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평균 온도는 36.5도
호텔에서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물론 예약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보통은 예약실에서는 신규 예약이 시스템에 생성이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연락처나 이메일로 그 사람이 일전에 호텔에 투숙한 적 있는지를 확인하고.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나 객실을 배정할 때 특별한 요청을 한 사항이 있는지 예약이 들어왔을 때 요청 사항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날 체크인하는 손님의 예약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때 유명했던 가수 J였기에, 심지어 프런트 직원 K는 그 가수의 팬이었다. K는 J가 투숙하는 날을, 휴가를 반납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J가 체크인할 때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응대를 했다.
호텔리어는 손님에게 과도한 관심이나 표현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팬이었던 K는 흥분되는 감정을 숨기고 J의 체크인을 도왔다. J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초점을 잃은 듯한 눈빛과 K가 묻는 말에 다 귀찮다고 말하는 말투까지. 예전의 활기 넘치던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체크인 절차가 끝나가서 K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며 객실 키를 전달했을 때, 한 번 J가 깊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처음이었다 J의 목소리를 들은 건. K는 눈물이 날 뻔했다.
“아, J. 제 이름이군요. 오랜만에 들은 이름이어서. 직원분은 어려 보이시는데, 저를 아시려나? 아니에요.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옛날 가수라 아무도 모를 텐데.”
멋쩍게 키를 받으며 J가 돌아서려는데, 직원이 말했다.
“아니에요, 저 알아요. J 씨, 저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냥 하신 말씀인데도 위로가 되네요. 그럼, 팬분, 내일 모닝콜 10시에 해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J는 믿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호텔 로비로 향했다. 사람들은 역시 그가 한때 유명한 가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그를 그저 스쳐 갔다. 그때 K는 자신의 팬심을 미리 말하지 못했던 것과 J를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을 후회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예약 실에 모닝콜 신청을 하려고 전화했다.
“제시야, 1013호 10시에 모닝콜 부탁해.”
“J? 아, 고민수 님?”
“응, 나 사실 고민수 씨 팬인데 말을 못 했다. 막상 꿈에 그리던 연예인이 내 앞에 서 있으니까. 아무 말도 못 하겠는 거 있지.”
“아, 그래? 그때 네가 말한 그 가수?”
“응, Don't say good bye이라는 곡 진짜 좋은데. 다른 사람은 잊었을지 몰라도, 나에게 영원한 스타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라.”
“아, 그래? 모닝콜이 10시라고 했지? 일단 알았어.”
그 말을 들은 예약실 직원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다음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오전 10시. 1013호에 전화가 울렸다. J이자 한국 이름은 고민수 씨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 순간, 전날 과음으로 인해 깨지지 않던 잠이 달아나 버렸다. 분명 전화기 속에 들리는 음악은 자기 노래였다.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물결치며 살아났다. 처음에 크게 들렸던 노래가 점점 잠잠해지더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고민수 님 10시 모닝콜입니다. 노래를 듣자마자 그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덩치 큰 성인이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고 있는 것처럼 거친 숨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예약실 직원은 그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했다.
“고민수 님, 저희는 당신은 잊지 않았어요. 당신의 노래 속 당신은 계속 노래하니까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오늘 들려드린 곡은 프런트 K라는 직원이 신청한 곡이에요. 고민수 님 첫 앨범부터 팬이었대요. 항상 응원한다고 전해달래요. 피스.”
피스는 고민수의 팬클럽이 외치던 구호였고.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가 전화를 끊자. 튼 음악의 볼륨을 담당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점점 수화기에서 멀어졌던 직원도.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빼곡히 적혀있던 종이를 들고 있던 직원도. 수화기만 들고 있던 직원까지 세 명이 모두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그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호텔리어의 귀에서 귀로 전해졌다.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사람이 주는 따스한 온기라는 말과 함께. 이런 서비스를 고객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사실 대화라는 건 사람의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 그 진정성이 전달되는 법인데. 목소리와 음악만으로 전달되는 감동이라니.
그럼 어쩌면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접 만날 수 없지만 전해지는 진심과 이야기. 앞으로는 진심을 담아 마음에 닿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토마토의 끓는점을 높여 영양분이 풍부해지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