주임이 한사코 내가 쉴 때마다 앉게 되는 내 자리를 피할 때 불쌍하게 제일 늦게 오는 출근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매번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눈물에 젖은 휴지'를 만들곤 했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지나자 나의 일복의 저주는 심지어 내가 내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마치 이젠 완전히 그녀에게 옮겨간 전염병처럼 이상하게 그때부터 내 자리에 전화가 잘 울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일복의 후계자로 그녀를 점찍게 되었던 것이 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가만히 안나 주임이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녀가 받는 전화벨 다음에 항상 들리는 그녀의 대답이 같다는 걸 깨달았다.
“예?? 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나는 그녀가 받는 전화 내용을 들었을 때도 예? 어? 뭐? 였다.
안나 주임의 이상한 전화 통화 내용 요약본
*해외 신혼여행 가기 전 우리 호텔에 투숙하면서 객실에서 30분간의 정전사고를 겪었는데 10년이 지난 후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정신과 치료를 하고 있다며 그 사건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을 해달라는 전화
*항공사에서 비행기 결항으로 우리 호텔에 급하게 예약하고 100명의 승객들이 우리 호텔에 투숙하고 나갔는데 (보통 이럴 때는 유선상으로 항공사와 호텔 객실료와 결제 방식을 확정을 하고 그 전화 통화 내용을 팩스로 받는다.) 승객들이 다 체크아웃하고 나갔는데 갑자기 항공사 대표가 객실료를 깎아 달라고 하는 전화
*객실에서 부부가 술을 많이 마시다가 기분이 좋아져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다가 갑자기 부인이 바닥에 쓰러져 잠을 자기 시작했다며, 본인은 이미 취해서 부인을 들어 올려 침대로 옮길 수 없다고 당직 지배인을 부르는 전화 심지어 부인은 나체였다는 사실...
*외국인 손님이 새벽에 전화해서 나 지금 외롭다며 애인을 구해달라고 애걸하는 전화
그리고 그때부터 당직 지배인들은 "저 안나인데요" 이름을 듣자마자 마치 예약실 미친개의 전화를 받는 것처럼 바쁘다며 다시 전화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으랴 나도 4년 넘게 일했지만 한 번도 듣지도 보지 못한 이야기를 매일 받아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직감했다.
'바로 너구나!! 나와 같은 사람! 나의 더 아픈 손가락이 될 사람이!'
저런 전화를 감당하려면 응당 나처럼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싶어졌다. 어쩌면 안나가 내 자리를 앉았을 때부터 당신과 나의 운명은 빨간 줄로 이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를 가르치고자 하는 나의 학구열이 정수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먼저 나는 왜 그녀가 그런 전화만 받는지 그녀를 분석하게 되었다. 마치 개조심 파일을 만들 때처럼 엑셀 파일을 만들어 저장했다.
훈련사 예약실 미친개의 후계자 양성일지
안나 주임의 몇몇 통화를 듣고 몇 개의 훈련 방법을 생각해 냈다.
첫 번째,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강형욱 훈련사가 떠오르게 단호하게 거절하기
매번 안나 주임은 거절을 할 때 해맑게 웃으면서 “그건 안되세요 헤헤헤”라고 웃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내가 들으면 '조금만 조르면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말투였다. 나는 그녀가 전화를 끊자마자 조용히 "여기와 앉으라"라고 불렀다.
“손님에게 거절할 땐 단호하게 해야 너도 좋고 손님도 작았던 희망이 큰 절망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지 않게 돼”
아무래도 손님들은 아예 희망이 없었던 일보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있었던 일이 절망으로 바뀔 때 더 화를 내었고 그런 전화가 나에게 전달될 때 나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아.. 그 직원은 해줄 것 같았는데... 어떻게 안될까요?”
해준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해줄 것 같은 뉘앙스를 보이는 순간 "해주시면 안 돼요? 정적의 지옥"의 시작이 된다. 즉 해줄 때까지 기다린다는 의미의 정적이었다. 나의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훈련이 안 된 안나견에게 나는 몇 가지 맛있는 간식을 먼저 꺼내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너네 매니저 바꿔 너랑은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아”라고 하면
->통 뼈다귀 쿠키 : “제가 저희 부서 매니저입니다. 그리고 그건 총지배인님이 와도 안됩니다.”
(비록 제가 지금은 주임이지만 곧 총지배인이 될 뼈를 갖고 태어났습니다라는 단호함)
또 타 부서에서 “안나 주임 우리 부서가 좀 바빠서 그런데 이것만 확인해 주면 안 돼?”라고 하면
->고단백 대타 껌 :“예약실 일복 많은 미친개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혹시 연결해 드릴까요?”라고 말하기 (쉬는 날은 미친개의 개인 핸드폰으로 연결하기)
당직 지배인이 지금 바빠서 조금 있다가 전화받는다고 하면
->지금은 시져 시져 캔 : -> 손님이 지금 너무 많이 화나셔서 당직 지배인이 나중에 전화한다고 하면 더 화나실 것 같다고 하기 ( 지금은 싫지만 나중에는 더 싫게 될 컴플레인이라고 말하기 )
여러 가지 간식 예시에 안나 주임은 알았다며 입맛을 다셨고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본인 입맛과 맞지 않는 간식들이었는지 몇 번 씹으면서 시도는 해보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뱉으며 간식을 거부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두 번째!! 마치 이 사람 목소리는 무조건 40대 이상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보통 전화 응대의 단점은 통화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직접 직원을 마주쳤을 때 하지도 않을 불편사항에 대해서 전화 통화로 더 거친 말들을 필터 없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화 통화했을 때는 “너 호텔 가면 가만 안 둬!!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손님들은 막상 체크인하기 위해 프런트에 왔을 때는 세상 착한 천사처럼 다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손님이 우리를 속이듯이 우리도 손님을 속일 수 있는 것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 목소리로!! 우리는 늘 전화기를 통해서만 만나므로!! 그러나 문제는 20대 초반으로 느껴지는 “솔”톤의 목소리를 가진 안나 주임을 목줄을 채워 내 “술”톤 목소리로 끌고 와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에게 산책을 가려면 목줄을 채우듯 안나 주임을 친목도모를 핑계로 "술"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곤 그녀가 늘 궁금해했던 내 사내 연애 스토리로 낚시를 시작했다.
“안나 주임 내가 주임 때 지금 내 남편이 컨시어즈에 있었잖아! 그때 남편이 내 목소리를 듣고 40대 아주머니가 예약실에 있구나 생각했데! 그래서 회식 자리에서 내가 허사원이라 말했을 때 엄청 놀랐다고 하더라고! “
“아? 네...”
“그러니까 너도 "술"톤을 배우면 연애할 수 있어! 반전을 주는 거지!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어라? 어? 이렇게 되는 연애의 기술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마셔!! 적어도 1000cc 맥주를 100잔 정도 마셔야 하니까 말이야!! 목소리 미인이 되려면 노력이 필요해! 알코올로 소독을 하는 거지!! 마셔!”
“아?.. 네? 네 마셔!”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안나 주임은 내가 목줄을 채우려고 할수록 그녀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나와의 산책 그러니까 술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술톤이 되려면 소주 100병을 마셔도 되는데… 아쉽다.”라는 혼잣말을 쓸쓸하게 내뱉으며 나의 훈련사 예약실 미친개의 일지를 데스크톱 휴지통 속에 끌어 넣었다. 그렇게 나의 후계자 양성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때쯤 어느 날 염대리가 나를 불러서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앉아 있는 저 애! 허 주임이랑 호텔 투숙 같이 했던 신입 있잖아! 왜~ 호텔 내에 친구 없다는 걔 맞지?”
“네 민정이요? 맞아요 왜요?”
“너 호텔 투숙 같이 할 때 쟤한테 뭘 가르친 거야? 쟤 많이 이상해”
“뭐가요?”
나는 염대리가 오늘도 실없는 소리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무시하고 내 자리에 가서 앉으려는데 그런 나의 팔을 확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나 어제 쟤가 애들을 막 쥐 잡듯이 잡는 걸 봤어!”
“거짓말 마요!! 저 애는 우리 부서에서 제일 착한 애 예요. 개가 애들을 어떻게 잡아요! 개가 잡히면 모를까?”
“아니야!!! 너 오늘 쟤 유심히 잘 봐봐! 나도 어제 처음 저 애 화내는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염 대리님! 하여튼 어제 꿈에서 본거 아니에요? 저 애는 손님이 "야" 하고 소리 내면 막 울던 애였는데.. 무슨”
나는 염대리가 한 말을 무시하고 조용히 앉아서 전화를 받는 민정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키 150도 안 되는 작은 체구에 안경을 쓰고 조용히 손님들이 말하는 말에 네네를 하고 응대하고 있었다. 역시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 염대리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갑자기 울리는 내선 번호 벨을 당겨 받은 그 애의 목소리를 듣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약실 미친개 주임님이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마침 저기 계시네요~ 바꿔드릴까요?”
단호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거절하는 그 목소리는 나를 다시 뒤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불현듯 내 머릿속에 갑자기 매번 내가 안나 주임을 교육할 때 그 옆에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는 그 애 모습이 스쳐갔다. 그리고 그런 나를 줄곧 보고 있던 그 애는 놀란 나를 향해 그녀가 자신의 비장의 무기라며 책상에 있던 노트의 표지를 보여주었다.
“내 안에도 미친개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새끼 강아지를 이미 키우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고 그녀는 나의 그 모습을 자신을 뿌듯하게 생각한다는 생각에 으쓱해하고 있었다. 그랬다. 나쁜 개는 없고 미친개는 많지만 그 미친개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큰 개가 될 것 같은 그녀의 떡잎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앞으로 그녀에게 선물로 무엇을 알려줄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줄무늬 줄이 그어진 노란 메모장을 펴서 적기 시작했다.
'될 개 될'
1. 으르렁 소리로 경고하기
2. 물고 뜯고 술을 마시고 즐기기
3. 미친개 후계자라고 소문내고 다니기
메모 제목인 ‘ 될 개 될' '될 미친개는 반드시 된다' 뜻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불의에 항거해 미친 듯 짖을 수 있는 미친개 마을을 만드는 그날까지 메모는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