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드윈 Oct 02. 2024

명작 다시 읽기 - 우리도 사랑일까

모두가 알지만 항상 잊고 지내는 것, 새것도 언젠가 낡는다


 제 옷장엔 좋은 옷들이 많습니다. 한때 이른바 명품을 사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서 하나씩 사모으다 보니 꽤 많은 명품 혹은 컨템포러리 브랜드들이 생겼지요. 입을 때도 조심히 입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페브리즈를 뿌리고 먼지도 털어내고 얼룩도 관리하면서 아끼고 아껴서 입던 옷들이었습니다.


 그동안 관리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니 이젠 많이 헐어졌습니다. 색도 빠진 것 같고 얼룩도 많이 생기고 보풀도 일어나고 목도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좋은 옷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음부턴 옷에 대한 흥미가 다시 없어져 버렸습니다.


 지금이야 그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옷들도 처음 샀었을 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옷이었는데, 지금은 상태가 별로 안 좋아졌으니 맘이 착잡하지요. 꽤 비싼 돈을 주고 산 옷들이었으니 말이죠.


 새것도 언젠간 낡고 볼품없는 것이 된다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비단 옷과 같은 물건이 아니더라도 사람도 그렇고 감정도 그러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거나, 지금 느끼는 행복이 평생 지속될 거라 기대하다가 실망하거나 후회하고는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이 이야기를 로맨스로 녹여낸 영화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우리도 사랑일까' 원제는 'Take this waltz'입니다. 세스로건과 미셸 윌리엄스, 그리고 루크 커비 주연의 영화이지요.


 이 영화 역시 한국에 많이 알려진 영화는 아닙니다만, 굉장히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화로 많은 영화팬, 혹은 로맨스 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볍게 보기엔 영화의 내용이 조금 무겁긴 하지만 권태로움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겐 자신을 뒤돌아보고 현재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고'입니다. 그녀는 프리랜서 작가 지망생으로 캐나다 동부의 어느 여행지에 들리게 됩니다. 그곳에서 '다니엘'이라는 남자를 만나죠. 둘은 우연하게도 같은 비행기에 옆 좌석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알고 보니 다니엘은 마고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 젊은 청년이었죠.


 다니엘은 마고에게 호감을 가집니다만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다며 이야기를 하지요. 하지만 마고 역시 다니엘에게 호감이 있어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마고는 그의 남편인 '루'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루는 가정적이고 유머러스한 남자입니다만, 둘은 몇 년간의 결혼생활로 인한 권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행복해 보이지만 의무적으로 보이는 잠자리와 부끄러움이 없고 설렘이 없는 소소한 일상생활이 다소 위태로워 보이지요. 설상가상으로 이웃인 다니엘에게 점점 빠져드는 마고. 자신의 남편과는 전혀 상반된 매력적인 젊은 남자에게 끝내 마고는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고 이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 영화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서두에 말했듯이 이 영화는 '새것은 언젠가 낡는다'를 주제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많은 비유와 은유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지요.


 먼저 마고의 남편인 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그는 가정적이고 순수합니다. 그리고 꽤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고를 대신해 항상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이죠. 그 식사가 항상 닭요리인 것이 문제지만.


 마고는 루를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의 사랑에 열정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권태기에 들어선 것이지요. 영화 중반부, 다니엘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마고는 루와 언쟁을 벌입니다.


 "난 치킨 만들고 있었어(I'm just making a chicken)"

 "그래 넌 항상 치킨을 만들지.(Yes, You always make a chicken)"


 마고는 이제 루와의 관계가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루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에게 변화, 혹은 그의 노력을 원하죠. 하지만 루는 그런 변화나 노력에 떨떠름한 태도를 취합니다.


 루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결혼을 했고, 결혼 생활도 오래 했으며 이제 서로 알 걸 다 아는 사인데 무슨 노력을 해야 하냐?"라고. 


 루의 사랑은 닭요리와 같습니다. 따스하고 풍성하며 또 아주 맛있지만, 먹다 보면 질리는 것. 루는 자신이 사랑하는 닭요리처럼 그의 아내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했습니다. 말 그대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했죠. 


 하지만 그의 한결같은 사랑은 마고에겐 식상하고 지겹게 느껴져 버렸습니다. 마치 그가 항상 만든, 마고가 질려버린 닭요리처럼 말이죠.





 다니엘은 루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력거를 끄는 일을 하고 있어서 루보다 훨씬 건강하고 외적으로도 매력적이죠. 게다가 루와는 다른 미술적 재능도 꽤나 있어 보입니다. 루보다 젊고 로맨틱하기도 하지요. 


 마고는 남편인 루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설렘을 다니엘에게서 발견하고는 점점 그에게 빠져듭니다. 결국 영화의 후반부, 그는 남편을 떠나 다니엘에게 가게 되지요. 둘은 아주 행복해 보입니다. 


 영화는 둘의 변화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둘의 섹스를 빠르게 편집하는 방향으로요. 격렬한 섹스, 다양한 체위를 보여주다 여자와 2:1, 이후엔 남자와 2:1로 섹스하는 장면을 보여주죠.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둘의 섹스는 무미건조해 보입니다. 크리스마스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섹스는 의무방어전처럼 보이죠.


 결국 둘의 행복하고 격렬했던 순간들은 단 1년 만에 끝이 납니다. 둘은 무표정하게 TV를 보고, 다니엘이 양치를 하고 있음에도 마고는 변기에 앉아 일을 보기까지 합니다. 


 영화의 끝에 요리를 하는 마고의 슬픈 표정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무심하게 창문으로 걸어가 기지개를 켜고요. 이 장면은 영화가 시작할 때 보여줬던 장면이기도 하지요. 


 영화의 끝에 마고는 다니엘에게서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그와 함께 탔던 놀이기구를 혼자 타거든요. 그리고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음악을 들으며 즐거운지 슬픈지 애매한 표정을 짓습니다.


 비디오라는 시각매체가 등장하기 이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청각매체였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영상기술이 없었던 시절엔 라디오의 인기 진행자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었죠. 


 하지만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점점 영상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라디오가 아니라 비디오로 옮겨갔습니다. 노래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라는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이 노래가 마고와 다니엘의 사랑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루와 마고의 사랑을 닭요리에 비유한 것처럼, 영화는 영리하게도 마고와 다니엘의 사랑 역시 어떤 것에 빗대어 표현을 하지요. 바로 놀이기구입니다. 


 놀이기구가 움직일 땐 깜깜한 어둠 속에서 신나는 노래와 함께 밝은 네온불빛이 사람들을 더 흥분시킵니다. 아주 재미있어 보이지만 놀이기구가 멈추고 불 빛이 들어오면 그곳은 더 이상 환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시멘트로 만들어진 무미건조한 공간이 되어버리죠. 


 새로움이란 설렘에 빠진 마고는 다니엘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새로움도 영원하지 않지요. 깜빡 눈 감는 사이, 자신은 제대로 즐기지 못했음에도 놀이기구는 멈추고 불이 켜지며 회색의 시멘트 벽이 눈에 들어오니까요.


 결국 불타는 사랑의 기간이 끝나자 다니엘은 놀이기구가 멈춘 그 방 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매력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그저 쓸데없는 방이 돼버렸지요.

 


 


 이렇듯 영화는 마고, 루 그리고 다니엘을 통해 사랑과 권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선은 다니엘보다는 루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요. 영화의 초반부 한 흑인여성의 말을 통해서요.


 마고는 제리와 같이 수영장에서 운동이 끝난 후 샤워를 합니다. 그들은 샤워를 하며 결혼 생활과 여자로서의 삶을 이야기를 하지요. 그러다 반대편에 있던 나이 든 흑인 여성이 그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새것도 낡는다"라고. 그리고 영화는 젊은 마고와 제리의 샤워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자신들의 나신을 아주 조신하게 씻죠. 곧이어 영화는 나이 든 여성들의 샤워장면을 보여줍니다. 온갖 주름에 축축 처진 피부, 그리고 그들은 그런 그들의 몸을 온갖 도구를 이용해서 우악스럽게 닦아내지요. 


 이 영화의 주제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에 끌리지만, 그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낡게 된다는 이야기를 말이죠.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은,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나이 든 사람들의 샤워장면이지만 시간을 돌려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마고와 제리가 샤워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또 조신하게 몸을 씻었겠지요.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고와 루, 두 사람 역시 처음엔 행복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주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예쁘고 멋진 남자나 여자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해도 둘은 서로밖에 보이지 않았겠지요.


 마고는 루에게 마음이 멀어졌지만, 영화가 테이프를 되감아 둘의 첫 만남을 보여주었다면 다니엘에게 끌리는 이상으로 루와 행복하고도 격렬한 사랑을 했겠지요.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 역시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고 먼지가 쌓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낡아지다가 결국 익숙한 것이 되고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감정으로 남아버리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다면 식상해지죠. 마치 나이 든 여성들의 나체처럼요.




 영화는 마고의 모습을 통해서 그녀가 선택한 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삶과 사랑에 권태라는 감정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움에 속아서 익숙한 것을 잊지 말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게 전부가 아냐. 마고와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든 같은 선택을, 혹은 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했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의 삶을 그리고 사랑을 마치 왈츠를 추는 것처럼 즐기자. 이게 우리의 인생이고 또 사랑이란 감정이니까. 그래도 잊지는 말자고. 지금 네가 느끼는 새로움의 감정 역시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랠 거야. 그것에 속아 익숙함을 버리지 말았으면 해."


 아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명작 다시 읽기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