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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Feb 08. 2024

4년만의 한국방문기 - 2

추위,끔찍한 교통체증, 그리고 서울



 입국심사를 통과했을 때 시간은 오후 6시 쯤이었습니다. 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제가 했던 일은 와이파이 연결이었습니다. 친 동생이 서울에 살아서 절 픽업 해주기로 했거든요. 연결하자마자 거의 다 도착했다는 동생의 메세지를 확인했습니다. 전 신나서 캐리어를 끌고 대책도 없이 공항 밖으로 나갔죠.


 공항 밖을 나섰을 때 든 첫 생각은 “어? 생각보다 너무 추운데?” 였습니다. 캐나다는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추운 나라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제가 사는 밴쿠버는 굉장히 따뜻하거든요. 물론 밴쿠버를 제외한 다른 곳들은 다들 생각하는 그런 느낌의 도시들입니다만..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제 복장은 히트택, 점퍼 없이 긴팔 아디다스 후디와 아디다스 추리닝 바지, 슬리퍼 게다가 양말도 발이 보일듯 말듯한 엄청 얇은 것이었습니다. 하필 그 날이 12월 중에서 가장 추운 날이었다는데 그 상태로 공항 밖을 나갔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죠.


 옷을 갈아 입을까 생각도 했지만 도저히 캐리어와 짐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 엄두도 안났고, 또 동생이 공항에 거의 도착했다고 해서 길이 엇갈리면 고생할까봐 캐리어에서 급하게 패딩만 꺼내 입었습니다. 그때 장갑꺼내고 신발도 갈아 신었어야 했는데...


 서로의 위치를 잘 몰라서 핸드폰을 한 손에 쥐고 통화를 계속하면서 동생을 기다렸습니다. 다행히도 손발가락의 감각이 없어지기 전에 동생이 빨리 저를 찾았고, 그 길로 바로 동생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제가 기억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살이 좀 찌기야 했지만 몰라보게 많이 변했다라는 느낌은 전혀 없더라구요.  


 4년동안 가끔 통화를 하긴 했지만 형제 사이가 으레 그렇듯이 영상통화를 하거나 서로 안부를 살갑게 묻는다거나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끔 부모님이 "동생한테도 전화 한 통 하지?"하면, "잘 지낼건데 연락 할 필요 없어요. 여자친구하고 같이 있을건데 전화하면 실례죠."하면서 명절때 말곤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랜만에 만나는건데 공항에서 만나면 좀 어색하다거나, 엄청 반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어제 만난 사이처럼 편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런게 혈육의 정일까요, 아니면 추운 곳에 있다가 따듯한 곳에 와서 몸이 녹으니 편하다고 느낀걸까요.


 못 본 사이에 차도 사고, 직장에서 직급도 많이 올라갔고 이젠 서울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살았다보니 운전하는 내내 서울 지리 이곳저곳을 설명하는 동생이 신기하기도하고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좀 묘했습니다.




 동생이 사는곳이자 제가 나중에 지낼 숙소가 광진구 중곡동 이었습니다. 거긴 공항에서 꽤 멀다고 하더라구요. "형, 피곤하면 눈 좀 붙여. 차가 지금 엄청 밀려서 도착하려면 두시간 반에서 세시간 걸릴거야."라고 하길래 전 으레하는 허세 섞인 오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한국에, 특히 서울에 자동차가 그렇게 많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기어가면서 겨우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다리 위로 올라가는데 다리 저 끝까지 보이는 교통체증이 경악스러웠습니다. 제가 있는 밴쿠버도 출퇴근 시간에 차가 많이 밀리긴 하지만 오후 6시가 넘어가면 그정도로 심하진 않거든요. 교통사고가 났거나 도로에 무슨 일이 있지 않는 이상에야.


 하지만 서울은 평소때가 그렇다니,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런 도로를 운전하며 출퇴근 하는 서울 사람들이요. 동생에게 "야, 이럴꺼면 그냥 지하철 타고 갈걸 그랬다. 도로가 이렇게 밀릴 줄 몰랐네. 좀 미안하네."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하니 동생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리면서 말하더라구요. "노노, 그건 형이 서울을 잘 몰라서 그래. 저런 캐리어하고 짐 끌고 이 시간에 지하철 절대 못 타. 타도 형 욕 먹어."


 사람이 많아야 얼마나 많길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울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하고 별 말은 안했습니다. 동생이 웃으면서 "형이 원하면 퇴근시간 지하철 한 번 타봐. 그럼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거야."라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이야기, 밴쿠버에서 사는 이야기를 도로 위에서 한참을 했습니다. 동생이 센스가 있었으면 커피라도 사왔을텐데 그런 센스는 없더라구요. 물을 페트병채로 차에 들고 다니길래 커피나 음료수 대신 맹물을 마셨습니다.




 제 고향은 부산입니다. 캐나다로 넘어오기 전까지 군생활 2년을 제외하면 계속 부산에서만 살았죠.


 아마 한국에서 쭉 살았더라도 부산에서 살면 살았지 서울에 와서 살 생각은 별로 안 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캐나다로 넘어올 때 밴쿠버, 토론토, 캘거리, 에드먼튼. 이렇게 선택지가 총 4개가 있었는데 캘거리와 에드먼튼은 너무 춥고 도시가 쓸쓸하대서 아예 갈 생각도 안 했었고 토론토와 밴쿠버 중에서 별 고민도 없이 밴쿠버를 선택했습니다.


 밴쿠버가 서쪽에 있어서 한국하고 가깝기도 가깝거니와 밴쿠버에 선배님들이 좀 계셔서 적응하기 편할 것 같았었거든요. 또 토론토는 완전 대도시다 보니 '그런 북적북적한 생활보단 적당히 있을거 있으면서 적당히 여유롭다는 밴쿠버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땐 컸습니다.


 밴쿠버의 물가나 집값이 이렇게 살인적일 줄 알았다면 다른 도시를 선택하는 게 더 나을뻔 했다는 생각이 요샌 들긴 합니다만..


 어쨋든 차 안에서 동생과 가장 재미있게 했던 이야기 주제는 [왜 서울에서 살려고 하는거야?]였습니다. 제 생각은 "서울이 복잡하기도 복잡하지만 지방에 비하면 생활비가 배로 더 나간다는데 굳이 서울에 살 필요가 있냐. 요샌 지방도 발전이 많이 됬다고 들었는데."였습니다.


 동생은 내향적인 저와 완전 반대인 외향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생각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생활비나 방값 생각하면 서울에서 못 살지. 근데 서울 인프라가 지방에 비해서 차이가 너무 많이나. 할 것도 많고 누릴 수 있는게 많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거 같아. 그러니까 기회도 많지만 경쟁도 치열하지. 반대로 요샌 부산에 내려가면 예전만큼 북적거리는 느낌이 거의 없더라고. 뭔가 되겠다, 싶은 사람들은 전부다 서울이나 경기권으로 다 올라오려고 하니까.


 물론 일하는 것도, 사는 것도 훨씬 빡시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 지방에 사는 친구들보다 연봉이나 대우가 훨씬 올라있고, 그런거 보면 보람도 있더라고. 그리고 지방은 아직도 옛날에 있던 이상한 회사문화가 남아있는 곳이 많은데 서울은 중소기업도 법 같은거 칼같이 지켜주는데가 많아. 그런것도 좋고.


 또 형 같은 경우에는 기술직이니까 어디든 취직해서 비슷한 연봉 받으면서 살 수 있지만 요새는 지방이 무너져가고 있어서 나같은 직종 사람들은 지방에 일자리가 별로 없어. 물론 찾으려면 찾겠지만 이직이 힘들어. 결국 이직하면서 연봉을 올려야되는데 부산에선 일자리가 여기에 비해 많지않으니까 그게 쉽지 않겠더라고.


 난 이렇게 북적북적하고 할 것, 놀 것 많은 서울이 더 좋더라. 형은 옛날부터 혼자 책읽고 영화보고 하는거 좋아해서 서울 사는 게 안 맞겠지만, 아니다. 그런것도 서울이 훨씬 낫지. 형이 좋아하는 옛날 영화나 예술 영화 같은거만 상영해 주는 영화관도 서울이 훨씬 많을걸? 또 그런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여긴 많으니까 그런 모임같은 걸 구하기도 훨씬 낫지. 하여튼 서울이 좋습니다. 나는."


 대략 그런 말이었습니다. 듣고나니 수긍이 되더라구요. 그렇구나, 그러면 네가 서울에 지내는 게 맞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부모 형제 친척 친구들 다 포기하고 부산 - 서울이 아니라 한국 - 캐나다에서 지내고 있는데, 내가 더 했으면 더 했지...쓸데없는 질문을 동생에게 했나 싶었습니다. 동생도 물어보더라구요. 한국에 들어올 생각은 없는지.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살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적응하는 게 힘들었지만 이젠 꽤 지내다보니 적응이 되서 밴쿠버의 삶이 편합니다. 아직도 영어로 오피셜한 자리에서 길게 대화해야 하는 건 스트레스 받습니다만, 그래도 훨씬 삶이 여유롭고 남 눈치 안봐도 되고 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밴쿠버의 친구들과 노는게 훨씬 재밌거든요.


 월급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 비해서 1.5배정도 더 받긴하는거 같습니다. 근데 요새 밴쿠버 렌트비나 생활비가 워낙 헬이라서 이것저것 생각하면 저축하는 돈은 한국에서 일하는거나 밴쿠버에서 일하는거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근무환경이나 워라밸이 한국과 밴쿠버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예전은 한국인 사장님하고 같이 일했어서 그땐 고생을 많이했지만 지금은 좋은 사장님을 만나 칼 같이 점심시간 포함 8시간만 딱 일하면서 정말 행복하게, 인정받으면서 일하고 지내는데 그런 걸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올 이유가 없더라구요.


 하여튼 "둘 다 타지 생활하느라 고생 많이 했네, 그래도 이렇게 둘 다 잘 되가고 있으니까 좋네. 한 명이 좀 힘들게 살고있어서 만나자마자 우울한 이야기 하면서 돈 빌려달라고 그러면 엄청 짜증났을 건데. 맞지?" 그런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꽉 막힌 서울의 도로를 달렸습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죠. 힘이 들어간 만큼, 그만큼 저항하는 힘을 받는다고. 과학만의 법칙이 아니라 삶에도 적용되는 법칙인 것 같습니다. 운동하는 게 귀찮고 힘들지만 하고나면 기분도 좋고 몸도 건강해지는 것처럼, 끔찍한 교통체증이 짜증도 나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저희에겐 아무런 방해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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