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구니와 손가락 쇼핑
남편은 오늘도 잠들기 전에 쓸데없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일어나서 산도 가고, 청소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고 아 그리고 마트도 가야 돼 정말 바쁜 하루가 되겠어"
쉴 새 없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과연 그이가 내일 일어나서 할 일이 저 중 몇 가지나 될까? 두 가지? 아니 한 가지도 없을 수도.... 분명 내일 오전 10시 가까이 다 돼서 일어나 잠을 깨야 한다며 30분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배고프다며 배달어플을 켜겠지. 그리고 남이 해준 음식에 취해 한 시간 반정도 낮잠을 자고 나면 오전은 그냥 날아갈 거야. 청소? 빨래? 웃기고 있네...미세먼지가 많다며 핑계를 대다가 결국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이불 속에 들어가 밤새 손가락 쇼핑을 하다 잠들겠지? 아직 내일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려지는 그의 미래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계획을 세우는 J면 무엇하랴? 태생이 게을러 그 계획을 실천할 의지가 없는데... 나는 차라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 P인 내가 낫다며 코를 골고 누워있는 야초의 배를 긁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야지'의 인생을 사는 남편의 쉬는 날은 내가 예상한 데로 쇼핑만 하다 끝이 났다.
물론, 연애할 때부터 남편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서워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매장에 들어가면 무조건 사야 하는 호갱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가게에 들어가기도 전에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허리를 숙이며 "호리병님 아니..호갱님 입장하십니다"를 남편을 향해 외치곤 했다.
그리고 몇 분뒤 예상처럼 그는 쇼핑백을 양손 한가득 들고 나오곤 했다. 그래서 나 역시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일단 이렇게 말한다.
"일단 가게에서 보고 생각해 보자"
생각은 무슨.. 그는 그곳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더 빨리 물건을 사 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그는 한 곳에서 정수기, 청소기도 사고, 나오는 길에 공기청정기까지 샀다.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호객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아마도 그가 다시 오기 싫다는 게으름과 또다시 물어봐야 한다는 소심함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랬던 그에게 손가락 쇼핑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한 번으로 클릭해서 들어가면 남의 눈치 보지도 않고 가격 비교도 할 수 있고 누가 호객님이라고 뭐라 하지도 않는 그런 세계..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그에게 다소 불편한 게 있다면 손가락 쇼핑으로 산 물건들을 그의 아내인 내가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출근 퇴근 하면서, 문 앞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손가락 쇼핑의 잔여물들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는 내 발걸음을 감히 방해해서 불편할뿐더러, 내가 가격도 모르는 물건을 허락도 받지 않고 주문해 집 앞까지 두었다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심지어 허리를 굽혀서 그 물건을 집어야 한다니... 그래서 나는 남편이 주문한 물건을 보면 발로 툭툭 물건을 밀어서 지금 막 도착한 것처럼 현관문 앞에 두곤 했다. 개봉 시 반품 불가 일 수 있으니, 반품 불가인건 하나로도 족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보다 작은 모양의 물건이 비닐에 쌓여 놓여 있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툭하고 발로 찼더니 떼구루루 구르지 않고 툭하고 날아갔다. 이건 또 뭐지? 싶다가도, 모른 체 집에 들어왔다. 혹시 내가 차서 상처가 났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신줏단지를 모시는 것처럼 내가 발로 찬 비닐봉지를 껴앉고 들어왔다.
"여보 여보 드디어 왔어!"
"그게 뭔데?"
"내가 얼마 전에 말했잖아 계속 인터넷 하면 추천해 주는 물건이 있다고 그래서 한번 사봤어"
"뭐였지?.. 다이어트 약이었나?"
"바구니!"
"바구니?!!!"
나는 바구니라는 단어에 머릿속에 빨간 버튼이 눌린 사람처럼 빠르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바구니이? 우리 집에 얼마나 많은데 또 샀어? 현관 입구에는 분리해서 넣으라고 수건, 흰옷, 색깔 옷 바구니 있고, 여기에! 분리수거하는 바구니 3개 추가여, 또 쓰레기 통도 방 입구마다 놓아야 한다고 3개 더 샀잖아. 기억나니? 네가 말했지 이제 태민이의 무빙 댄스처럼 툭툭 던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제 그만 산다며? 그런데 바구니를 또 사? 원통형도 아닌 바구니이~를?"
오랜만에 듣는 잔소리에 당황한 남편이 땀을 흘리며 자기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어떻게 알았어? 맞아 이건 그냥 원통형 바구니가 아니야 이건 리모컨 바구니야!"
"뭐?"
놀란 내 표정에 이 모든 게 나를 위한 거라는 어이없는 변명이 이어졌다.
"맨날 여보가 검은 리모컨 어디 있지? 하얀 리모컨 봤어? 아 선풍기 리모컨 또 어디 있더라. 에이 그냥 에어컨 틀자 그런데 에어컨 리모컨은 어디 있지?라고 외치며 여기저기 들추고 다니잖아 그래서 생각했지 리모컨을 한 곳에 모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핸드폰 광고가 기가 막히게 나를 그곳으로 안내하는 거야! 그래서 샀지~"
노래를 마친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하는 내 표정에 신이 나서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알고리즘도 그 정도면
이제 너를 바구니로 아는 거 아니냐?"
"그럴지도~"
남편이 포장지에서 꺼낸 물건을 소중하게 꺼내놓고 그곳에 리모컨을 꽂으며 말했다.
"당신은 앞으로 여기다 다 놓고 필요한 리모컨만 쓰고 다시 넣으면 돼요~ "
마치 나를 아이 다루듯이 말하는 그가 얄미워졌다.
"절대 거기다가 안 넣을 거야! 이 바구니 덕후야!"
바구니가 많으면 뭐 하나, 청개구리 한 마리가 우물을 흙탕물로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내일부터는 바구니가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겠어라며 나는 하얀 이를 들어내며 웃었다.
Chapter 1. 코인 세탁실이라는 동굴에 가는 남자
ㅁTips : 코인 세탁실에 있는 세제는 비싸고 별로 좋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코인 세탁실에 갈 때는 목욕 바구니에 세탁세제를 갖고 간답니다. 어떤 코인 세탁실은 세제가 나오는 기계도 있으니 확인하고 가져가세요
1. 물에 녹는 수용성 세제
2. 건조기용 바운스
3. 세탁물 담은 바구니
다음화 예고)
“군대를 갔다 와서 혼자 자취도 하고 이렇게 살림스타도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군대에서 배운 살림 꿀팁 대방출!”
“그럼 다시 군대 가”
“….. “
군대에서 모든 걸 배웠다면서 군대를 다시 가기 싫은 남편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연재를 하다 보니… 남편의 수다를 계속 들어줘야 하네요…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