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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Oct 19. 2021

교생 실습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당시 인기 있었던 SBS 예능 프로그램 <영웅호걸>에서 연기자 유인나는 힘들었던 무명 시절을 소개한다. 20대의 그는 한 뮤지컬 오디션을 봤고, 투자자의 눈에 들어 공연에 합류한다. 다른 배우들은 제작사의 입김으로 기회를 얻은 그를 싫어한다. 연습 석 달 동안 할 일을 주지 않았고, 없는 사람인 것처럼 대놓고 무시한다. 유인나는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는 희망으로 혼자 공연 2시간 분량을 다 외운다.


누군가 남모르는 노력을 지켜봤던 것일까, 그는 공연 때 조명 스태프 일을 맡게 된다. 고된 일이었고, 한 번도 무대에 오를 수 없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한다. 그랬더니 인사를 한 번도 받아준 적 없던 무서운 선배가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버텨. 그렇게 버티면 되는 거다."

유인나는 뿌듯함에 펑펑 울고, 훗날 이 이야기는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함께 전달된다.


상처를 견뎌낸 그는 강하고 아름다웠으나, 난 이야기를 듣고 감동은커녕 어이가 없었다. 일터에서 3개월 동안 왕따를 당한 경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 사람들은 공연 준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만만한 사람에게 풀면서 견딘 건 아닐까? 과정에서 어떠한 트라우마를 남겼든지, 당한 사람이 그 시간을 견디며 성장했다면 함께 왕따를 시킨 사람도 갑자기 훌륭한 멘토가 되어 조언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괴롭힌 게 다 뜻이 있던 것처럼 여겨지는 게.


한 기사가 떠오른다. 30살에 대기업 인턴으로 들어간 한 여자는 사내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살한다. 폭력을 견디지 못했기에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기회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간다.



교생 실습을 도중에 그만뒀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말렸다. 하지만 이렇게 그만두는 것도 가치 있을 것이다. 포기하는 게 날 더 위하는 일 같았다.


실습을 나오기까지, 인문학 전공인 난 혼자 사범대에서 2년 동안 교직 수업을 들었고, 따로 시간을 내 심폐소생술 교육 및 인성검사에 참여했다. 봉사 시간이 필요해 아동센터에서 반년 동안 교육봉사도 꾸준히 해왔다. 4주간의 교생 실습은 교원 자격증을 따기 위한 마지막 절차였다. 그런데 왜 받을 수 있던 자격증을 포기하는 게 아깝지 않았을까.


교생 실습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담당 교사 E가 날 따로 불러 말했다. “네가 뭔데 우리 학교 분위기를 흐리냐”고. 그리고 지난 며칠 간의 내 행동을 죽 읊었다.


실습 전 오리엔테이션 날, 중요한 전공 수업 발표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E에게 죄송하다고 따로 연락을 드리자 괜찮다며 간단한 준비사항을 안내해 주셨다. 그러나 첫 출근 날 아침 E를 보니 괜찮지 않은 듯했다.

"오리엔테이션을 안 왔으면 주말에 늦게라도 따로 와서 인사를 드려야지 왜 이제야 와요?"

"죄송합니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지나고, E는 사무실에 들어와 공지했다.

"선생님들로부터 어디서 싸가지없게 교생들이 감히 정규 선생님들보다 먼저 밥을 먹냐는 의견이 들어왔어요. 앞으로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15분쯤 늦게 가세요."

그리고 수업 평가지를 나눠주며 말했다.

"평가표가 있지만,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함부로 선생님들 수업에 피드백하지 마세요. 수업이 별로인 것처럼 보여도 다 깊은 뜻이 있으니 그냥 칭찬만 쓰시면 됩니다."

평가지를 들고 수업 참관에 들어갔다. 모둠 활동으로 운영되는 시간에 학생들이 하는 걸 옆에서 도와줬다.  


그 모든 게 나의 문제였다. 눈앞의 E는 단호하게 말한다. 어떻게 감히 교생이 선생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말을 섞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난 E의 이야기가 이해가 잘 안 돼 당황스러웠으나 우선 분위기가 심각하니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해요. 잘 몰라서 그랬어요. 제 옆에 앉아계신 미술 교생 선생님은 참관할 때마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고 있는 걸 조금씩 고쳐주신다길래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저 스스로 혼선이 있었어요."


"혼선? 혼선이라고? 어떻게 그런 단어를 쓰지? 넌 여기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니까. 학교는 좁고 비밀이 없어. 다른 선생님들이 모두 널 안 좋게 보고 험담하고 있어. 그건 네가 억울할 수 있지만, 조직 생활을 하려면 이것도 다 감수해야 하는 일이야.”


잠시 E를 응시한 뒤 말씀드렸다.

"전 이 학교에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물을 흐리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선생님 말씀이 맞는 거겠죠. 교직 과정을 포기할게요."


E는 놀란 듯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뭐? 아니, 그만둘 수 없어.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다고 해서 금방 포기하면 넌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힘들어도 같이 가면 얻는 게 있을 거야. 삶에선 어떤 일을 끝까지 완주하는 게 무척 중요해. 안 그러면 네 자존감이 깎여. 겨우 며칠 출근하고 그만 나오겠다고 하는 건 몇십 년 근무하신 선생님들을 모독하는 행위야. 넌 분명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거야."

분명 잘되라고 해주시는 말씀 같은데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교생 실습은 교직 과정을 밟는 학생들에게 무척 중요하다. 긴 교직 과정의 마무리인 데다 하나의 학교로만 갈 수 있어서다. 사범대 학생들은 여기서 F를 받으면 아예 졸업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교사들이 ‘갑’처럼 굴어도 웬만하면 비위를 맞춘다.


그런데 난 뭐가 이렇게 싫은 게 많을까. 저렇게 날 함부로 대하는 사람 아래서 예쁨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싫다. 그 과정을 무난히 통과해 사회 속에서 눈치 보며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게 싫다. 누군가를 두고 왜 말하기 전에 진작 알아서 하지 않냐고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이 되기 싫다. 이 학교에 있는 어른들처럼 나이 드는 게 싫다. 이 집단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살면서 만난 어른들은 마치 대단한 걸 알고 있는 듯 조언하곤 했다.

"너 지금 여기서 그만두면 아무것도 안 돼. 힘들더라도 끝까지 가야 해. 버텨봐. 이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고통은 날 성장시키지만, 고통의 의미를 스스로 알고 선택할 때만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은 그저 트라우마가 될 뿐. 끝까지 가면 좋은 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포기한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될 리 없다는 건 분명하다.


교직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값진 배움을 얻었다. 학위를 따지 않아도 좋은 선생님이 될 역량은 이미 갖추고 있지 않을까. 설령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학위가 그 역량을 보완해주진 않을 것 같았다.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후회까지도 책임지고 겪어내기로 했다. 무엇이 나를 위한 선택일지 직접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교생 실습을 포기했고, 내 사례는 학교에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조언했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 그동안 했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거라면 그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글쎄, 돌이켜 보면 쉽게 포기했던 건 자격증이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교육학을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자격증이 있으면 삶이 더 윤택해지려나? 지금 내 몸엔 문신이 여섯 개나 생겼고, 앞으로도 교직 사회에 들어가 교사로 살고 싶단 생각은 안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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