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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Feb 01. 2024

4년 만의 한국방문기 - 1

출국, 우연한 만남, 그리고 입국.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캐나다, 밴쿠버입니다. 오후 1시 비행기였는데 때마침 리치먼드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서 친구가 출근할 때 공항 라이드를 부탁했습니다. 리치먼드 외곽의 밴쿠버 국제공항, YVR에 도착하고 친구를 보내고 나니 9시 정도 되더라고요.


 할게 없어서 그냥 공항에 있는 피시앤칩스 가게에서 피시앤칩스 하나 사서 먹었습니다. 이럴땐 한국 공항이 좀 부럽습니다. 제가 인천,김해공항 두 군데를 가봤는데 밥 먹을 곳이 많더라구요.


 외국에 좀 오래살아도 전 한국사람이니까 아침에 빵 먹는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 평소때야 그냥 먹지만 이런날은 뜨끈한 국밥같은 거 먹고싶은데 여긴 그런게 없으니까요. 프렌치 프라이를 핫소스에 찍어먹으면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밥을 다 먹고 공항 안을 한바퀴 둘러봤습니다. 연말인데 생각보다 조용했습니다. 예전엔 사람들도 북적북적하고 식당가 앞에서 소규모 공연도 하고 그랬었던거 같았는데. 코비드 이후에 여기도 바뀐게 많아서, 아마 그때 없어졌나 싶기도 하구요.


 친구들이나 후배들 라이드 해준다고 공항에 몇 번 오긴 했었는데 제가 한국에 간다고 공항에 있으려니 마음이 좀 이상했습니다. '와, 진짜 한국 가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실감은 나지 않았죠.


 딱히 공항에서 할 것도 없어서 면세쇼핑이나 해볼까 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수화물 짐 검사를 끝내고 슬리퍼와 최대한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안 그래도 힘든 비행, 옷이라도 좀 편하게 가야 덜 힘들죠.


 막상 면세점을 돌아도 딱히 살만한 것이 없더군요. 그냥 사촌형님 줄 아이스 와인을 하나 사고 비행기 탑승구 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앉아서 노래 들으면서 책 읽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 탈 시간이 됐습니다.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라 그런가, 티켓내고 비행기 타러 통로를 지나갈 때, 솔직히… 좀 많이 설렜습니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게 그제야 한국으로 가는 게 실감이 나더라구요.




 제 좌석을 찾아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마도 제 옆 좌석인 것 같은, 40~50대쯤 돼 보이는 여성분이 캐리어를 위에 올리시느라 고생하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가서 캐리어 올리는 걸 도와드렸습니다. 영어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이 “한국분이세요?” 물어보시길래 “네, 한국사람입니다.” 하다가 이야기가 시작되었죠.


 그동안 캐나다 국내선이든 국제선이든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심지어 한국에서 밴쿠버로 오는 비행기를 타도 제 옆에는 외국인이 앉았었거든요. 제 옆자리에 모르는 한국사람이 앉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좀 반갑기도 하더라구요.


 기내식 먹을 때도 평소 때면 조용히 노래 들으면서 최대한 빨리 먹고 책 읽거나, 영화 보던 거 마저 보던가, 자던가 셋 중에 하난데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기내식을 천천히 먹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각자 영화를 보던가 잠을 자던가 했지만 기내식을 먹을 땐 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 거의 도착했을 때, 마지막 기내식이 나왔습니다. 오믈렛이 나왔는데 그분은 와인을 한 병 더 시키시더라구요. "이제 곧 내리시는 데, 와인 괜찮으세요?"하고 여쭤봤더니 "어차피 밤을 새워야 될 것 같아서요. 술이라도 좀 마셔야 될 거 같네요."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직 한국에 무슨 일로 가시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밤을 왜 새우세요? 바로 어딜 가셔야 되나요?"하고 다시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담담하게 “사실은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병원으로 바로 가야 되고 가서 할 일도 많으니까, 아마 오늘은 잠을 못 잘 것 같네요.”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연말이니까 가족분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가시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는데 좀 당황했습니다. 부모님 칠순, 팔순 같은 행사나 따님이 대학에 내년에 들어간다고 그런 기념으로 한국에 가시는 줄 알았거든요.


 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에 좀 약합니다. 상대방이 저와 비슷한 나이대라면 어떻게든 위로를 전하겠지만, 저보다 한참 어른인 분께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그분의 말씀을 최대한 들어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뒤에 많은 말씀을 하신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 계실 때 잘해드리고 볼 수 있을 때 많이 보세요. 한국 가는 거 부담되는 거 알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많이 하세요." 하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마치셨습니다.


 사실 외국에 살다 보면 어른들께 "너 이제 여기서 살면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까지 몇 번이나 보겠냐? 많이 봐도 10번 넘기기 힘들다. 그러니까 시간 있는 지금, 최대한 한국에 가서 부모님 하고 시간 많이 보내." 하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습니다. 그전까진 그냥 흘려듣던 이야기였는데, 막상 당사자의 말을 들으니 흘려듣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요. 조언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에 한국 가는 게 가족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서 가는 거거든요. 친구들하고 약속도 많이 안 잡았어요. 최대한 가족들하고, 특히 부모님 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라는 대답을 드렸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착륙하고 비행기를 내릴 준비를 해도 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아직 옆자리에 앉아 계신 어머님의 캐리어를 내려드렸습니다. 위로의 말을 꺼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힘내시라는 말이라도 하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내려놓은 캐리어를 드리면서 "힘내세요, 어머님."이라고 한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아,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밴쿠버에서 가족을 만드세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외톨이가 된 느낌이 들거든요. 부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갑자기 정말 쓸쓸하고 외롭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는데, 그래도 제 가정이 있으니까 그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지더라구요. 캐나다는 아이 키우기도 좋은 나라니까 어서 결혼하세요. “하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웃으면서 “아 그런 말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좋은 사람 만나서 저도 결혼하고 싶네요.”하고 대답했습니다.


  비행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그분이 천천히 걸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조금 아렸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저도 저분과 같은 이유로 한국을 방문해야 할 일이 필연적으로 생길 테니까요.


 기분이 많이 묘했습니다. 사실 최근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사는 것도 바쁘고, 특히 11-12월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그런 복잡하고 슬픈 마음과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빨리 잊는 게 낫겠다, 싶어서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입국심사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자마자 그런 울적한 생각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에 왔다. 먹고 싶은 것들 실컷 먹고 실컷 놀고 가야지!'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죠.


 어쨌든 3주간의 휴가가 드디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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