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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Nov 03. 2022

자존감이 높아지는 나르시시즘



우리는 누구나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건 신에게서 받은 선물이자 저주이다. 그것으로 인해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하고, 때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선물일지 저주일지를 결정하는 건 바로 내 마음이다.


우울함을 느낄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때에는 거울을 보자.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기분이 좋아질거다. 무슨 나르시스도 아니고 거울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나는 거울을 보면 더 기분이 나빠지던데?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예쁘고 잘생겨보일 때까지 가꿔보자. 세상이 정한 가치에 의하면 외면보다는 내면을 가꿔야한다고 하지만 외면을 가꾸는 건 내면을 가꾸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할 대상은 바로 자신 아닐까.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나도 못나 보일때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흐다. 사실 그로인해 더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잘난 것도 없면서 꼴사납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테지만 사실 나르시시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만약 '나는 사진보다 실물이 낫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도 이미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일 수 있다.  





거울을 볼때 사진보다 예쁘고 잘생겨 보이는 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 가장 자신있는 곳을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사진보다는 실물이, 실물보다는 거울로 보는 모습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 자신의 모습에서 좋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나르시시즘이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 친구들은 '너 사진 되게 잘 나왔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평소에 나를 이렇게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화가 난적이 있다. 사진은 거울에서보다 못나보이기 때문에 그로인해 타인의 평가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으로 찍힌 모습,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바로 나다. 그건 내면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타인은 결과를 중점적으로 보고 나는 원인을 중점적으로 보게 되니 말이다. 사람들이 내 진가를 잘 몰라주는 것 같지만, 어차피 상관없다. 나도 사람들의 진가를 몰라보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저 나라도 내 진가를 알아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자기애를 가지진 말자. 어느 한순간 내 마음가짐에 의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도 할테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그 사람의 장점만 바라보고 싶은 게 사랑이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장점이 단점이 되어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미 사랑이라는 건 끝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비효율적 기준에 따르기 때문에 정확하고 객관적 확률은 거의 드다. 사랑하고 있을 때는 거울로 보는 내 모습처럼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될테니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장점이 단점이 되지 않도록 나 스스로 잘 돌야한다. 늘 애틋한 감정을 잃지 않도록 나를 바라보자. 때로는 나르시스가 되어도 좋다. 내가 아닌 꾸며낸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에 반하는 나르시스가 더 낫지 않은가. 사진을 보정한다고 내 외모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보자. 그게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 나를 사랑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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