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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07. 2021

알콜 의존증이 어때서?

지금 마침 슬럼프가 왔거든요

 



 나는 알콜 의존증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알콜에 의존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하지만,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어서 알콜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17살 때부터 기면증으로 헛것을 보고 환청에 시달리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타인의 비난 같은 건 내게 의미 없다고 말이다. 나는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고, 내 삶은 피폐해졌다. 17살 때부터, 기면증을 진단받은 37살 때까지 20여년을 난 이유 없는 환각 증세에 시달렸고 점점 알콜에 의존하게 되었다. 난 술을 마실 수 있는 19살이 되던 해부터 알콜 의존증으로 생활해왔다. 물론 얼마 전까지도, 아니 아직도 진행 중이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난, 한쪽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에 힘들어했다. 병원에서는 딱히 병명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도 이유를 찾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십대일때 계단에서 구른 후 ‘신경병증’이라는 병을 37살에 알게 된 것이 그 이유일지 모르겠다. 병원에서는 치료가 너무 늦어 6개월에 한번씩 척추주사를 맞아야한다고 했지만, 난 치료를 포기했다.  하지만, 뒤늦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런 임산부들의 병이 있다고 한다. 신경병증이 원인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


 난 임신 5개월 정도부터 왼쪽 다리의 감각이 없어지며, 뻣뻣하게 굳어지는 증상에 밤마다 잠을 자지 못했다. 아니 어차피 기면증으로 잠은 오지 않았. 스트레스가 심하던 그때, 난 첫째아이나 경제적인 핑계로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산을 앞둘 때까지 점점 굳어가는 내 다리가 아이를 낳은 후에도 증상이 계속 될까봐 너무 두려웠다. 그 덕분에 아이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9개월 만에 뱃속에서 나왔고 내 다리는 감쪽같이 나았지만, 그 이후,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를 보며 또 한 번의 좌절을 느꼈다.


 그 당시에 난 늘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어린아이 같은 임산부일 뿐이었고, 서로 많이 지쳐있던 어느 순간부터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출산할 당시에 남편에게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 다 나은 줄 알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아픔을 숨기지 않겠다고. 상식적으로, 몸이 무거워짐에 따라 다리가 더 아픈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다. 아마, 내가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으로 남았을 거다. 하긴, 결혼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알콜은 나를 여태 살아있게 한다. 환청이 심할 때에도, 환시가 심할 때에도 난 술을 마셨다. 그 이후엔, 몸에 열이 나거나, 피곤하거나, 우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난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술은 그날 먹을 양만 산다. 남편은 내가 ‘몸이 안 좋다’라는 말을 하면, 늘 술을 사오는데 그게 나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전부다. 그게 뇌졸중 환자인 나의 몸에 독이 된다는 건 알고 있을 거다. 다만, 그와 나는, 몸보다는 마음을 보살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울증이 심한 것보다는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나을 거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경험한 것을 최우선으로 믿으며 타인을 평가 하는데, 정말 잘못된 생각임에 분명하다. 때로는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처럼, 최선의 것이 자신의 삶에 맞지 않을 때엔 어떤 상황의 최악을 피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도 독을 들이키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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