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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May 01. 2022

난 고양이가 될거야

고양이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학창시절과 사회에서 스치듯 만난 사람들까지 생각해보면 그 수가 꽤나 많은데, 사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지극히 일부에 국한된다. 주로 그들은 절친이었거나 나를 괴롭혔거나 조금 이상하거나 조금 특별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되는 일이나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럴 땐 가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곤 하는데, 누군가가 내 지우고 싶은 과거의 흑역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그러는 나는 누군가의 흑역사를 하나도 기억하고 있을지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헌데 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줄 정도로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주체는 ‘나’가 대부분이다. 나는 가끔 오래된 기억을 꺼내어 얘기할 때가 있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늘 한결같이 나에게 왜 그런 오래된 케케묵은 일까지 기억하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도 어느날 문득 떠오르는 기억일 뿐 내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억력이 좋은 편인 내가 그렇다면 그들의 기억 안 봐도 뻔하 않은가.


영화'여고괴담'


‘여고괴담’이라는 영화에서 마지막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었는데, 바로 같은 학생이 몇 년간 졸업앨범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몇 년간 같은 반 같은 번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 선생들 누구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기억력이라는 건 그런 거다. 사실 이기적이라기보다는 그 많은 사람들 오래도록 기억하는 건 사람의 뇌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리가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에는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도, 자신의 실수를 오래도록 기억하며 자책하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집 고양이 요미


고양이의 뇌에는 신피질이 없다고 한다. 신피질은 주로 기억에 대한 일을 하는데,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는 늘 오늘이 새로운 날인 것이다. 그래서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고,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풍경을 봐도 지루하지 않다. 당연히 과거의 기억도 남지 않을 테니 후회라는 감정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테다. 그게 바로 고양이가 쿨해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나는 신피질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서 여태 쿨하지 못하게 살아온 게 아닐까?


앞으로 난 과거에 연연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내 삶에서 과거 기억에 관한 신피질을 조금만 의도적으로 제거해 보기로 했다. 난 고양이가 될 거다. 물론 고양이처럼 이 다짐도 내일이 되면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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