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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2. 2020

이 시대에 시인으로 사는 건

가난하고 고독해야 멋진 시인으로 사는 것



시인은 고달프다.

예전 독자에게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시인은 가난하고 고독해야 멋있는 거라고.

사람들은 시라고 하면 쓸쓸한 가을 낙엽이라도

생각나나보다.




시인은 이 시대에서 인기가 사라진지 오래다.

예전처럼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해도

그저 시인이라는 말 만으로도 멋지던

그런 시대가 이제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멋있어 보이려는게

아니라 이 시대에 사는 시인은 가난하며 고독한게

더 자연스럽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시인은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다.

예전 시대에 서당에서나 배울수 있는 그 한자들로

풍류를 읊으려면 있는 집 자식이나 가능한 일

아니었겠나?

허면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 시인은 왜 가난과 고독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을까?


시라는 장르는 태초부터 쓸쓸하고 외롭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쓸쓸하고 외로운 글은

읽으려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우울하고 힘든데

남의 힘든 사정을 듣고 싶어할까?


점점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면서

쓸쓸하고 외로운 시를 읊던 시인들이

이제는 밝고 희망적인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인이란 가난하고 고독해야 멋지다.


자신은 일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고는 가난하고 고독한, 한끼도 겨우 워야

멋진 시인들의 밝고 희망찬 글들을 읽는다.


이것 참 아이러니하다.

시인들도 사람인데 어찌 그런 상황에서

밝고 희망찬 글이 나올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의 편견으로 시인들은

점점 설 자리가 없다. 부유하고 멋진 시인들은

멋이 없다고, 가난하고 쓸쓸한 시인들은

찌질하다고 할 참이다.


그래도 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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