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결혼이라는 군대, 아내라는 전우
그와 나의 입대일은 같았다.
2015년 4월 11일.
분명 결혼이라는 군대에 같이 이등병 군번을 달고 으쌰 으쌰를 외치며 시작했지만 남편은 아직도 이등병, 나는 어느새 병장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게으름으로 최고봉에 올랐던 자가 빠르게 병장으로 진급할 수 있었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건 아마도 미친 O형의 기억력 때문이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 심심해서 자질구레한 것부터 쌓아 올렸던 기억들이 결혼 생활에서 빛을 발휘하기 했다.
신혼 초, 남편이 내기로 설거지 당번을 정하자고 제안하면, 나는 씨익 웃으며 그의 기억에 이미 사라진 기억의 조각들을 굳이 손을 쑤욱 넣어 꺼내 맞추기 시작했다.
"여보~동기! 우리 설거지 누가 하나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아! 남편 가위바위보 하니까, 그때가 생각나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이었어. 나는 너랑 데이트한다고 짧은 치마를 입었어.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운 거야. 내가 집에 가자니까, 너는 솜사탕 먹고 싶다고 나를 버리고 너 혼자 솜사탕 사러 갔잖아 기억나? 그 여의도 모퉁이 말이야.."
".. 아... 그거랑 설거지랑 무슨 상관인데, 아 알았어 내가 그냥 설거지할게. 너는 무슨 10년 전 일을 기억하냐? 난 기억도 안 난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지"
물론 남편에게도 나를 몰아세울만한 일들이 분명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달랐던 점은 그는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내 머릿속에 총알처럼 그의 심장에 박힐 연애의 흑역사가 우수수 별처럼 박혀 있었으므로 남편은 하늘에 별이 되지 않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이등병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나마 내가 만든 '아내에게 점수 따기'가 그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점수를 모으면 내가 청소나 설거지를 심지어 아내 친정 가기 찬스까지 쓸 수 있어서 점수를 따기 위해 신혼 때부터 열심히 점수를 땄지만 이 마저도 세월이 지나자, 점차 불공정한 점수체계로 바뀌어져 갔다.
"아니 내가 어제는 분명 생일선물 사줘서 점수를 딴 거 같은데.."
"응 근데 바로 게임해서 마이너스 1,000점 되었어"
"딴 건 10점인데, 마이너스는 왜 1,000점이야? 말이 돼?"
"원래 마일리지는 까는 맛이지"
"옥수수는 터는 법이고? 이 옥수수 독재자 그때 알아봤어야 했어!"
"옥수수?"
내가 옥수수?라고 되묻자, 남편은 당시의 기억을 어렵게 떠올리는 듯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조용히 직원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직원이었다고 한다. 분명 같이 부서 회식을 하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몰랐던 얌전한 직원이었는데, 그날은 헝클어진 머리에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모습으로 자신 앞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남편이 막 구운 옥수수를 황급히 한쪽 손에 들더니 옆에 앉아 있던 여자 선배에게 장난치려는 듯 씨익 웃으며 다가가 들고 있던 구운 옥수수를 선배의 얼굴에 들이밀며 말했다고 한다.
"선배 이 옥수수 좋아해요? 그럼 내가 선배 옥수수 털어도 될까요? 아까 컴플레인하는 손님 전화 왜 웃으면서 저한테 예약전화라고 넘겼어요? 제가 모를 줄 알았어요?“
내가 말이 끝나자마자 선배의 입 근처에 구운 옥수수를 갖다 댔고, 그 옥수수를 본 선배가 깔깔깔 웃으며 예약실 미친개가 밖에서도 미친 행동을 하는구나 하며 조용히 입을 가리고 다른 테이블로 옮겼다고 한다.
그때는 이 여자 반전 매력 있네라고 그냥 웃어넘겼는데, 옥수수를 터는 것을 좋아하고, 면전에서 선배를 까는 것을 서슴지 않던 존재를 웃어넘긴 결과가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만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남편은 과거에 한심한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가슴을 툭툭 쳤다.
하지만 결혼은 한 번도 후회 한 적 없다며 내가 자신이 마음 놓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에게는 그의 마지막 말이 나를 까고 본인의 점수 판에 점수가 까일 것 같아 성급하게 바르는 씨멘트처럼 느껴졌다.
그도 나의 싸한 아이스크림처럼 싸한 표정을 느꼈는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어..아니 근데 있잖아 군대에서는 말이야. 신속 정확이 생명이야 그래서 샤워를 갈 때 한 번에 갈아입을 수 있게 옷과 속옷을 같이 갠다 이거 봐봐"
"어.. 어 그래"
나는 힘들게 누웠던 자세를 방향만 바꾸어 대충 대답했다. 그는 내가 돌아눕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뽀얗게 세탁된 하얀 티셔츠를 양쪽으로 차례로 펼쳐 놓고 나에게 보여준다며 굳이 천천히 웃으며 접기 시작했다.
"내가 군대를 안 갔으면 이렇게 빨래를 접는 것도 화장실 청소하는 것도 몰랐을 거야. 군대를 갔다 온 자신감으로 혼자 자취도 할 수 있었지. 사실 군대는 있잖아 살림만 잘하면 기본을 먹고 들어가는 거야. 거기다가 축구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기면 완전 꿀이지 “
"그럼 너는 참 힘들게 군대생활 했겠구나 다시 군대 가서 기억을 리셋하는 건 어때?”
남편은 나를 힐끔 째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미안한데 난 이미 다른 군대에 입대를 해서 못 가거든요"
"응? 무슨 군대?"
"결혼이라는 군대... 심지어 죽을 때까지 평생 병장이랑 죽을 때까지 함께 살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서약했거든. 악덕 옥수수 병장이랑 말이야.. 아휴 내 신세.."
"뭐? 이등병의 반란인가? 그럼 악덕 병장한테 오래간만에 옥수수 좀 털려볼래?"
나는 오늘도 그의 등에 매미처럼 매달려 웃으며 옥수수 보이지 말라고 협박하고 있다. 누가 믿겠는가? 키 191이 넘는 남자가 160도 안 되는 여자에게 잡혀산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키가 주니 남편의 눈에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이지 모를 눈물이 가득 고였다.
키가주니가 알려주는 군대식 샤워 준비!
"결국.... GAME OVER”
제목 : 세면대 군대식 청소
대본 : 키가 주니/ 주연 : 키가 주니 보조출현: 야초툰
다음 편 예고) X세대 키가주니
남편: 먹고 돌아서면 쌓여 있는 설거지, 저는 그 설거지를 음악을 들으면서 해요. 왜냐고요? 기분이 초큼 나아지거든요... 심지어 아내가 설거지를 해 줘도 기쁘지 않아요. 제가 다시 해야 하거든요. 고양이 세수 말 아시나요? 저희 아내는 고양이 설거지를 해요. 그래서인지 언년이 언니도 제 손을 꽉 잡으며 부탁하셨어요. 내 동생 사람 좀 만들어 달라고요. 아무래도 사람은 조큼 힘들 것 같아요.. 휴.. 그런데 여러분 선우정아 "뒹굴뒹굴"이라는 노래 들어 보셨어요? 딱 제 아내 같아서 요즘 그 노래에 꽂혀 산다니까요? 여러분도 한번 들어보세요! 다음화도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