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는 계단(1)

알 권리라는 헌화가

by 손윤

1.



자줏빛 바윗가에

암소 고삐 놓게 하시고

저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산하게 스쳐 지나가는 거리. 그 중간쯤에 있는 전자제품 대리점 앞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쇼윈도에서 새로운 모델임을 자랑하던 커다란 TV에서 9시 뉴스가 흘러나온다. "은막의 스타로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T가 오늘 오후 2시 무렵에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자살로 보이며,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서 정확한 동기 등은 불명확하다고 아나운서가 말한다. 화면에는 윤기가 흐르는 긴 머리를 흩날리면서 화사하게 웃던 생전의 모습이 비친다.


흑백 TV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새하얀 얼굴과 클레오파트라도 울고 갈 높은 콧대, 끝없는 깊이감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크고 맑은 눈, 금방이라도 브라운관을 붉게 물들일 듯한 반짝이는 입술. 누구나 알고 있고, 또한 익숙한 얼굴이다. 모든 이가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미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공적이다. 이 세상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잘 만들어진 큰 장미가 T이다. 남자들은 그녀가 뿜어내는 진한 향기와 색감에 현기증을 느끼면서 쓰러졌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은막을 수놓은 최고의 여배우로, 5명 안에는 모르겠지만, 열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정도로 T가 발산하는 매력은 특별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한 편에는 인생의 절정기를 지나서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는 발자국이 살짝 보인다. 의학의 발달로 예전과는 달리 나이에 상관없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이미 40을 넘긴 얼굴에서 시간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세월의 흔적은 아름답지 않은 보통의 여자보다 이른바 미인에게 더 큰 괴로움을 준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사람에게 추억이 되면서, 아름다움을 잃어가던 T는 비장한 전사가 되어서, 남자들의 이전과는 다른 시선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빛을 잃어가던 얼굴이 TV 화면에서 사라지고, 무미건조하게 재잘거리는 아나운서가 컴백한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충격적인 소식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였고, 당연히 9시 뉴스는 시청자의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T의 특집극으로 변신한다. 그녀를 발굴해서, 은막의 스타로 키운 A 감독과 친분이 있던 배우들 등이 차례로 나와서 자살한 T를 회고한다. 결과적으로 T의 유작이 된 '벼랑 끝에 핀 장미'가 일주일 후 전국에 개봉되는 상황에서 자살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유작의 감독이던 B는 "시사회 문제로 어제 만났을 때에도 T는 평소처럼 활달한 모습이었다. 자살은커녕 오히려 넘쳐나는 행복에 겨워했다. 그녀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장난치지 말라고 꿀밤을 쥐어박았을 정도로…"라면서, 끝을 맺지 못한다.


T와는 가장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여배우인 C는 "평소에 연기력이 형편없다는 인터넷의 악플에 시달린 것이 자살의 원인은 아닐지…"라고 말한다. 하긴 그녀는 빼어난 미모에 비해서 알아듣기 어려운 발성과 변화가 없는 표정 등 연기력은 평가하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녀를 인터넷의 하이에나들은 걸어 다니는 인형이라거나 등신대의 양팔이 있는 비너스 조각상이라고 비꼬았다. C에 이어서, 종종 TV에 출연하는 심리학자가 등장해서, 인터넷 악플의 폐해에 대해서 주절거린다.


이번에는 T의 자택이 커다란 화면에 나타난다. 인기 절정의 여배우가 원인불명의 죽음을 당한 불길한 집이라도 되는 듯이. T의 소속사 대표인 R이 카메라를 헤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카메라맨과 리포터, 사진기자들에 둘러싸여서 그는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부라보, 시민의 알 권리!!' 시청률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친 시위대에 직면한 R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꾹 다문 입이 살짝 벌어지면서, "지금 현재로서는 드릴 말이 없습니다. 저도 뜻밖의 일이라서, 후에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나운서가 T의 경력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과 받은 상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열한다. 다시 브라운관에는 수줍은 듯이 웃는 T가 비친다. 주인 잃은 미소만이 눈에 각인된다. 이미지의 상품인 은막의 스타다운 예우이다. 그녀의 미소를 배신하고 나는 서서히 돌아서서 PC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녀의 자살을 또 다른 하이에나들이 어떻게 만찬을 즐기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끝없이 새로운 먹거리를 원한다. 그 먹이가 독특할수록 더욱더 광분한다. 하지만 그 먹이에 대한 열광적인 파티도 잠깐일 뿐이다. 신데렐라가 돌아갈 밤 12시는 이내 찾아온다. 그들은 또 다른 마법을 요구한다.


감미로운 희생양보다는 범죄나 자살 등과 같이 악취가 날수록 페스티벌의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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