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냄새 도둑과 글 도둑의 콜라보

by 손윤


1738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빈민가의 생선 좌판에서 매독에 걸린 여자가 한 아이를 낳는다. 갓 태어난 아이는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진다. 그런데 단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옷에 악취가 배는 거리와는 달리 이 아이에게는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냄새가 없는 인간. 보통의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은 배척의 대상이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체취가 없는 아이는 불길한 존재가 되어서, 신부나 유모로부터도 외면을 받는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지만, 그르누이는 초인적인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무두장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세상의 모든 악취가 한 곳에 모인 듯한 무두장은 잠시만 머물러도 온몸에서 코를 지르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그르누이이지만, 그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은 어떠한 냄새도 가지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냄새에 매우 민감하다. 민감한 정도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풍기는 냄새도 맡을 수 있고, 게다가 한 번 맡은 냄새는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냄새만으로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 있는 냄새의 지도와 체취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체취의 인명록 등이 낙인이라도 찍힌 듯이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냄새의 천재이다.


특별한 재능은 무두장에서 허우적대는 그를 구원한다. 자신의 재능에 어울리는 향수 가게에서 일하게 된 것. 결국, 그의 재능은 악취의 세계에서 향기의 세계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비상구이며, 성공으로 인도하는 엘리베이터였다. 하지만 향기가 악취와는 동시성과 상대성을 가지듯이 성공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도 어둠은 존재한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법이다.


그렇게 세상의 냄새들에 지친 그르누이는 도망치듯이 산으로 들어간다. 취미 삼아 운동 삼아하는 등산이 아닌 이상, 산에 가는 사람은 죄를 짓거나 자살을 도모하거나 도를 믿는 부류 중의 하나이다. 산은 인간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료한 강태공의 낚시가 되거나 인간 진화의 정점을 달리는 비과학의 세계가 된다. 기대했던 '기인 열전'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등과 같은 TV 프로그램으로부터 어떤 섭외도 받지 못한 그르누이는 7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그가 하산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도를 닦기 위해서다. 길을 가던 도중에 속삭여지는 "도를 믿습니까?"라는 말이 "돈을 달라!"라는 걸 도시적으로 세련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듯, 그의 도 역시 최초와 최고라는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누구도 만든 적이 없고, 또한 맡아본 적이 없는 궁극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르누이는 향수를 뿌리는 것만으로 세상 모든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 향수를 창조하려고 한다.


문득 이 대목에서 오노레 드 발자크의 '절대의 탐구'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생선 좌판의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그르누이는 에밀 졸라가 '파리의 복부'라고 부른 중앙시장에서 태어난 마르조랑과 겹친다. 또한, 자신만의 체취는커녕 어떠한 냄새도 가지지 못했지만, 향수로 모든 냄새를 가질 수 있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그루누이는 토마스 만의 '사기꾼 펠릭스 크롤'과 샴쌍둥이다. 인간 세상을 초월한 세계를 찾아 산을 오르는 모습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를 구현하고 있다.


도대체 그르누이는 누구란 말인가?


둔갑술을 펼치는 홍길동을 직면한 관군처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는 욕망을 현실화한다. 어중이떠중이를 모아서 100년 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채 몇 년 가지 못한 정당들처럼 개념 없이 아무 재료나 넣어서 섞는다고 맛있는 비빔밥이 되지는 않는다. 치밀하며 계산된 조합이 맛집 비빔밥의 비밀이듯이 그르누이는 각종 재료를 적절하게 뒤섞는다. 오렌지와 카네이션, 장미 기름, 재스민 등을 조합해 새로운 향기를 창조한다.


구약성서의 신은 6일간의 창조 작업 후에 달콤한 휴식에 들어갔지만, 그르누이는 부랑자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오르페우스나 그리스도라도 되고 싶은지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음식으로 사라진다. 완전무결한 무의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단지 희미한 흔적-점점 엷어지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향기만이 그의 존재를 증명한다. 신약성서의 메시아와 같은 부활의 이벤트는 그와 함께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672일 밤의 동화'를 답습한 것이다.


그르누이의 표면적인 스승은 한때 파리에서 제일가는 향수 제조가로 이름을 날렸던 발디니. 화려한 경력을 쌓아 올렸던 발디니의 코는 재능을 잃은 지 오래전이다. 이미 빛을 잃은 존재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세상의 등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찬란하게 떠오른 향수계의 모차르트인 그르누이의 비법을 훔치기 위해서, 그는 기꺼이 살리에리가 된다.


범인(凡人)은 시대를 초월한 천재와 자신의 재능을 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래서 범인은 좌절하지 않는다. 단지 경배할 뿐이다. 반면, 좌절과 무력감은 동네 천재의 몫.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대의 천재는 동네 천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프랑스 파리에는 OK 목장이 없다. 그르누이는 오로지 회피한다. 상대를 잃은 대결은 팬터마임이 된다. 또한, 관객이 없는 팬터마임은 미치광이의 생쇼가 될 뿐이다.


불가사의하게도 그가 떠난 자리에는 모든 꽃잎이 떨어진 메마른 줄기만이 그의 행적을 증명한다. 더는 동네 천재들의 머리에 꽂을 꽃이 없기라도 바라는 듯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모두 그에게 흡입된다. 생명을 잃은 아름다운 나신을 근거로 그를 추격하지만, 개들은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한다. 이미 향기를 잃고 조각상으로 변한 미의 여신들에게서도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르누이는 '냄새 도둑'이다. "도둑 잡아라!"라고 동네방네 떠나갈 듯이 고함을 지르면서, 그를 쫓아가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르누이만이 도둑이 아니다. 또 한 명의 숨은 도둑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공범은 아니다. 장길산과 임꺽정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처럼 별개의 도둑이다.


그르누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향기를 잃은 나신들이 나열되지만, 또 하나의 도둑은 발자크를 비롯한 에밀 졸라, 토마스 만, 호프만스탈 등이 쓴 작품들의 복사본을 남겨둔다. 숨겨진 도둑은 바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며, 그의 '향수'를 읽은 우리는 공범이다.


그르누이는 절대 향수를 위해서 시체들의 밤을 즐기지만, 쥐스킨트와 우리는 책 읽는 즐거움이라는 미명 아래에 발자크와 에밀 졸라, 토머스 만 등을 차례로 순장시키고 있었다. 죽음의 향기가 책과 현실의 경계를 벗어나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경배하라! 그르누이를. 찬양하라! 쥐스킨트를.


태양 아래 새로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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