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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Nov 25. 2021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기준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



배민에서 치킨을 시키고 얼마 지나지않아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배달 예정 시간을 60분으로 지정했으나 30분만에 배달을 해도 괜찮겠냐는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후 30분이 더 지체된다는 얘기인줄 잠시 착각하기도 했으나 괜찮다고 말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 참 기분이 이상했다. 업주는 배달을 하며 얼마나 많은 딜레마에 빠졌던 걸까. 주문 고객이 지정한 배달 시간도 아닌데 굳이 전화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일에 날이 서있나보다. 그깟 치킨 30분 먼저 배달되는 것이 대수인가. 왜 그런 걸로 클레임을 걸었을까. 어쩔수 없이 불합리함을 견뎌내는 업주들 참 안됐다.





20대 초반, 변호사 사무실다니던 나는 이미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이 세상에 완벽한 피해자는 거의 없다는 걸 말이다. 를들면, 세상의 스토커들은 거의 이전에 사귀던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_스토킹의 피해자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과거의 연인이 스토커가 되는 과정에 의한 서술입니다._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던 37살의 나는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5~60대로 보이는 여성 택시기사였었는데, 그녀는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고 상대방의 과실비율로 피해자가 되어 병원에 장기 입원중인 상태였다. 그녀는 일방통행 길에 잠시 정차중이었는데, 때마침 역주행 차량을 발견하고는 그 차가 오는 속도에 맞추어 자신의 차량문을 열어 고의로 파손시켰다. 그녀의 고의성이 어느정도 인정되었으나 상대편 차량은 역주행 상태였으므로 과실비율은 상대 운전자가 60%를 가져가게 되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거의 매일 병원에서 큰 소리로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이번에 차량을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꾸면서 생긴 허리 디스크까지 치료를 하고 퇴원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_사실 나는 수동기어를 운전해본 적이 없어서 그녀의 말을 100%는 이해하지 못한다._ 그녀는 옆 병실에 입원 중이었는데 매일 내 병실에 와서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바람에 어느날엔 그녀에게 내 병실에 오지 말라며 내쫓기도 했다.


그때의 난 37살의 세번의 교통사고 중 마지막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었고, 그녀를 보며 다시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겪은 세번의 교통사고 모두 상대의 과실 100%사고 였다. 저런 사람과 나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라고 당당하게 생각해도,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볼지 정말 내 낯이 뜨거워졌다. 그래, 내가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면서 수도 없이 배운 내용, 세상에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는 그 사실이 자꾸 내 머리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많은 사건을 경험한 변호사나 경찰은 대체로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다. _위에서 말한 스토킹의 개념과 같이, 내 번호를 도용한 어떤 사람을 신고했더니 경찰에게서 내 번호를 도용한 사람이 내 내연남이 아니냐는 황당한 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이후에 나는 절대로 경찰을 믿지 않는다._


우리 사회의 씁쓸한 이면 아닐까. 법이 정해놓은 범위에서 누가 잘못한 일인지 과실비율을 정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일이 과연 도덕성과의 관계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말이다. 자신의 집에 들어온 도둑을 제지하기 위해 폭력을 쓴 집주인이 과잉방어 살인죄로 수감되는 일은 누가 정한 법일지 과연 도덕적인 판결인지 누가 알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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