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메리가 부른 마이 타이의 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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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인기 검색어 :
1. T 자살
2. T 놀출
3. T 사인
4. T 사망
5. T와 악플
6. T 가슴 놀출
7. 여배우 자살
8. 벼랑 끝에 핀 장미
9. T 자살 미스터리
10. T 자살 이유
창을 띄우자마자, '세상의 모든 구라'라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내건 포털 NAGURA가 나온다. 화면의 여기저기에는 T의 자살 소식으로 도배돼 있고, 당연히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까지 모두 T와 연관된 단어들이 영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하이에나들의 주 서식지인 몇몇 사이트를 비롯한 SNS, 블로그 등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T의 시체를 뜯어먹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T가 자살한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악플러가 살해범이라는 투의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껏 카메라 앞에서만 친한 척하던 C의 계산된 한마디에 인터넷은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사냥대회로 시끌벅적하다. 사실 C가 악플을 거론한 것은 T와는 무관하게 자기감정을 앞세운 것뿐이다. C는 음주운전으로 인명사고를 내거나 입양한 아이를 학대해, 네티즌들의 질타와 비난이 끊이지를 않았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T의 자살과 교묘하게 노골적으로 연관시킨 것이다.
어떤 이들은 T가 출연한 영화를 하나도 보지 않은 주제에 국민 여배우의 명복을 빌거나 악플은 살인행위라고 한껏 목소리를 높인다. 또 다른 이들은 악플러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졸지에 국민 여배우가 된 T는 최소한 죽어서도 행복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생전에 이유 없이 까기만 하던 이들의 카멜레온과 같은 변신에 찬사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배우는 T가 아닌 그들이다. 각종 영화제의 주연상은 단연 그들에게 줘야 한다. 아니, 앞으로 영원히 그들의 몫이다.
그들의 변신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정치평론가가 되어서 정치모리배들을 질타하다가, 어느 사이에 스포츠 감독이나 영화 평론가가 되거나 국제 외교 전문가로 변신한다. 그들의 명함에는 심리학자나 사회학자, 마케팅 전문가, 법률가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 타이틀이 새겨진 지 오래전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도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도, 왜 지구 상에는 전쟁과 빈곤 등의 악순환은 끊이질 않는 것일까? 미스터리, 진정한 미스터리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T라는 이름도 본명은 아니다. 그녀의 본명은 놀림감이 되기에 딱 알맞았고, 실제로 그랬다. 영화계에 픽업되어서, T라는 예명을 받은 뒤, 호적상의 이름도 깨끗이 정리하는 깔끔함을 떨었다. 영화계에 데뷔하기 전까지 20년을 함께 한 본명과 예명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T일까? 사람들이 칭송하던, 때로는 침을 흘리던 그녀의 얼굴에서 연상되던 T도 사실은 익명이다. 익명의 T는 죽어서 국민 여배우가 되었지만, 그녀의 본명은 이미 예전에 '길을 걷는 행인 1'로 끝났다. 기실 어느 쪽이나 그녀는 자살함으로, 사람들의 불명확한 기억 속에 기생하는 존재가 됐을 뿐이다.
10분 남짓의 웹서핑에도 천편일률적인 사냥놀이에 흥미가 뚝 떨어진다. 모든 키보드에는 '지나친 짤짤이는 건강에 해롭습니다'나 '정신 건강에 해로운 짤짤이를 그래도 계속하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반드시 붙일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반응은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글자 한 자 차이 없이. 컴퓨터의 부팅은 현대판 레테의 강물임이 틀림없다.
PC방을 나온 나는 혼자서 가기에는 뒤 켕기지만, 그녀를 위한 축배의 시간을 가져줘야만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적에 검은 줄이 그어진 그녀에게 딱 맞는 술은 무엇일까? 다채로운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칵테일 가운데 무엇이 적당할까? T라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선택했을까? 그녀는 언제나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칵테일을 주로 마셨지만, 사실 술맛이나 분위기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그녀에게 술은, 때로는 스타로 가는 상납의 밑반찬이었고, 때로는 언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잊는 도구에 불과했다. 제정신이 들지 않도록 할 그 무엇이 필요했고, 그런 그녀의 곁에 술이 있었을 뿐이다.
결국, 내가 마실 마이 타이와 존재하지 않는 동행을 위해서 블러디 메리를 주문한다. 블러디 메리. 아쉽게도 T는 피투성이 여왕이 되지는 않았다. 다량의 수면제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됐다. 천국은,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은막의 여왕벌다운 최후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스크린에서 수면제는 버림받은 여인의 유일한 위안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고통스럽다고 한다. 바텐더가 약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한 잔의 축배와 한 잔의 위안을 내놓는다.
마이 타이의 달짝지근함이 입안을 적신다. 잭 리퍼와 메리가 느꼈던 그 달콤함에 녹아드는 밤이다.
* 영화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에서 남자 주인공인 피터는 천국의 실수(?)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