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승진은 내가 PASS

인생 선배의 조언

by 야초툰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제가 초고속 승진을 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 이런 질문했을지 몰라도 아쉽게도 저에게는 특별한 승진 비법 같은 건 없습니다. 만약 그런 비법을 기대하셨다면 지금 바로 업무에 복귀하셔도 됩니다. (나는 사무실 문을 여는 흉내를 내었고 다들 이 대목에서 빵 터졌다.) 그럼 없는 걸로 알고 시작할게요~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결국 저의 빠른 승진에 대한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다행히 김 과장과 J 부장은 임원진 회의 때문에 이 인수인계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금부터 실명을 거론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 이야기는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기로 해요.


저는 어느 정도 업무를 하게 되는 1년 차부터 어떤 줄을 잡고 올라갈지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주제 본인한테 맞는 줄을 선택해라!입니다.


제 앞에는 세 가지 줄이 있었어요


첫 번째 줄은 J 부장 줄이었어요.


그 줄을 잡고 올라가기만 하면 빠른 승진을 할 수 있지만 줄 타고 올라가는 내내 시어머니가 쫓아오면서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줄이었죠. 그리고 조금만 잘못한다면 바로 줄에서 잘려 나갈 것만 같았죠. 그래서 만약 제가 그 줄을 잡고 올라가면 집에 가서도 그가 한 말을 가만히 곱씹게 될 것 같았어요 “그 인간은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했을까?" 라며 말이에요 그래서 그 줄을 타려면 무조건 정신력이 강해야 했어요. 하지만 일 년 차인 저에게 없는 덕목이었죠. 그리고 갑자기 J 부장이 다른 부서로 가버리면 끈 떨어진 연처럼 될 수 있다는 위험요소도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그 첫 번째 줄을 쿨하게 지나쳤어요.


두 번째 줄은 김 과장 줄이었어요


그 줄을 잡고 올라가면 차근차근 서비스의 정석부터 컴플레인하는 손님들을 응대하는 법을 모두 배울 수 있었어요. 다만 줄이 좀 많이 길어 보였어요. 물론 그 줄을 올라가는 동안 김 과장의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기분을 맞추어줘야 했죠. 하지만 일 년을 경험 한 바 그녀의 기분은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매일 틀리는 일기예보처럼 매번 비 왔다가 흐렸다 흐렸다 맑았다처럼 달라졌기 때문에 김 과장의 기분을 맞추기란 복권 5자리 맞추는 일보다 힘들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두 번째 줄 또한 포기하고 지나갔어요.


세 번째 줄이 보였어요. 바로 끊어질 듯이 위태로운 줄이었어요


저보다 6개월 먼저 들어온 유리 선배의 줄이었어고, 그 줄은 딱 봐도 썩어 보였어요. 저걸 누가 타고 올라가? 가다가 분명 떨어질 것 같았지만 저는 그 줄을 잡았어요. 마치 언젠간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할 것 같았고 썩은 줄이었기 때문에 기대치도 없었어요. 물론 다른 선택지도 없었기도 했지만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그 썩은 줄을 잡고 올라가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배우기도 했어요. 올라가면서 같이 썩은 줄을 잡고 있는 동료들도 만나기도 하고 오징어 짬뽕 같은 날에는 유리선배가 늘 저에게 하는 말이 있었어요.


"C뱅아! 인생 뭐 있냐? 별거 없어! 마셔!"


오징어 짬뽕 같은 날? 그게 뭐냐고요? 그날은 썩은 줄 선배와 밤새 같이 술 먹고 회사에 출근해서 오징어 짬뽕을 먹으면서 해장하는 날이었어요. 저희는 그런 날을 오징어 짬뽕 같은 날이라고 불렀거든요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야 오늘 퇴근하고 오징어 짬뽕! 콜?" 하면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죠.


그렇게 썩은 줄을 타고 올라가면서 오징어 짬뽕을 먹고 즐기다가 2년 차 시니어 사원이 되어서 아침 조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사부 팀장님이 우리 부서에 문을 열고 달려와서 소리 질렀어요.


“예약실에 미스터리 쇼퍼가 100점을 줬어!! 대박 아시아에서 처음이래!”


“그래요? 누가 받았데요 그 사람 좋겠네!”라고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죠~


그런데 그 인사부 팀장이 저를 쳐다보며 너!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평가서를 제 눈앞에 들이밀었죠. 제 눈에도 그 평가서에는 정확히 허사원이라고 제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그러더니 인사부 팀장님이 이 손님 기억나냐며, 이름을 보여줬는데 이름이 낯익었어요.


"LEE ERIC"


!!!!


세 달 전에 어눌한 한국말로 말하면서 예약을 하던 손님이었죠. 그 이름을 보고 그때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 손님 이름이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과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마치 그 연예인을 이름을 부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어서 저는 점점 나 혼자 가상 캐스팅 전화 연극 놀이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에릭님~한국에 오는데 무엇을 타고 오나요? 저희가 차를 보내드릴까요?”


“에릭님~한국에는 처음이신가요?”


다행히 전화 속 가상현실이 만든 그 질문들은 다행히 모두 미스터리 쇼퍼의 호텔 브랜드 평가 항목에 해당되는 질문들이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브랜드 평가 항목에 새로 추가된 사항이 있었는데 “전화를 건 손님을 감동시켜라”라는 항목이었는데 전적으로 평가자에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는 점수를 받는 항목이어서 다른 호텔도 이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나 저는 에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통화한다고 생각하는 가상 통화에 이미 빠져 있었고, 그가 저에게 한국은 처음인 데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이라는 말에는 온 팬심을 다 끌어 모아 그동안 회사에 갇혀서 가지 못했던 저만의 위시 리스트에 있는 장소들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죠. 그리고 괜찮으면 손님의 메일로 한국 맛집들을 보내주겠다고까지 말이에요. 보통 손님들에게 하지 않을 오지랖을 그가 단지 에릭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리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저만의 맛집을 추천하면서 그에게 추천하면서 대리 만족하고 있었는지 몰라요. 행복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연예인 에릭을 상상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심지어 통화가 마무리할 때에는 “에릭!! 이곳들을 제 대신 가주세요. 그리고 나중에 어느 가게가 맛있었는지만 알려줄래요? “라고 물었고 그는 내 말이 농담인지 알고 한참 웃다가 고맙다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렇게 저만의 가상현실 속 연예인에게 맛집을 추천한 것 같은 기분이라 아주 행복했던 기억이 그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떠올랐었죠. 비록 저의 에릭은 어디가 맛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호텔 예약 평가 점수 100점과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함께 제 인사 기록에 적게 해 주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주제는 인사 기록에 타이핑할 것을 만들어라!입니다.


부서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사들은 어떤 직원을 승진시키고 싶어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본인도 추천하기 힘들어요. 본인의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거잖아요. 일을 열심히 한다? 일을 늦게 까지 한다 라는 표현들은 다소 주관적인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인사 기록에 적힐 수 있는 일들을 만들고 기록들이 쌓이면 가만히 기다려면 됩니다.


무엇을 기다리냐고요? 마지막 주제 여러분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겁니다.


제가 주임이 되고 2년이 흘렀을 때 그래도 제가 잡고 있던 썩은 동아줄이었던 유리 선배가 우리 부서 대리가 그만둘 것 같다고 저에게 먼저 귀띔을 해주었어요. 기회였어요. 하지만 저와 대리 자리를 경쟁하고 있는 다른 후보가 1명이 더 있었죠. 그래서 저는 유리 선배가 부서 이동한다고 들었을 때부터 야근은 물론 거의 회사에 붙어 있었어요. 상사들이 무슨 일을 시키면 묵묵히 일을 했고 후배들이 모르는 걸 해결해 주곤 했죠. 혹시 여러분은 아세요? 승진을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마지막 주제 타이밍이에요! 그전에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솔직히 상관없어요. 내가 원했던 그 자리가 딱 났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적임자라고 열심히 보여줘야 돼요. 그럼 상사나 선배들이 '그냥 미친개인 줄 알았는데 말도 잘 듣고 이제 일도 잘하네'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그 사람을 그 자리에 추천하게 돼요.


저도 대리가 되었을 때 제일 좋았던 말이 김 과장이 “야 그래도 우리 부서 처음 만장일치로 너를 대리로 뽑았어!”라고 들었을 때였거든요. 그리고 승진을 하게 되면 다시 미친개로 돌아오면 되죠. 어차피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 말이에요.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저에게 질문한 초고속 승진 어떻게 하셨어요? 에 대한 제 답입니다. 다들 내 인생의 첫 강연을 듣고 이렇게 "원래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매일 으르렁 거리는 것만 봤는데 이런 말도 하네 라는 표정들을 보면서 나는 마지막 준비한 말을 했다.


“저도 여러분이 기회를 잘 잡고 제 옆에 큰 나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우리가 제주도 사려니숲은 못돼도 호텔 객실 팔려니 숲은 만들 수 있잖아요! “


다들 눈빛이 저런 썩은 개그는 받는 게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나갔다. 그런 그들을 표정을 보고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나가실 때 조금만 더 저를 생각해 주시고 소문만은 내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내 생의 첫 강연을 끝이 났다. 양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그래도 난생처음 내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준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준비한 마지막 멘트를 혼자 읊조렸다.



예전에는 제 몸에는 상처가 여섯 개나 그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상처들은 어느새 제 몸의 튼 살들이 되어

제 몸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호텔 객실 팔려니 숲> 허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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