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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Oct 18. 2021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을까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행동,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이를 테면 꼴도 보기 싫은 일을 하루 8시간씩 앉아서 하는 것,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조직 문화를 따르는 것, 단지 학위를 따르기 위해 흥미가 없는 분야를 몇 년간 공부하는 것 말이다. 쓴 걸 꾸역꾸역 삼키면 나중에 달콤한 결실이 온다는데 버티는 과정에서 내 색깔을 잃어버리는 게 싫다. 


주위 사람들은 정말 잘 버텼다. 강의 시간, 맨 뒤에 앉아 SNS만 보더라도 꼬박꼬박 학교를 나왔다. 탈모와 우울증이 오더라도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난 하기 싫은 건 모두 피해 가며 살아왔다. 무엇보다 현재의 내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니기 싫은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대학에선 혼자가 되더라도 불편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졸업 전 아무 공채에도 지원하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은 미련 없이 그만뒀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현재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다면 과감히 원하는 쪽으로 인생의 키를 돌렸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말렸다.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인생에서 하기 싫은 일을 완주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또 열심히 버텨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충고했다. 다 이렇게 사니까 결국 잘 되는 거라고.


궁금했다. 그럼 하기 싫어도 버티는 게 삶일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을까? 고통 끝에 낙이 온다 할지라도 그 고통을 굳이 겪어야 하나? 기다리던 낙이 안 올지도 모르는데. 졸업이나 승진 같은 성취의 순간은 인생 전체에서 무척 짧다. 살면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그 성취를 이루는 과정이다. 과정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삶은 싫은 것들로 가득 찰 것 같았다.


조언을 구하고자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았다. 세상엔 위로를 주는 책이 꽤 많았다. “하기 싫은 건 그만 내려놓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는 책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작가를 찾아가 묻고 싶었다. “뭐가 괜찮다는 거죠?” 내가 듣고 싶었던 건 모호한 위로가 구체적 서사였다. 남들이 제시한 길을 따르지 않는 건 분명 충돌을 야기할 터. 그 과정서 시행착오를 통해 무슨 결과를 얻었고, 나중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꼭 맘에 드는 책을 찾기가 어려워 삶 속에서 직접 써보기로 했다.


20대의 어느 날, 이런 가설을 세웠다.

1.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

2. 싫은 경험 속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을 깨닫는다.

3. 다음 선택에서 그 기준을 우선순위로 내세운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하기 싫은 걸 제외한 선택지로 내 삶을 채우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짝 어설프지만 그럴싸하지 않은가?



이 책은 이러한 고민과 선택,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살면서 포기한 것들에 대해서다. 난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삶의 주인인지 아닌지는 지켜야 하는 가치를 스스로 정하는지에 따라 달렸다고. 외부의 기준이 얼토당토않게 느껴져도 많은 이들은 자신의 감각보단 주어진 것을 따르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 보다 중요한 건 외부 기준이 아닌 ‘이만하면 됐다’고 느껴지는 내 손끝의 감각이 아닐까? 그 감각을 기르려면 어설프더라도 직접 판단해 결정하고 책임지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두 번째는 인생에서 싫어하는 것을 모두 빼고 좋아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 세 번째는 그 여정에서 얻은 자유에 대해서다. 20대를 마치며 가닿을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 훨씬 넓어졌고, 이는 명함이나 소득 수준 같은 것들로 증명하긴 어려우나 큰 수확이었다.


하기 싫은 걸 모두 포기하는 게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고도 이제껏 잘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행복의 형태가 조금씩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나의 20대는 무책임하고 자랑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가득하지만,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삶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부족한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게 했다.


삶의 조건을 나답게 만들고 싶었던 것뿐인데, 종종 남들과 달라 이상하다는 비난을 맞닥뜨리곤 했다. 흐릿한 대부분의 사람이 사회를 이뤄 나가고, 아직 색이 뚜렷한 사람은 쉽게 손가락질을 받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 내게 삶이란 좋아하는 단면을 쌓아 올리는 여정. 싫은 걸 버티기보단 고유한 색깔을 지키며 살고 싶다. 


하기 싫은 게 너무 많아 고민하던 과거의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썼다. 나아가 이 기록을 통해 나답게 사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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