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게으름뱅이들의 오야봉 김치런 아빠
처음부터 어쩐지 목소리부터 찜찜했다. 보통 친정에 내려간다고 전화를 하면 한사코 차가 막혀서 아니면 오느라 힘드니께 다음에 편할 때 오라고 거절하기 다반사였던 엄마가 흔쾌히 오라고 손짓하며 언제 오냐고 계속 물어보는 게 말이다.
“그래가꼬 언제 온다고? “
“아니 내일 간다니까 차가 안 막힐 때 가야 하니까 아침에 출발할게”
“그려 일찍 와 (일찍 오면 나야 좋지)“
“어..?”
“아냐.. 그냥 혼잣말이여~그렇서 옷도 편한 놈으로 아니다 버려도 좋은 놈으로 다가 입고 와”
“왜 이래”
부담스러운 친절. 드라마였다면 분명 의심했을 웃음소리. 드라마 첫 방송 전 예고편에서 모든 걸 보여주는 드라마처럼 이미 준비되어 있던 밥상에 나와 남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숟가락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그 밥상을 들고 나에게 뛰어오는 걸 처음 느꼈을 때에는 이미 친정에 도착한 후였다. 엄마는 차에서 내린 나와 남편이 입고 온 옷을 훑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 다른 옷은 없어? 그 옷은 안 되는데..”
“뭐가 안돼? “
“아니… 그러니까 그런 게 있는데… 황서방도 바지는 그게 안 되는데.. “
“아니 뭐가 안 되냐고?”
“옷이 잘 물드니까… 너는 내가 옷을 준다 캐도 황서방은 저 청바지는 불편할 텐데.. “
“왜 불편해? 뭐가 물드는데..? 왜 말을 안 해줘? “
나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걱정스레 남편의 바지만 보고 있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남편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 장모님 저는 츄리닝 바지를 따로 챙겨 왔습니다”
“그럼 됐네 잘했네 어차피 쟤는 별로 쓸모가 없을겨 아들만 있으면 돼지“
나를 보며 고개를 세차세 흔드는 엄마의 눈빛은 마치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하려는데 나에게만 삐익 소리가 나는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너는 겉절이고 힘쓰는 사위가 필요했다며.. 뭘 물들면 안 되고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물어본 엄마의 질문의 의미를 걸어 들어가는 길에 펼쳐진 고춧가루 밭을 보며 알게 되었다. 얼마 안 가 이곳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내 모습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더미로 쌓인 양념을 보며 물었다.
“엄마 이게 뭐야?”
“엄마의 피 땀 눈물 그리고 앞으로 네가 흘릴 눈물”
왜 미리 말 안 했냐고 엄마를 흘겨보며 따지는 딸에게 엄마는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이미 오래전부터 김장한다고 말했고 단지 그날이 오늘이라는 말만 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게으른 딸을 낚으려 던져두었던 그물망을 뿌듯하게 걷어 올리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에게 앞치마를 입혔다.
“대어를 낚았네”
그렇게 난 피범벅 같은 김치 판에 억지 등판하게 되었다. 김장을 안 해봐서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잡힌 생선의 마지막 발버둥을 쳤지만, 엄마는 이미 그 모습을 예상했다는 듯이 비장하게 선생님을 소개했다.
“그럴지 알고 섭외했지! 선수 입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아빠가 헛기침을 하며 등장했다.
“김장만 20년째 아빠만 따라 혀~”
뚜뚜뚜르르 뚜뚜뚜르르 마치 수술대 마지막에 등장하는 의사처럼 무장한 아빠가 등장해 비장하게 엄마에게 외쳤다
“배추!”
“넵!!”
그렇게 아빠에게 어렵게 배운 교육으로 나는 나머지 배추에 양념 묻히고. 남편은 양념을 가득 바른 김장을 옮기며 서프라이즈 한 첫 김장을 마무리했다.
김장에 집중하느라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를 감시하던 그들도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 남편이 김장하다 사라진 나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기절한 전사들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