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SNS

낯가리는 사람의 안식처

by 야초툰

내향인인 내가 좋아하는 건 술자리와 SNS 다. 낯을 가리는데 술자리를 좋아한다고.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도 이해할 수 없다. 알코올은 만병 통치약이라고 선배들이 말했던 것처럼, 술을 마시면 달궈진 얼굴 껍질이 녹는다. 늘 바닥을 향하던 고개가 흥얼거리며 양옆으로 흔들린다. 감추고 싶었던 목소리가 단전에서 끓어오른다.


친숙했던 언니를 부르던 목소리가 여보세요로 바뀔 때, 안 되는 걸 계속해달라고 끊지 않은 전화에 매달려 있을 때. 사무실에 앉아 있던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꿀꺽 침을 삼킨다. 속으로 이것은 침이 아니라 알코올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우리는 알코올 만병 통치약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게 생활의 지혜라는 걸. 밤새 컴플레인 전화를 받으며 시달렸던 나에게 선배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짜식, 침 꿀꺽 삼켜."

"네?"

"알코올이 목으로 넘긴다고 생각하라고. 목감기가 걸려 목이 아플 때는 알코올로 소독하고, 소화가 잘 안 될 땐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 소화되듯이. 그게 다 알코올 매직이란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술이 건강에 좋다는 말인가. 하지만 마치 마법처럼 끓고 있던 화가 풀렸다. 침을 계속 삼키게 되었다. 나에게 조언을 했던 그 선배 역시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출근할 때마다 알코올 향이 났고, 동료들에게는 스킨 냄새라고 우기곤 했다. 그런 모습에 질색을 하던 나 역시 호텔 경력 10년 차에 호프집에서 후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호텔리어라는 게 별거 없어. 술로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버리면 어느새 목소리도 술톤이 되어있지. 왜 팀장님이 그랬잖아. 친절한 목소리는 술톤이라고.


술톤이 아니고 솔톤이겠죠.


그래, 맞아. 친절한 솔톤이 술톤이다. 마시자.


세월이 흘러 진상이 손님이 아니고 내가 되어 버리다니. 선배 말처럼 이상하게 술은 두껍게 쓴 가면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하루 종일 고객과 상담하며 종종 되었던 발걸음을 잊게 만들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당신은 유독 얼굴이 빨갛네요.라는 사람들의 시선에 그래요. 저 술 좀 마셨어요. 오히려 반기를 들게 한다. 그 시간을 즐기다 보니, 그토록 아저씨 같다고 싫어했던 선배의 모습에 내가 겹쳐 보였다. 혀가 꼬인 목소리로. 눈은 자다 깬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그런 나에게 무엇이라도 배워보려는 후배를 쳐다보고 있는 꼴이라니.


그래도 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사귄 친군데. 퇴근을 하면 술에 절여진 빨래처럼 대충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가 출근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네무새가 되었다. 네만 대답하다 보면 퇴근 다시 출근의 연속.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이 꿈이고, 그 이후가 현실인 것처럼 술은 내 옆을 지켜주었다.


알코올 중독은 아니지만, 낯을 가리는 내가 술을 마시면 다른 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낮에는 어색하게 인사하다가 술 한잔이면 어느새 오빠 동생 언니가 되어 버리다니. 이만한 마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마법은 또 다른 마법과 만나 이상한 화학반응을 만들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도 술자리에서였으니까. 첫인상부터 별로였던 남편은 한 잔 두 잔 기울어진 술잔에 미남이 되어 있었다. 그때는 분명 그랬는데, 깨어보니 아니었다. 훗날 남편은 내가 자신에게 먼저 반했다고 말하며. 선녀를 위해 나무꾼이 숨겨 두었던 선녀 옷을 꺼내듯이 젖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컨시어즈 선배가 그러더라고 여자를 꼬시려면 과일 주를 마시게 하라고.


그 뒤로 알코올을 줄였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형벌로. 그랬더니 새로운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SNS 세상. 낯을 가리는 사람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나 사실 엄청 재밌는 사람이야.라고 쓴 글이 여기저기 퍼져 나간다. 내가 아닌 나. 집에 앉아서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 더 웃긴 건 나름 내가 고인 물이라. 가끔 상담도 하게 된다는 점이다. 헬스장 트레이너 선생님이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나도 회원님처럼 스레드 열심히 하는데 맨날 로맨스 스캠만 와요."

"계정이 뭔데요?"

헬스장 트레이너 선생님의 계정을 열었다. 가을 타는 40대 유부남입니다. 프로필에 정확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말했다.

"안. 물. 안. 궁."

"네?"

"이렇게 프로필을 쓰니까. 로맨스 스캠만 오죠. 로맨스 스캠이 쓰는 프로필과 같네요. 사진은 온통 자기 사진뿐. 스레드는 그 사람이 궁금해져야 하는데. 선생님의 프로필을 보니까 하나도 안 궁금해져요."

트레이너 선생님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며. 당황해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눈빛을 보니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해야 하는 운동은 하지 않고 입 운동만 하고 왔다. 그래도 좋았다.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니까. 낯을 가리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이 오다니.


심지어 가끔 궁금한 게 있다며 DM도 온다. 현실 속 내가 인터넷 망을 통해 전혀 다른 나로 변한다. 소설 속 지킬 앤 하이드처럼. 현실 속에 나를 숨기고, 다른 자아로 친구를 만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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